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수(바른역사 시민연대 공동대표)

조선 영조때의 남인 유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전라도 사람은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데에 쉽게 움직인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중환은 팔도의 인심을 다루면서 경상도외에는 아주 혹평을 하고 있다. 오직 경상도 사람들에게만 "풍속이 진실하다"고 적고 있다.
택리지 저자인 이중환은 남인 강경파 출신이다. 당시 남인들의 지지기반은 영남이었다. 이 때문에 영남인들에만 호의적인 평을 했던 모양이다. 호남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역사는 영남 출신들이 주도한 군부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강화되었다. 이번 윤석열의 쿠데타 모의 때 호남 출신들은 배제됐다고 한다. 아니 낄만한 정보, 수도권 사령관의 자리에 호남 출신이 없으니 당연히 배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 쿠데타 반란의 주요 종사자 중에 호남 장성들이 없는 것을 보고 극우 유튜버들은 또 염장질을 하고 있다. "왕건의 ‘훈요십조’에서 한 말이 사실이었다" 등등 정신 난간 극우 등은 이때다 싶어 또 지역 편가르기, 지역차별의 막말을 해대고 있다. 전라도인을 비하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원천은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죽기 한달 전 박술희에게 구술했다고 하는 훈요십조는 제8조에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차령 이남의 지방은 산세가 거꾸로 달려 역모의 기상을 품고 있으니 결코 그 지역 사람을 중히 쓰지 말라". 즉 공주 이남의 땅은 후백제 사람들이니 중용하지 말라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훈요십조는 후손들에게 창업주 왕건이 내린 유훈이니 당연히 사관(史官)들이 받아 적어야 하나 ‘박술희라는 무관을 홀로 불러 기술하게 하였다’ 라는 부분부터 의심이 든다. 더구나 태조 왕건을 이을 태자는 나주 출신 호족의 딸 장화왕후의 아들이었다. 그가 고려 2대 왕 혜종이다. 잘 알다시피 왕건은 나주 지역 해상세력의 도움으로 삼한을 통일할 수 있었다.
고려사 태조전에는 이를 "태조는 수군으로 나주를 점령한 뒤 그 재물의 힘으로 삼한을 통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건은 재물뿐만 아니라 전라도 사람들의 도움으로 고려를 창업할 수 있었다. 왕건의 창업을 도운 도선국사는 영암 구림 출신이고, 역시 구림 출신 최지몽은 태조이래 4대에 걸쳐 재상을 맡았다. 곡성 출신 신숭겸은 팔공산에서 왕건을 대신해 죽어 개국공신 1호가 되었다. 이후 성종까지 전라도 출신들은 고려 조정에서 요직을 많이 차지하였다.
그런 왕건이 호남 지역을 비하하고 인물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유훈을 남길 가능성은 없다. 훈요십조는 신라인들(경주인들)에 의해 조작 창작되어 고려사라는 정사에 실리게 되었다.
훈요 10조의 조작에 대해서는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 먼저 943년 박술희가 태조의 구술을 직접 받아 적었다는 왕실 기록은 1018년 거란 2차 침입시 불타 없어졌다. 그때까지 훈요 10조를 본 사람도, 존재했다는 사실도 없었다. 그러다 현종때 거란을 물리치고 왕실 기록을 다시 정리했는데 이때 느닷없이 훈요십조가 등장한다. 당시 사서를 집필하던 최제안이 최항의 집에서 발견했다고 훈요10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왕가의 문서가 갑자기 민가에서 나온 것이다. 최제안, 최항은 모두 경주 사람으로 현종은 경순왕의 딸이자 태조의 왕비 손녀딸과 결혼한다. 이때 경주(신라의 후손) 사람들은 사서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용부이창(用否而昌) 삼한재조(三韓再造)·모든 것을 끊음으로써 번창을 이루고, 이로써 삼한을 다시 세우다’. 고려 왕비를 신라인으로 세습시켜 이것을 마치 새나라를 창업한 것 마냥 신라인들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후 왕비는 신라 경주 김씨들로 채워졌다. 신라인(경주인)들의 입장에서 왕권과 국가권력을 신라 이후에 재집권한 것이다. 그러하니 이들이 만든 훈요십조에는 후백제의 세력들을 철저히 권력의 밖으로 축출했어야 했다. 또한 이때 경주 사람 김부식은 삼국사를 저술했고 백제는 철저하게 작고 형편없는 나라로 기술했다.
현재까지 전라도 차별의 원천이 된 훈요십조가 경주인들에 만들어진 허구의 기록인 것이다. 권력욕과 혈족 이기주의 때문에 반도의 좁은 땅덩이를 남북과 동서로 갈라치기한 신라인들은 지금이라도 역사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 과오는 당나라라는 외세를 불러들여 동족을 멸한 죄 못지 않게 크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우선시하는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배타적이고 그것이 국익과 민족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하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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