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민(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

최근 내 명의로 본인의 신용 카드 결제가 이뤄진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내가 바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경찰에 바로 신고하려 했다며 결제가 이뤄진 여행 사이트를 통해 내 전화번호를 전달받았다고 했다. 순간 당황했고 해당 사이트에는 내가 가입한 이력이 있는지 없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우선 상황을 파악해 보고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해당 사이트에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전화 문의를 하려 했으나 해당 사이트 홈페이지 어디에도 상담 전화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한 블로그에 해당 사이트를 통해 전화 문의를 한 기록을 찾았고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사이트에서 예약한 번호 이력을 눌러야만 연결이 이뤄진다는 음성만이 흘러나왔다. 명의도용으로 보여 해당 대응과 관련한 내용을 금융감독원에 찾아보다 ‘보이스피싱 통합신고 대응센터’로 연락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었고 "경찰에 신고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순간 자연스레 아이고 한숨이 나왔다. "그 외에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느냐 후속 대응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문자로 관련 내용을 전송해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명의도용으로 보이는 사건을 겪고 직접 관계 기관 등 확인을 해본 이유는 이러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들이 겪는 상황과 과정을 살펴보기 위함도 있었다. 화가 났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유치원생 딸을 홀로 키우던 30대 여성이 사채업자로부터 불법추심을 당하다 숨졌다.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지인이 경찰에 피해 상황을 알렸지만, 보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신고 46일 만에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대통령은 분노한다고 발표했고 경찰청은 일선에 ‘불법사금융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특별단속기간도 늘렸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 개정을 발표했고 언론은 진보·보수 상관없이 무수히 많은 뉴스를 쏟아냈다.
누구만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이 어제, 오늘 갑자기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실제 사채는 소액에서 시작한다. 50만 원 빌려주는 조건으로 일주일 후에는 80만 원을 갚으라고 한다. 이자 720%. 첫 거래는 신용이 없으니 일단 일주일 해보고, 서로의 신뢰가 쌓이면 월변(한 달 후 갚기)을 해 주겠다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불법 금융은 부채의 질적인 측면에서 안전하지 않은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상황뿐만 아니라 다중부채 보유자가 이러한 위험에 훨씬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악성화되기 쉬운 상황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단순 경제적 피해에서 끝나지 않는 문제라는 점이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2차 피해 (성 착취, 온라인 개인신상 유출 등) 및 사기 범죄 연루로 단순 피해자가 아닌 공범이 되는 일들도 적지 않다. 신고를 마음먹는 것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문제 해결을 위해 사설 업체를 찾았다가 추가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데, 더 나아가 불법사금융업자를 잡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인가? 왜 이들이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불법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100만 원 이하의 생활비를 고민할 때, 왜 이들이 손 내민 곳이 안전한 공적제도가 아닌 위험한 불법사금융업자들의 손이어야 했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동네 붕어빵의 가격이 1개에 300원, 3개에 1000원으로 개당 가격이 더 비싸 주인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붕어빵 하나씩 사 먹는 사람이 더 가난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커뮤니티에 떠도는 이야기에 위로받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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