[5·18 민주화운동 제43주년]궂은 날씨에도 오월 영령들의 넋을 기려…역대 최대 규모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가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오월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민주묘지를 방문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 당 대표, 유가족들과 시민 등 약 3천명 이상의 인원이 모였다. 이날 행사장 내부는 엄숙하고 근엄한 분위기였지만 행사장 밖은 주먹밥 나눔, 급수봉사 등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다양한 모습들도 보였다. 특히 네팔, 일본 등 해외 관람객들이 방문하는가 하면 어린 학생들까지 민주묘지를 참배하며 추모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21년째 순백의 국화 나누며 5·18정신 알려
이날 5·18민주묘지 한 켠에는 시민들에게 국화와 생수 등을 무료로 나눠주는 부스가 마련됐다.
21년째 5월이 되면 이 같은 행사를 열고 있다는 동호회 ‘그날을’은 ‘천상의 열사에게 천송이 꽃을 바친다’는 의미로 매년 1천 송이의 국화를 준비한다고 한다.
올해는 특별히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소시민들이 기억하는 5·18과 가해자들의 고백이 담긴 기록잡지 ‘그날’을 발간해 시민들과 함께 나눴다.
행사를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박춘림 회원은 “당시 모습을 직접 목격하다 보니 5월만 되면 악몽과 공황장애로 힘들었다. 사지가 멀쩡하다고 해서 피해자가 아닌 게 아니다. 그 광경을 본 광주시민 모두가 피해자”라며 “타지에서 5·18이 왜곡된 모습으로 인식되는 모습을 보고 진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행사를 수십년간 이어온 원동력이 됐다”고 전했다.

◇“내년엔 올 수 있을란가 모르겄소”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를 마친 이상순(89·여) 할머니가 남편인 고(故) 공명학씨의 묘지를 방문해 꺼낸 첫 마디다.
이 할머니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며 5·18민주묘지 제일 끝자락에 있는 남편이 있는 곳까지 하염없이 올라갔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묘비를 본 이 할머니는 우비를 벗어던지며 남편의 묘비를 어루만졌다.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공 씨는 1980년 5월 계엄군이 사정없이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할머니는 “나도 내년이면 나이가 90이다. 매년 남편을 만나러 오고 있지만 내년에는 올 수 있을까 의문”이라며 “꽃 한 송이, 술 한잔 받지 못할 남편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토로했다.
같은 시각 다른 묘역에선 가족 단위의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김복자(65·여)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탱크에 치여 우리의 품에 오셨다. 43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5·18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하루빨리 헌법 전문에 5·18 정신과 가치가 실렸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과도한 경호·경비에 곳곳서 불만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는 경찰 기동대 41개 중대 등 경력 5천여 명이 투입돼 삼엄한 경비가 이뤄졌다.
특히 차량 통제와 식장 출입, 내부시설 보안도 지난해보다 강화돼 참석자는 행사장을 오고 갈 때마다 입장카드와 비표를 교환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이날 기념식에 초대받은 김정복(88·여)씨는 차량 출입을 제지당해 민주묘지 초입부터 민주의 문까지 도보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아픈 몸을 이끌고 걸음을 재촉하던 백발의 노모는 먼저 떠나보낸 아들 생각에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작년만 해도 이 정도까지 통제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 유가족들은 다 늙고 병 들었는데 차량 출입까지 제한하는 건 잘못된 처사”라며 “아픈 몸으로 언제까지 이곳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입장카드 없이는 출입할 수 없다는 현장 스태프의 말에 분개한 시민들도 더러 있었다.
이승남(64)씨는 “광주시민이 5·18 기념식에 입장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되냐. 윤석열(을 위한) 기념식이냐”고 반문하며 “광주시민들도 당연히 기념식에 참석하고 동시에 참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따뜻한 커피 한잔과 주먹밥 드세요”
비가 내리는 행사장 한편에는 북구여성단체협의회와 북구새마을회가 커피와 물 등을 제공하는 급수봉사를 진행했다.
쌀쌀한 날씨에 어머니들이 직접 타주는 믹스커피의 인기가 단연 일등이었다.
노향자 북구여성단체협의회장은 “5·18 때마다 급수봉사를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전국에서 5·18에 방문해주시는데, 따뜻한 커피 한 잔 대접하고 싶어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며 “항상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광주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 초심을 잃지 않고 봉사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민주의 문 건너편에선 5·18주먹밥 나눔 행사도 열렸다. 이번 나눔행사는 광주시 자원봉사센터와 솔잎쉼터봉사회가 함께했다.
장지우 자원봉사센터 부장은 “학생·어머니 등 자원봉사자 60여 명이 동참했다. 2천인분을 준비했다. 이외에도 돼지고기와 김치 등을 준비했다”며 “맛있게 드시고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만들고, 언젠가 5·18을 또 떠올려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솔잎쉼터봉사회의 밥차도 출동했다. 옆에서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으로 맛있는 주먹밥을 만들자 따뜻한 주먹밥을 먹는 시민들의 반응도 최고였다.
부덕임 솔잎쉼터봉사회장은 “5·18이 발생했을 때부터 지속해왔다. 주먹밥은 5·18을 상징한다. 아픔과 눈물이 담겼고, 당시를 잊지 말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행사에 오길 참 잘했어요”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 행사에는 광주와 5·18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5·18기념재단을 통해 이곳을 방문한 네팔 출신 만디라 샤르마(Mandira Sharma)씨는 현재 국제법률가위원회(ICJ)의 남아시아 및 미얀마 담당 수석 국제 법률 고문이기도 하다. 그는 “매우 감동적이고 의미가 있었다. 네팔도 1996년 공산주의 세력의 무장봉기로 정부와 10년간 내전을 벌였다. 그동안 1만 3천여 명이 죽었다. 지금도 몇몇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국가와 군부, 정치 때문에 피해를 본 시민들이 닮은 것 같다. 이러한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고 피해자들이 상처를 회복하고 치유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광주 5·18에 대한 역사와 대처에 대해 잘 살펴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어린 학생들도 단체 방문했다.
일곡중학교 이지후(14)군은 “행사를 보니까 오월에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왜 추모하고 이런 행사를 해야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5·18을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가족들에게 들어온 이야기가 있기에 더더욱 마음에 와닿는다는 소감이 많았다.
정은영(14)양도 “당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안타깝다. 유가족도 안쓰럽다. 이미 일어난 일이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정석·이현행·김성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