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인근에 우뚝 선 ‘인공산’…쓰레기 소각하고 에너지도 생성
소각시설·스키장·암벽장 갖춰
덴마크 최고 문화관광지에 위치
‘기피시설→기대시설’ 발상 전환
랜드마크 자리매김…年 5만명 방문
연간 63만5천톤 쓰레기 태워져
첨단시설로 오염물질 배출 ‘제로’
악취도 없어…누구나 확인 가능
시민들, 지속가능 환경 자부심↑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최근 수년간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이자 대표적 녹색도시로 꼽힌다. 도시 전체가 고풍스러워 말 그대로 ‘동화’ 같다.
도시의 유구한 역사를 보여주는 오래된 건축물과 공원들,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와 활기찬 도시 풍경은 이곳이 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코펜하겐의 도심에 대규모 자원회수시설(쓰레기 소각장 겸 열병합발전소)가 자리하고 있다. 관광지이자 문화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뉘하운에서도 코펜하겐 상징인 안데르센의 동화 주인공인 인어공주 동상 앞에서도 버젓이 눈에 들어온다. 살기 좋은 도시, 녹색 도시, 안데르센의 숨결이 머문 도시에 자원회수시설이 어떻게 들어섰을까.

/김다란 기자 kdr@namdonews.com
◇연간 방문객 5만명…왕실 인근 도심 위치
지난 6월 19일 찾은 덴마크 코펜하겐 아마게르 일대. 우뚝 솟은 85m의 굴뚝이 유독 눈에 띈다. 하얀 수증기가 쉴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높다란 굴뚝은 거대한 몸집과 독특한 외벽이 어울어져 더욱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굴뚝은 코펜하겐 최고의 관광지이자 문화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뉘하운에서도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자원회수시설(폐기물 소각장 겸 열병합발전소)인 아마게르바케(Amager Bakke)다. 아마게르는 지명, 바케는 덴마크어로 언덕이라는 뜻이다.
2017년 완공된 아마게르바케는 덴마크 왕실의 거주지인 아밀리엔보르 궁전과 직선 거리로 불과 2km 남짓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대규모 주택 단지가 있다.

16일 아마게르바케의 운영사 아마게르 자원센터(Amager Resource Center, ARC)와 코펜힐(Copenhill) 등에 따르면 아마게르바케에선 덴마크 전역에서 모인 쓰레기가 1년에 63만5천톤씩 소각된다. 모인 쓰레기는 소각이 잘 되도록 섞는 과정을 거쳐 소각로에서 태워진다.
아마게르바케 주차장에서 스키 장비 대여점을 지나면 곧바로 스키장으로 가는 길과 옥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나오는데, 이 엘리베이터는 사방이 유리로 만들어졌다.
시민들이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아마게르바케 내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내부는 쓰레기를 소각하는 시설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유지돼 있었다.

폐기물을 태울 때 발생하는 오염물질은 각종 정화 시스템을 통해 제거되고, 굴뚝에서는 99.9% 깨끗한 수증기만 나온다.
아마게르바케의 염화수소, 이산화황 등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EU(유럽연합) 권고 기준보다 훨씬 낮다. 이는 한국과 유럽의 배출 기준을 크게 밑돈다. 황산화물, 염화수소, 미세먼지 등도 기준치에 미치지 못한다.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누구나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 홈 페이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건물 주변 악취는 철저한 내·외부 압력 차이 관리를 통해 잡아낸다. 이 때문인지 본보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트럭이 모이는 집하장을 제외하곤 건물에선 어떤 악취도 맡지 못했다.

