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복자가 어언 나이 스무 살이 되자 군역에 동원되었다. 유복자는 산을 넘고 재를 넘어 어느 산성으로 접어들자 한 늙은 병사를 만났다. 그는 신역을 마치고 환갑이 되어 귀향하는 중이었다. 늙은 병사가 젊은이와 마주치는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산마루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번도 보지 않았는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구려."

"소인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마을 사는 누구신고?"

"매당 고을의 김진사 댁 종입니다요. 요번에 소집령을 받고 입영하는 중입니다."

"어머니는 누구를 기다리시지 않던가?"

"날마동 정한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지아비의 무사를 빌었나이다. 그런 어머니가 삼 년 전에 돌아가시고, 삼 년 시묘살이를 마치자 군 소집령이 내려서 입영 중입니다."

늙은 병사는 그를 껴안고 울었다.

"니가 내 자식이여. 나는 허천복이고 너는 나의 유복자여."

젊은이도 "아버지"하고 그를 껴안고 울었다. 다음날 재를 넘던 사람이 늙은이와 젊은이의 시체를 발견하였다. 두 부자는 다시 평생 헤어져 살 것을 두려워하고, 그럴 바에는 여기서 끌어안고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하고 자결해버린 것이었다. 그 이후 산마루에 있는 바위가 부자암(父子巖)이라는 전설이 내려왔다.

이런 사연을 들었던 이응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꼈다. 왕실 조정은 어느 행성에 있는 것이며, 지방관과 부호들은 무슨 꿈을 꾸는가. 도대체 백성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 그때 이응서는 만덕스님으로부터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哀切陽)이라는 시를 접하였다.

"다산 선생의 애절양이라는 시가 있네. 애통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자신의 좆대가리를 잘라버렸다는 어느 천인의 사연일세."

"그가 왜 소중한 양물을 잘랐습니까.?"

"더러운 세상이라서 그러지. 내가 그 시를 모두 외운다네. 읊을 것이니 들어보시게."

그가 나직하게 시를 암송하였다. 그리고 어느새 울고 있었다.

蘆田少婦哭聲長(갈밭마을 젊은 아낙 길게 길게 우는 소리)

哭向縣門號穹蒼(관문 앞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

夫征不復尙可有(출정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 있다 해도)

自古未聞男絶陽(사내가 제 양물 잘랐단 소리 들어본 적 없네)

舅喪已縞兒未(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名簽在軍保(집 삼대 이름 군적에 모두 실렸네)

薄言往虎守(억울한 하소연 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里正咆哮牛去早(이정은 으르렁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다네)

磨刀入房血滿席(남편이 칼 들고 (방으로)들어가더니 피가 방에 흥건하네)

自恨生兒遭窘厄(스스로 부르짖길 "아이 낳은 죄로구나")

蠶室淫刑豈有辜 (누에 치던 방에서 고환 까는 형벌도 억울한데)

閩囝去勢良亦慽 (민나라 자식의 거세도 진실로 또한 슬픈 것이거늘)

生生之理天所予 (자식을 낳고 사는 이치는 하늘이 준 것이요)

乾道成男坤道女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는 것이라)

豕猶云悲 (거세한 말과 거세한 돼지도 오히려 슬프다 할만한데)

況乃生民思繼序 (하물며 백성이 후손 이을 것을 생각함에 있어서랴!)

豪家終歲奏管弦(부자집들 일 년 내내 풍악 울리고 흥청망청)

粒米寸帛無所損(이네들 한 톨 쌀 한 치 베 내다바치는 일 없네)

均吾赤子何厚薄(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평하다니)

客窓重誦鳩篇(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시구편을 거듭 읊노라)-‘국역 다산시문집’ 민족문화추진회, 1994 자료 인용.

모두 암송한 뒤 휴- 길게 한숨을 내쉬던 만덕 스님이 독백하였다.

"이것이 과연 시네.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디 한가롭게 달과 구름과 강물과 기생과 어울린다는 시가 시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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