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문승수, 정남균, 1926년 광주 첫 비밀결사 성진회 창립,
김향남, 1929년 독서회중앙부 재정위원으로 활동,
이기홍 광주고보 비밀독서회원, 1930년 백지동맹 주역,
정석규, 김홍남, 황상남, 박노기 광주학생독립운동 시위 주동,
박노호 서울 보성고, 유치오 광주농업학교, 이명지 광주여고보 시위 주도,
장석천. 2차 광주학생독립운동 시위 기획 및 전국 확산 앞장,
오문현, 황동윤 30년대 최대 농민운동 전남운동협의회 조직.

이들은 모두 남쪽 섬 전남 완도출신들이다. 완도에서 내노라 하는 부잣집 아들에 수재로 장래가 촉망받던 엘리트였다. 1935년 당시 중등학교 (지금의 고교) 취학률은 0.09%였다. 인구 1만 명 당 겨우 9명이 중등학교에 진학했다.

임경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광주, 전남, 제주를 합해 고등 보통학교는 광주고보 한곳 뿐이었으며, 중등 취학률이 매우 낮기에 학생들의 사회적 영향력과 지식인적 의무감도 컸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고보나 농업학교, 사범학교를 졸업하면 총독부 산하 공무원이 되거나 교사가 될 수 있는 편한 길을 거부했다.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목도하고, 안락한 꽃길을 버리고, 가시 험난한 독립운동가의 길을 선택했다.

#고금초교 출신들 주역 성장

왼도 출신의 혁혁한 독립운동가 중에서 유독 완도군 고금면 고금 공립보통학교(현 고금초교) 출신들이 눈에 띈다. 1911년 개교한 고금초교는 올해 105회 졸업생을 배출한 완도지역 전통의 초등학교다. 졸업생수만 1만1천662명에 달한다. 1932년 12회로 졸업한 생존 동문들은 당시 학생 수가 5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는 인근 분교까지 통폐합해 운영, 재학생이 99명이다.

이 학교는 완도의 여타 학교들이 그렇지만 특히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을 계승하고 있다. 고금도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던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유해가 통제영에 가매장됐던 곳이다.

봄, 가을이면 고금 초등학생들은 고금면민들이 자발적 성금으로 세운 충무공 사당 충무사에 참배하곤 했다. 이런 정신적 맥락에 따라 호남에서 처음으로 1975년 8월 초등학교 교정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건립됐다. 전국적으로도 가장 이른 시기로 보인다.

이순신의 항일 얼을 이어받은 고금 및 고금초교 출신은 장석천, 이기홍 (8회), 정남균, 박노호, 박노기 등이다. 장석천의 경우 완도 신지면 출신이지만, 그곳에 공립보통학교가 없어 어린 시절 고금도로 유학 온 듯 싶다. 장석천은 고금도 처녀와 결혼했다. 성진회 창설멤버인 정남균 도 약산 출신이지만, 고금보통학교를 졸업했다.
 

#항일 전선의 뛰어난 투사들

1926년 11월, 6·10만세 운동이 사그러든 뒤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학생 비밀결사 조직에 총력을 기울였다. 식민지 항일 운동의 인적자원과 해방 후 미래 조국 건설의 동량을 확보한다는 전략이었다. 그해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농업학교 학생 16명이 광주지역 첫 비밀결사 학생조직을 건설했다. 바로 성진회였다.

성진회 멤버들은 광주고보, 농업학교, 광주사범 등 광주지역 중등학교 독서회를 실질 지도했고, 독서회 통합 지도기관인 1929년 독서회중앙부를 창설했다. 앞서 1928년 광주고보 대맹휴(이경채 사건)때에는 학생투쟁본부를 꾸려 5개월여에 걸친 투쟁을 견인했다.

창설 멤버로 광주농업학교 문승수(군외)와 정남균(약산)이 참여했다. 이기홍 선생은 회고록에 "성진회 광주농업학교 대표는 문승수였다"고 증언했다. (‘내가 사랑한 민족 나를 외면한 나라’회고록 참조)

성진회는 4~5개월 여만에 위장 해산했다.

성진회 멤버들은 물밑으로 각급학교 비밀 독서회를 조직했다. 광주고보 2학년 독서회가 꾸려지자 이기홍(고금), 김홍남(청산), 정석규(소안·이상 광주고보)가 참여했다. 2학년 독서회 멤버는 모두 9명이었는데, 이중 완도출신 유학생이 3명이나 됐다.

