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수(바른역사 시민연대 공동대표)

"낙양성(洛陽城) 십리허(十里許)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 몇이며 절세 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내 인생 한번 가면 저 모양이 될 터인데, 에해 만수(萬壽) 에해 대신(大神)이여"
우리 남도민요 ‘성주풀이’ 1절 가사이다. 어께 춤이 절로 나오는 흥겨운 민요이다. 성주풀이는 처음에는 집안의 무사태평과 번영을 빌고자 벌이던 성주굿에서 무당이 부르던 무가(巫歌)였다가 민간에 퍼져 민요화 된 남도민요이다.
성주는 집안의 조상신이고, 각 가정에서 집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모셨던 신이었다. 지금도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간직할 때 ‘성주단지 모시듯 한다’라는 말을 쓴다.
민요의 가사와 작곡자는 대부분 알려져 있지 않다. 보통은 그 지역의 풍속, 역사, 지리를 담아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것을 누군가가 정리했으리라 추정해 본다. 그런데 남도 민요 성주풀이의 가사에는 좀 의아한 부분이 있다. 가사에 나오는 ‘낙양성 십리허에’이다. 십리허의 허(許)는 쯤,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으니 낙양성 십리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낙양성에서 정확히 4㎞ 북쪽으로 가면 북망산 또는 망산(邙山))이 나온다. 이곳은 낙양을 수도로 한 왕가들의 왕족, 고관대작들만이 묻힐 수 있는 중국 최고 명당의 무덤터였다.
공교롭게도 성주풀이 가사에서는 우리 한반도에서 수천㎞ 떨어진 낙양의 북망산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노래하고 있다. 마치 잘 알고 거기에 살았다는 듯이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으니 좀 괴이하기는 하다. 이 북망산은 우리의 상여소리에도 등장하는데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어야~"라고 한 다음 "북망산천…"하고 답곡이 흘러나오는데 이 ‘북망산천’이 바로 북망산을 가리킨다. 우리 조상들에게 북망산으로 갔다는 말은 곧 죽었다는 뜻과 동의어로 쓰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낙양의 북망산에는 당에 패망한 고구려의 왕족, 백제의 왕족과 투항 장군들이 대거 묻혔다는 것이다. 형제간 권력다툼으로 고구려를 당에게 갖다 바친 연개소문의 장남 연남생, 나중에 당에 투항한 셋째 연남산이 이곳에 묻혀있고, 백제의 패망 군주 의자왕과 백제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부여융도 당군에 끌려와 이곳에 묻혔다. 백제 출신의 명장 흑지상지 묘도, 웅진성에서 의자왕을 끌어다 당군에 바친 예식진의 묘도 이곳에 있다. 멸망시킨 나라의 왕족과 장군들을 당은 왜 왕족들의 무덤터에 묻히게 했는지 아이러니하다.
낙양 인근이 한때 우리 민족의 터전이었기 때문에 민요에서 불려지게 된 것일까? 아니면 중원 문화에 대한 事大가 민중에게 보편화 된 것일까?
성주풀이의 가사가 심상치 않은 부분은 또 있다. 후렴에 에해 "만수(萬壽) 에해 대신(大神)이여" 부분이다. 여기서 萬壽는 만수산을 말함이고 大神은 국가나 집안의 우두머리 신을 말한다. 萬壽山은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조선 개국의 참여를 회유할 때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라는 시조 ‘하여가’에 나온다. 만수산은 당시 개성의 서쪽에 있는 산이었다. 북방 민족에게 북극성과 북두칠성은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한 나라의 도읍지에는 북두칠성의 천기(天氣)가 서려 있는 만수산(萬壽山)과 아미산(峨嵋山)이 있다. 한반도의 옛 도읍지인 평양에도 만수산과 아미산이 있으며, 백제의 왕도 부여의 외산면에 북두칠성지지의 만수산과 아미산의 명산이 있다. 모두가 우리 민족의 전통 신앙인 칠성 신앙에 따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바랬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남도민요 성주풀이의 가사를 우리의 역사를 한반도로 가두어 생각해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지침으로 쓰인 반도사관으로 보면 성주풀이는 허황된 慕華思想의 가사일 뿐이다. 그러나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매국 사학자들이 우리 민족의 강역을 반도로 가두건 말건 민초들의 역사 인식과 뿌리는 바뀌지 않고 민요 가사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6월 3일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우리역사 바로세우기 운동본부, 바른역사 시민연대 등 시민 역사단체는 ‘식민사관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해 대선 후보들에게 식민사관 청산과 역사 교과서 자유 발행제를 공약사항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족의 역사가 바로 서지 않으면 그 민족은 ‘얼 빠진 민족’이 될 수 밖에 없다. 늦었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를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80년이 넘는 반도사관의 굴레를 벗어내고 우리 민족의 사관으로 선조들의 발자취를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후손들에게 ‘얼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