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때 요시무라 첩보대장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오시마 혼성여단장 각하, 각하야말로 대일본 제국의 제일검 아니무니까? 각하의 칼날 하나에 조선의 산천초목이 바르르 떱니다. 걱정 묶어두시기 바라무니다."
"그대가 나를 잘 안다?"
"안다마다요. 각하의 칼이면 조선 왕실은 하루아침에 개박살나버리무니다."
"허허허…"
오시마 혼성여단장의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갔다. 아첨과 칭찬의 말에는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이다. 요시무라가 그동안 첩보 사항을 점검한 결과, 조선 왕실은 언제 무너져도 무너질 운명에 있었다. 손가락만 살짝 스쳐도 가루가 되어 폭삭 무너질 판이다. 나라는 숨 쉬는 것도 허덕일 정도로 허약해있었다. 생산성은 떨어지고, 지배층은 가난한 백성을 뜯어 먹느라 정신없고, 백성들은 좌절과 절망감으로 집단 허무주의에 빠져있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장사 백명만 궁중에 쳐들어가도 접수할 수 있을 정도이무니다. 청군과 조선군, 양국 군대는 군대라기보다 할 일 없는 건달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무니다. 그러므로 대일본제국 군대가 선제공격을 가하여 조선의 보호국으로 나서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무니다. 대일본제국의 훈련된 병사들과 성능 좋은 무기의 화력들로 인하여 조선반도는 아싸리 말해서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릴 것이무니다."
요시무라 첩보대장은 계속 호기를 부렸다.
"그런데 조선반도 남서쪽 전라도 지방에서 민란이 일어나고, 그게 동학농민 저항이라고 했던가? 그들이 저주와 복수의 일념으로 조선 관청을 부순다고 하지 않나? 이때 우리가 덤벼들면 조선의 중앙군과 동학농민군이 합세하여 우리에게 대항하고, 거기에 청군이 응원군으로 나선다면 천하의 대일본제국 군대라도 밀리지 않겠나?"
요시무라 첩보대장이 단박에 부정했다.
"오시마 혼성여단장 각하! 걱정은 내려놓으시기 바라무니다. 조선 조정은 정통성 없는 쌍것들, 즉 농민군을 벌레보다 못하게 취급하고 있으며, 외세에 나라가 먹히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종자들에게 나라를 내줄 수 없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으무니다."
"왜? 대일본 제국에게 나라를 넘기더라도 동학농민군 무리에게 정권을 빼앗길 수 없다?"
"그렇스무니다."
그동안 조선 조정과 저잣거리의 민심을 살펴본 결과, 하나같이 동학농민군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민들도 계급의식이 분명하여, 조정이 쌍 것들이 들고 일어난다고 모함을 하니 세뇌되어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편견일지라도 관에서 어떤 성격 규정을 하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백성들이었고, 그렇게 그들은 체제에 순치되어 살아왔다. 말하자면 계급의식은 구조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군."
오시마 혼성여단장이 고개를 젓자 요시무라 첩보대장이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 이런 차별은 특권의식 때문이무니다."
"특권을 타파하자고 일어난 운동이 동학농민군운동 아닌가? 듣자 하니 그들은 폐정개혁안을 내놓고, 정부에 시정하기를 바란다고 하지. 탐관오리 척결, 신분제 폐지, 과부 개가 허용, 노비 해방, 천민의 평민화, 이런 주장인데, 그것은 우리 대일본제국이 추진하는 메이지 유신과 같지 않나? 일견 옳은 주장이잖나. 조선 조정이 그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낡은 병폐를 청산하면 깨끗하게 해결되는 것 아닌가?"
"각하, 당치 않은 말씀이무니다. 벌레가 주인 행세하겠다는데 가만둘 리 있을까요? 밟아버려도 무방한 것을 오냐오냐 받아줄 수 있겠스무니까?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무니다."
"그래서 나라를 외세에 빼앗기더라도 금수(禽獸)들에게 권력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스무니다. 쌍것들에게 권력을 내주느니 자결해버리겠다는 것이고, 자결이 어려우니까 외세에 나라를 내주며 그들의 마름으로 또 다른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것이무니다. 사대 근성이 내면에 뿌리 깊이 아로새겨져 있으무니다. 따라서 지배층과 농민군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이무니다."
"오기 하나는 왔더군. 헌데 그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유리한 국면일세."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