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인 등 인기 트로트 가수는 축제 독일까, 약일까
일부 지자체 축제예산 30~50% 톱스타 섭외비에 ‘몰빵’
"시장, 군수가 만들어서 주민에게 시혜주는 행사" 인식 문제

 

지역축제가 변하고 있다. 전통적인 지역자산에 스토리텔링을 입히던 방식에서 벗어나 송가인 등 유명 연예인들이 지역축제의 메인을 장악하고 있다. 나주 영산강축제의 경우 아예 뮤지컬배우, 트로트 가수 등을 전면에 배치해 팬덤을 관광객으로 유치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는 유명 연예인을 통해 SNS 화제성을 높이고 단기간에 관광객을 대거 유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반면, 연예인 순회공연장이 돼 버린 지역축제가 과연 진정한 축제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전남지역 한 축제의 인기 트로트 가수 공연. 지자체 홈페이지 캡쳐
전남지역 한 축제의 인기 트로트 가수 공연. 지자체 홈페이지 캡쳐

 

◇‘유명 연예인’의 관광 파급력

지역축제 조직위와 자치단체가 연예인을 섭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즉각적인 흥행 효과다. 팬덤을 보유한 가수나 배우가 출연하는 순간, 축제는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단기간에 전국 단위의 관심을 끌어올릴 수 있다. 평소 축제의 존재조차 몰랐던 이들조차 공연 소식을 접한 뒤 해당 지역을 방문하게 되는 식이다.

또 팬덤에 기대어 단기적으로 많은 관광객을 빠르게 유치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별도의 홍보 전략이나 장기적 브랜드 기획 없이도 스타 연예인 한 명 섭외만으로 인지도 상승과 관광객 유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접근성과 인지도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지방일수록 이보다 더 확실한 마케팅 수단을 찾기 어렵다.

지난해 ‘나주 영산강 축제’는 트로트 중심 라인업을 탈피해 뮤지컬과 K-팝 공연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개편했다. 그 결과 수도권 팬들이 단체 버스를 대절해 방문했다. 나주시청 관광과 관계자는 "뮤지컬 팬층의 충성도가 워낙 높아 서울 등지에서도 대규모 방문이 이어졌다"며 "숙박, 식사 등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올해 축제에는 아예 전 일정에 뮤지컬, 트로트, K-팝 등을 날마다 배치했다.

이 같은 연예인 공연은 지역민에게도 새로운 문화 향유의 기회로 작용한다.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었던 K-팝 콘서트, 토크쇼, 뮤지컬 등이 도심 외곽이나 농산어촌 축제장에서 펼쳐지면서 주민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 축제 전문가는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주민들에게는 연예인 공연이 접근성 높은 고품질 콘텐츠로 기능하며, 실제 만족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 높은 출연료에 예산 비효율 편성

연예인 지역축제 참여는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 예산 집행 효율성과 지역축제 콘텐츠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축제 예산의 30~50% 이상을 유명 연예인 섭외비에 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기 가수 한 명의 출연료가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에 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본보가 행정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전남 지역축제 예산 자료’에 따르면 2023년부터 2년간 전남의 지역 축제 총예산은 약 641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상당 부분이 연예인 출연료로 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나주시의 ‘나주 영산강 축제’는 송가인·나태주 등 14명의 연예인에게만 2억5천만 원을 지급했다. 광양 전어 축제는 약 2천600만원, 광양전통숯불구이축제는 4천만 원을 각각 사용했다. 강진 청자 축제에는 1억2천만원의 비용이 지출됐다. <축제별 참여 연예인 표 참조>

이처럼 공연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구조적인 한계와 정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다. 많은 지자체들이 축제를 단순한 문화 행사라기 보다, 단체장 임기 내 가시적인 ‘성과물’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톱스타 연예인 섭외가 축제 기획사와 단체장의 역량으로 인식될 정도다.

한 축제 전문가는 "출연료 수억 원을 쓰는 대신, 지역 정체성을 담은 프로그램을 1~2년간 쌓아가는 편이 장기적으로 훨씬 낫다"며 "하지만 당장 티가 나지 않는 정책은 홍보 효과가 약하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음달 열리는 나주 영산강축제 일자별 연예인 공연 리플릿.  영산강축제 홈페이지 캡쳐
다음달 열리는 나주 영산강축제 일자별 연예인 공연 리플릿.  영산강축제 홈페이지 캡쳐

 

◇ "시민 문화 자산 훼손" 지적

전문가들은 축제가 연예인 중심의 소비형 행사로 기획되는 흐름이 지역 고유의 문화 자산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한다. 축제의 주체가 지역 주민임에도, 일부 지자체는 단기 성과에만 집중해 축제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것.

최영화 호남대 미디어영상공연학과 교수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모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예인 초청이 가장 손쉬운 수단일 수밖에 없다"며 "지역민들 사이에서도 유명 연예인을 보고 싶어하는 요구가 있으니,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해서 이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축제는 지역민들의 삶과 역사, 문화를 농축해 보여주는 장이어야 한다" 면서 "단기 성과 중심으로 기획되다 보니 축제의 방향성이 근본부터 어긋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연예인 섭외비가 커질수록 정작 지역 콘텐츠에는 거의 예산이 배정되지 않는다"며 "이는 고민 없는 결과이며, 결국 축제의 아이덴티티 자체가 흔들리는 참사"라고 했다. 그는 "연예인 공연은 쉽고 빠른 흥행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계속 이런 방식으로만 가다 보면, 지역 축제는 결국 다 똑같아진다"며 "다양성 속에서 품격이 생기는 것인데, 지금처럼 획일화된 축제가 늘어나는 건 지역 문화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축제의 주체가 시민임에도, 시민 스스로 이를 "지자체장이 만들어서 시혜를 주는 행사"로 인식하는 구조 자체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축제는 시민의 세금으로 열리는 행사다. 지자체가 축제를 기획하는 건 권한이 아니라 책무"라며 "지자체는 더 깊은 고민을 통해 질 높은 문화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연예인 섭외 없이도 그 지역의 이야기를 제대로 보여주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축제를 만들 수 있다"며 "축제는 지역성을 담는 그릇이다. 차라리 아직 정체성을 못 찾았다면 축제를 미루는 게 낫다고 본다. 고민 없는 축제는 결국 시민들의 문화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만 낳게 된다"고 꼬집었다.

◇ 체류형 관광으로 재정비 시급

전문가들은 단순 공연 중심의 ‘소비형 이벤트’에서 벗어나 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처럼 공연 당일 인파만 몰리고 바로 빠져나가는 구조로는 실질적인 경제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남 A지자체 관계자는 "공연 당일 수만 명이 몰려도, 대부분 공연만 보고 돌아가 숙박·식사 등 지역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단순 집계상 인파와 실질적인 경제 활성화 사이에는 괴리가 크다"고 토로했다.

임석 전 강진군 관광재단 대표 역시 "연예인 공연을 통한 단기 흥행에 치중하면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대표 축제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재정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축제 하나를 만들더라도, 해당 지역만의 역사·문화·특산품과 연결해 체류형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며 "관광객이 하루 이상 머물며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서영 기자 dec@namdonews.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