◇산 없는 덴마크 ‘친환경 역발상’
쓰레기 소각장인 아마게르바케가 혐오시설을 넘어 덴마크의 랜드마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발상의 전환 덕이다.
지금은 코펜하겐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이곳도, 처음에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다. 쓰레기 소각장이 도심의 조망권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코펜하겐시는 고민 끝에 2010년 주민친화형 디자인을 조건으로 내걸고 공모를 진행 했다. 친환경 설계와 주민친화적인 디자인 공모를 통해 ‘폐기물 처리시설도 투명하고 깨끗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서였다.
공모에 당선돼 설계를 맡은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Bjarke Ingels Group) 건축가는 발전소 여러 동을 높이 순으로 이어 그 위에 스키 슬로프를 만드는 안을 내놓았다.
평지인 덴마크에 스키 슬로프를 만드는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혁신적이었다.
그동안 지리적 특성으로 온통 평지로 둘러쌓인 덴마크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등산이나 스키와 같은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스웨덴이나 필란드, 노르웨이 등 인근 국가로 이동을 해야만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코펜하겐시는 이 설계를 곧바로 채택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당시 건립을 주관했던 ‘아마게르 자원센터’‘(Amager Resource Center, ARC)와 주민 공청회를 열고, 자원회수시설에 최초의 인공산과 스키장 설립을 강조하며 주민들을 설득했다.
자원회수시설에 최초의 인공산과 스키장 건립하는 계획이 발표되자 주민들의 반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히려 빨리 지어서 스키장 등이 실현되길 바라는 시민의 목소리가 커졌다. 도시의 특성, 주민들의 니즈, 발상의 전환 활용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이렇게 조성된 아마게르바케는 이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연간 방문객만 약 5만 명이다. 스키장과 암벽등반 등의 시설을 이용하기 위한 사람들과 견학을 오는 학생들, 벤치마킹을 위해 찾는 전세계에서 찾는 관광객 등을 포함한 숫자다. 이날도 산책을 하는 시민들과 체험학습을 위해 이곳을 찾아 견학온 아이들과 관광객들이 자주 보였다.
현재 아마게르바케 운영사 중 하나인 CopenHill 알렉산더 칸스트럽 링링 영업 관리자는 “도시 대부분이 평지인 덴마크에선 스키장과 인공산이 있는 아마게르바케는 시민들에게 선물과 같은 존재다”며 “특히 겨울에 인기가 많고 유럽과 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도 찾아온다”고 말했다.

아마게르바케의 스키슬로프는 사계절 스키를 탈 수 있다. 스키슬로프 옆에는 리프트 외에 건물 꼭대기 공원과 지상을 연결하는 산책로와 계단이 자리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인공 암벽 등반로도 있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이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높다.
아마게르바케 꼭대기에 오르면 코펜하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다. 이밖에 야외공연장과 카페 등 다양한 여가시설을 갖추고 있다. 스키장과 암벽등반을 제외하곤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밖에 발전소 내부에 홍보관을 마련하고, 폐기물을 태우는 열병합 발전의 거부감을 낮출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쓰레기… 無 →有 찾다
아마게르바케는 쓰레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섭씨 950~1100도에 달하는 열로 고압 증기로 전기와 지역난방수를 만들어 130만 광역 코펜하겐 주민 중 9만 가정에 공급된다.

에너지원인 발전소가 도심에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덕분에 코펜하겐의 지역난방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축에 속한다. 또 쓰레기를 처리 비용과 열, 전력 판매 비용 등을 합치면 연간 약 30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린다.
당초 코펜하겐시도 처음에는 더 먼 곳에 소각장을 짓는 것을 고려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에너지 공급을 위한 송전망을 추가로 건설해야 어려움이 있었고, 결국 원래 부지에 현재의 아마게르바케를 지었다.
현재 덴마크를 비롯한 여러 유럽의 국가들은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로 만드는 것이 제한된 영토에서 지속 가능한 쓰레기 처리 해법 중 하나라고 여긴다.
지역에서 나온 쓰레기는 지역에서 처리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쓰레기처리와 에너지 생성이라고 하는 녹색 뉴딜의 기조에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위해선 시민들의 안전을 담보하고, 정보공개와 시설 운영에 주민들을 참여시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알렉산더 칸스트럽 링링 영업 관리자는 “아마게르바케는 지역에서 나온 쓰레기를 지역에서 처리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친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며 “이 시설을 반대했던 덴마크 시민들도 이제 쓰레기를 소각하면서도 스키슬로프와 등산로에 전기·난방에너지까지 공급해주는 아마게르바케를 자랑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코펜하겐/김다란 기자 kdr@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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