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민(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상임이사)

한국 사회는 2014년 세월호 참사,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오송 참사, 그리고 2024년 제주항공 참사까지 대규모의 사회적 재난을 경험해 왔다. 이러한 재난의 경험은 시민들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안전보고서 2023’을 살펴보면 2022년 사회재난으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총 26,576명으로 전년 대비 424.9% 증가하였고 부상자는 453명으로 전년 대비 806.0%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크게 늘면서 감염병 사망자(26,373명)수가 크게 증가했고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사망, 334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러한 수치는 시민들이 최근 몇 년 내 사회적 재난에 직·간접적으로 급격히 많이 노출되고 있음을 확인 시켜준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재난과 관련해 누적된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발생 후 대응에 있어 반복해 벌어지는 현상을 살펴보면 문제에 대한 이해와 회복에 대한 공통의 감각(sense)보다 이질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특히 피해 유가족들에 대한 악성 댓글과 사안의 본질을 가리는 가짜뉴스들을 볼 때면 우리 사회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공에 대한 감각이 상실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감각에 대한 몇몇 사회학 연구를 살펴보면 감각은 단순한 생리적 반응이 아닌, 사회적·문화적 의미가 내포된 중요한 경험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우리는 오감 이상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 감각 경험은 한 번에 하나의 개별적인 감각에 국한되지 않고 통합된 방식으로 작동하여 다차원적인 인식을 만든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지각은 시각, 청각, 미각 등으로 감각의 경계가 분명히 나눠진 것이 아닌 통합된 ‘총체적인 경험(total sensual experience)’이라는 주장이다.
우리의 몸이 겪는 경험은 단순히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를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포함되는데 이는 다시 말해, 몸으로 느끼는 경험이 단순한 감각적 반응이 아니라 그 의미를 우리가 스스로 되돌아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재난 발생 이후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지금을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스스로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 등의 상호작용이 만들어 내는 역동성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건강하게 만들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러한 건강한 상호작용을 충분히 진행하지 못하였고 그 자리에는 음모론과 혐오 분열만이 무성하게 자랐다.
이러한 상황을 그저 비관적으로 바라만 볼 것인가? 희망은 없는가? COVID-19 팬데믹 중 혈장을 기증한 이들에 대한 심재만 교수의 연구는 위기 상황에서 감각이 만들어지는 능동성과 역동성을 보여준다. 왜 코로나19 생존자들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료로 혈장을 기증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연구는 팬데믹과 같은 재난 속에서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변화를 겪는데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기존의 지식이나 시스템이 불충분하다고 느끼며, 이 불확실한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도전적이고 복잡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liminality)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 상황을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기회로 보고 활력을 얻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불안정하고 파괴적인 힘으로 경험한다는 점을 설명하는데 두 가지 결과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즉, 사람들이 겪는 한계상황은 단순히 하나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복합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누군가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또 다른 일부는 공동체 의식이나 연대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의 이중성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특성으로, 사람들은 재난을 단순히 부정적인 경험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으며, 복잡한 감정과 생각 속에서 상황을 해석하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감각 경험은 단순한 생리적 반응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의미가 능동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이며 이를 위해 건강한 상호작용과 비판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재난의 원인이 자연적 요인에서 사회·구조적 요인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후 지금의 우리 사회 역시 재난 후 회복의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재난을 단순한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개인의 성장과 변화의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공동체와 연대를 핵심 가치로 삼고, 함께 공유하는 감각(common sense)으로 회복해 나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자,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고 회복하는 데 있어 가장 상식적인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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