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민(남도일보 경제부장)

 

고광민 남도일보 경제부장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지난 4일 지인 두 명과 함께 조촐한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지난해 추석명절 연휴 기간 자리 후, 간만의 힐링타임이었다. 광주 충장로와 북구 운암동 등에서 자영업과 임대업을 하는 이들과의 대화 주제는 한결같이 매번 비슷한 루틴으로 ‘머니·캐쉬’ 등 돈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날은 평소와 다르게 대통령 파면 이슈가 첫 안줏거리로 등장했다. 지인들의 정치적 지향점이 별반 다르지 않아 파면에 대한 정당성에 무게가 실려 이야기는 원사이드로 흘러 금세 흥미가 떨어졌다. 정치적으로 뭔가 색다른 성향이나 독특한 논리로 의견이 서로 갈려 ‘티키타카’ 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간만에 의견이 합치되면서 본의 아니게 통합을 이뤄내 버렸다.

사소한 사안에도 의견이 달라 다툰 사례가 비일비재 했지만, 메가톤급 파면 이슈는 서로가 당연(?)하다는 썰로 소줏잔을 채우고 비워냈다. 테이블 위에 술병이 점점 쌓이자 결국, 인생살이와 돈 이야기로 화제가 급전환됐다. 주식·코인·부동산 등 온갖 잡스런 정보로 이야기가 만개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잔을 부딪쳤다. 시간이 흐르고 취기도 점점 올라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솔직한 고민들도 흘러 나왔다. 두 친구 모두 지역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하면서 나름 탄탄한 기반을 갖춰 경제적으로 힘들 것이란 생각은 전혀 못했지만, 속내 사정은 많이 달랐다. 임대업을 하는 친구는 건물 공실로 고민이 깊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바닥을 친 실물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에 무리하게 경매 입찰을 통한 건물 매입 및 투자를 진행, 현재 상당한 곤혹을 치르고 있다.

건물에 공실이 넘쳐 은행 이자에 대한 부담이 점점 현실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 3층 건물 5곳 점포에 고작 두 곳 만이 입주해 근근히 버티는 상황이다. 2곳 가운데 한 곳인 2층 노래홀은 지난해부터 월세가 점점 밀려 전세금에서 세를 충당하고 있다. 그나마 1층 점포인 통신사 브랜드가 수년째 버티고 있는 상황이고, 또 다른 1층 점포 한 곳은 1년이 넘도록 임차인을 찾지 못하고 텅 비워져 있다. 현재 임차인 역시, 경기불황에 따른 수익 감소로 언제 철수할지 알 수 없다.

다른 지역, 또 다른 건물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2~3층 점포는 지난해 10월부터 비어 있고 임대문의 조차 없는 상황이다. 1층 분식점과 속옷매장은 올 초부터 월세를 깎아달라는 요청으로 고민 중이다. 은행에 들어갈 돈은 태산이지만, 들어올 돈은 갈수록 메말라 가는 형국이다. 빚을 내서라도 은행 이자를 감당해야 할 처지다.

숙취가 제법 오른 친구는 혀가 꼬인 상태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 경기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때 까지만 버틸란다"며 쓴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스크린 골프장을 운영하던 친구 역시, 두 달전 은행빚만 잔뜩 지고 업장을 정리했다. 나름 거액을 투자해 1년 4개월 동안 성실하게 꾸려왔지만, 폐업이란 현실에 직면했다. 업장을 정리한 친구는 "지금 상황은 뭘 해도 안 되는 분위기다. 하지 않는 게 돈을 버는 것이고 아끼는 길이다. 내년 초에나 절치부심 재기할 생각이다"고 토로했다.

어려운 경제상황에 지독한 불황까지 장기화되면서 주변 내수 분위기는 우려보다 더욱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서민경제의 최일선에 서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직격탄을 맞고 휘청이고 있다. 밀린 은행 이자와 점포 임대료라도 내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겨우 버티는 자영업자들이 주변에 부지기수다. 매출급감 속에서도 융자에 따른 대출이자를 꼬박꼬박 갚느라 허리가 휘어 부서질 지경이다.

실제, 지난달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자영업자들이 주요 시중은행으로부터 빌린 대출금의 연체액 및 연체율이 5년 사이 4배까지 급등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경제적 기반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부는 내수진작을 강하게 외지고 있지만, 현실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은 허공에 메아리처럼 들릴 뿐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이대로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이들은 서민경제를 지탱하는 기본 지표이자 주요 버팀목이다. 정부는 최악의 비상 상황이라는 현실을 고개숙여 반성하고, 자영업자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관련 예산확대 및 정책지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들이 살아야 서민들이 살고 나라가 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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