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재원 열악할수록 축제에 올인... 방문객, 상권 활성화 등 측정 불가
중앙정부 교부세 지원에 생활인구 산정하자 축제 관람객까지 수치화
"객단가, 체류일수, 재방문율, 지역업체 매출 등 지표 개발해 공개를"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일수록 지역 축제에 의존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자체 세수 기반이 취약한 만큼 세외수입을 늘리고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가장 손쉬운 수단인 축제를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축제에 수십억원대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정작 공신력 있는 방문객 집계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보여줄 만한 객관적 수치가 부재해 ‘혈세 낭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열악한 재정에도 ‘남의 돈’ 축제
2023년 기준 전남 평균 재정자립도는 시 지역 21.2%, 군 지역은 9.1% 수준이다. 2024년 역시 각각 20.7%, 9.6%이다. 군 단위 지자체들은 대부분 세수 기반이 취약한 상황이지만, 수억에서 수십억원의 예산을 축제에 투입하고 있다.
전남 장흥군은 도내에서 가장 많은 축제 예산을 쓰는 지자체로 꼽히지만 재정자립도는 2023~24년 7.5%·8%에 불과하다. 함평군(7.6%·7.2%), 강진군(7.6%·7.8%) 역시 심각한 재정결핍을 보이고 있다. 목포시(18.7%·16.4%), 영암군(11.1%·12.1%)도 열악한 재정 속 수억 원대 예산을 지역축제에 쏟아붓는다.
이처럼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것은 세입 기반이 허약하고, 국·도비에 의존해 축제 사업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상 중앙 지원금인 외부 재원에 의존해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지나치게 규모가 큰 축제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대형 축제를 벌이면서, 집행 과정이 느슨하고 비용 대비 효과 분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조를 두고 "재정 형편이 취약할수록 보여주기식 성과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행태"라고 지적한다. 축제를 통해 단기적으로 수십만 명이 몰렸다는 ‘숫자 성과’는 얻을 수 있지만, 실질적인 지역경제 활성화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는 구조적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성과 집계 신뢰 어려워
이처럼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축제 성과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통계는 사실상 부재하다. 지자체들은 경찰 추산, 통신사(SK·KT) 기지국 접속자 수, 카드사(신한·BC카드) 결제 내역, 네비게이션 앱(T맵) 검색량 등을 활용해 방문객 수를 추산해 왔다. 그러나 이들 지표는 본질적으로 추정치에 불과해 중복 집계 가능성이 크고, 실제 체류 시간이나 지역 소비와의 연관성도 떨어진다.
광주 충장축제처럼 도심 전역에서 열리며 출입구가 수십 개에 달하는 축제는 계측 자체가 불가능하다. 함평 나비축제, 곡성 장미축제처럼 입장권을 발권하고, 출입 통제가 가능한 일부 유료 축제만이 정확에 가까운 집계가 가능하다.
결국 지자체들이 집계한 방문객 수는 절대적인 수치가 아닌 ‘추정치’에 불과해 이를 과거 축제나 유사 행사와 비교해 분석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방문객 수를 활용한 지역 경제 기여 산출 역시 체계적으로 집계되지 않아 실질적 성과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현재 집계 방식은 홍보용 자료로는 의미가 있으나 정책적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 생활인구 산정, 단기 성과 몰두 우려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말 보통교부세 산정 기준에 ‘생활인구’ 지표를 반영하면서, 지자체의 축제 운영 방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생활인구는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아닌 실제 특정 지역에 일정 기간 체류한 인구를 뜻한다. 제도의 도입 취지는 인구 감소 지역의 재정 여건을 보완하고, 유동인구를 고려해 지원을 합리화하겠다는 것이지만, 현장에서는 부작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지자체들이 장기 체류형 관광객 유치나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본래 목표보다 단기 생활인구 수치 제고 자체에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단기간 대규모 인파를 불러모을 수 있는 축제는 생활인구 지표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수단이 되지만, 정작 체류일수 확대나 지역 상권 파급 효과와는 직접적 연관이 약하다. 이 때문에 교부세 확보를 위한 ‘반짝 인구 동원’에 행정력이 집중되고, 결과적으로 소모성 축제의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왜곡이 장기적으로 지역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임석 전 강진관광재단 대표는 "생활인구 반영 이후 지자체들이 단기 성과 경쟁에 매몰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정작 지역 상권이나 관광산업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 일회성 행사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 객관적 지표·체류 기반 마련돼야
축제가 단순한 인구 몰이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임석 전 강진관광재단대표는 "축제 방문객 수와 경제적 파급효과를 연결하는 방식은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며 "축제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객단가, 체류일수, 재방문율 등 질적 지표를 집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처럼 ‘몇 명이 왔다’는 숫자 홍보에 치중하면 성과 부풀리기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축제를 통해 지역 농산물 판매, 지역업체 매출 증대 같은 실질적 지표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축제를 계기로 관광객들이 장기 체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안태기 광주대학교 호텔관광경영학부 교수는 "숙박시설 확충, 교통 접근성 개선, 로컬 관광 코스 개발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방문객들은 하루 머물다 떠나는 ‘스쳐가는 인파’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축제 운영 방식의 개선책으로 지역 상품권 지급 방안이 제시된다. 안 교수는 "현금을 경품이나 지원금으로 쓰는 대신 지역화폐를 발급해 관람객이 반드시 지역 내 상권에서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활용하면, 축제 예산이 프랜차이즈나 외부 업체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소상공인에게 직접 환류 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순 ‘고인돌 가을꽃축제’는 올해 처음 입장료(1인 5천원)를 받은 뒤, 화순사랑상품권으로 전액 환급하는 유료화 모델을 도입했다. 상품권은 축제장뿐만 아니라 화순군 전역에서 사용 가능해, 지역 경제에 직접 연결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강진군은 ‘강진 반값여행 시즌2’를 통해 관광객의 여행 경비 50%를 모바일 지역화폐(강진사랑상품권) 형태로 환급해준다. 개인은 최대 10만 원, 2인 이상 팀은 최대 20만 원까지 환급이 가능해, 외지인의 지역 소비를 유도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
다만 유료화가 관람객 감소로 이어질 수 있고, 상품권 사용처 제한이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이서영 기자 dec@namdo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