이들은 모두 1929년 11월12일 광주학생독립운동 2차 시위의 현장 책임자로 나섰다. 전남공립사범학교에서는 황상남,박노기(고금)가 비밀 독서회에 가입했다. 각 학교 마다 독서회가 조직되자, 이를 통일적으로 지도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1929년 6월 광주고보 졸업생 장재성 주도로 ‘독서회 중앙부’가 조직됐고, 광주고보 김향남(청산)이 재정위원으로 활약했다.

운명의 1929년 11월3일과 12일, 광주학생 독립 시위가 벌어지면서 완도출신 유학생들은 그해 대부분 퇴학, 구속을 당한다. 광주고보 출신으로는 ▲김향남 퇴학 징역 1년 ▲김홍남 퇴학 징역 2년6월 ▲이기홍 퇴학(1930년 3월 2학년 백지시험 동맹 주모자) ▲정석규 퇴학 징역 2년6월 ▲황남옥 퇴학 등이다.
 

#완도 유학생 그룹의 맏형 장석천

장석천은 1903년 완도 신지도에서 태어났다. 완도 고금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18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중앙고보 시절, 일본인 체육교사가 한인 학생들을 이유없이 괴롭히자 그를 응징했다. 중앙에서 퇴학 직전에 다행히 보성고보로 전학을 갔다. 고보 졸업후 조선에는 대학이 없어 전문학교인 수원고등농림학교에 들어갔다.

1925년 11월 조선학생회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에 선정됐고, 이어 1926년 6월 동맹휴학을 전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는 농림학교를 그만두고, 일본에 건너가 동경상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불과 4개월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이 아닌 광주로 돌아왔다.

광주청년회에 가입, 본격적인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학생 비밀결사인 성진회를 지도하면서 청년단체와 학생 비밀조직의 연결망을 구축했다.

1929년에는 전남청년연맹 위원장으로 장재성과 함께 독서회중앙부를 조직, 지도하고, 11월 3일 학생들의 우발적 다툼과 시위를 조직적인 거리 시위로 전환시켰다.

그는 11월12일 2차 시위를 기획, 실행하면서 청년동맹과 신간회 라인을 통해 광주시위의 전국적 확산을 추진했다. 마침내 12월5일 경성제2고보를 시작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학생독립 만세 시위가 터졌다.

그는 이 시위로 인해 1930년 2월 치안유지법으로 기소, 이듬해 12월13일 출옥했다. 그는 항일 투쟁을 중단하지 않았다. 학생청년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전환했다. 1932년 10월 종로경찰에 체포,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일제 경찰은 그를 모질고 악독하게 고문했다. 서대문 형무소를 거쳐 1933년 대전형무소로 이감됐다. 고문 후유증이 극심했다. 형무소측은 만성위장 병명으로 보석 출감시켰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광주 누문동 집으로 돌아왔지만 병환이 나아지지 않았다. 1935년 10월 18일, 완도 항일 유학생들의 별, 그는 끝내 순국했다.

#완도 유학생그룹의 특징

1920~30년대 완도 유학생들의 항일 학생독립운동은 몇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광주 4개 중등학교에 고루 편재돼 있다. 광주고보를 비롯, 농업학교, 전남사범학교, 광주여고보까지 전 학교에서 독서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둘째, 완도 유학생들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모태인 성진회, 각 학교 항일 세포조직인 독서회, 이어 이들 독서회의 지도기관인 독서회중앙부까지 비밀결사 조직의 핵심조직원이었다. 문승수, 정남균, 김향남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셋째, 광주 학생 비밀결사 지도체인 사회단체의 중심에 완도 신지 출신에 고금초교 졸업생인 장석천이 포진하고, 장석천을 매개로 성진회-독서회-독서회 중앙부가 연결됐다. 이들은 다시 광주고보 독서회를 지도하는데, 2학년 비밀 독서회의 중심축은 이기홍 등 완도출신 3인방이었다.

1926년 성진회에서 1929년 독서회 중앙부, 11월 1·2차 시위와 1930년 광주고보 백지동맹까지 완도 라인이 존재했다.

넷째, 학생독립운동 활동 후 퇴학과 구속, 징역에도 불구하고, 출소하자 마자 학생운동에서 농민운동으로 전선을 확장했다. 문승수, 이기홍, 황동윤 등이 참여한 1933년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이 대표적이다.

푸른 남쪽 바다에 외롭게 뜬 섬 완도. 일제하 꽃길을 버리고 가시덤불, 태풍 휘몰아치는 독립운동의 대양으로 묵묵히 떠난 완도 유학생들.

그들은 만신창이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 변절과 전향의 시대에도, 오직 조국 독립에 헌신했으니….  경외를 담아 큰절 올린다. 호남제일번, 고향 선배님들에게-.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

위치 : 전남 완도군 고금면 고금남로4(고금항일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