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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고령자의 일자리는 공공재 형광석 교수 고령사회에서 고령자는 소득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현행처럼 민간부문에서 조기퇴직이 일반화되고 공공부문이나 대규모사업장에서 정년퇴직제가 존속된다면, 수명에 비해 너무 일찍 일자리를 떠나게 된다. 보통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직업생활과정에서 많은 것을 저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정년퇴직이 아닌 조기퇴직을 하는 경우에는 아직은 연금수급자가 되지 못한다. 일정한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연령이 60세를 넘어야 연금수급자가 될 수 있다. 최근에 나온 일부 정당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소득대체율을 현행 60%에서 2008년에는 50%로 낮추고, 장기적으로 40%로 낮추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소득대체율은 생애 평균소득에 대한 연금수령액의 비율이다. 즉 연금에 가입한 기간 중 평균 소득에 비해 나중에 연금을 얼마나 받는지를 나타낸 비율이다. 예를 들어 소득대체율이 50%라면 나중에 받는 연금액이 연금 가입기간 평균 소득의 절반 정도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행 보험료율을 장기적으로는 12~13%까지 올릴 계획이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에 있어 보험료율은 높아지지만 국민연금을 받게 될 때에는 연금 가입기간 중 평균소득의 40% 정도를 받게 된 다는 점이다. 초저출산·고령 사회에서는 일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는 조만간 줄어들게 된다. 미래의 세대와 부담을 나눈다는 점에서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소득대체율을 낮추게 되면 연금으로 생활하는 동안에 소득안정을 기하기는 어렵다.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연금생활자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소득의 일부를 노동소득으로 보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려면 고령자들에게 일자리가 제공되어야 한다. 청년층의 일자리 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고령자의 일자리는 더욱 부족한 실정이다. 한편 고령자도 고학력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기왕의 고령자 일자리는 단순한 직무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고령자의 고용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아직 미미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시장의 실패이다. 즉 민간부문에서,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고령자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고 공급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고령자의 일자리에 대한 시장의 실패는 고령자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풀어서 말하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고령자의 일자리는 정부가 만들어서 공급해야 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공공재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소비할 때의 비경합성이다. 공공재의 하나인 광주천변 산책길을 어떤 사람이 이용한다 해서 다른 사람이 산책할 기회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산책길 이용을 둘러싸고 상호 경쟁할 필요가 없다. 둘째, 소비할 때의 배제불가능성이다. 대가(代價)를 치르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소비에서 배제할 수 없다. 광주천변 산책길을 내가 이용할 때 다른 사람이 산책하지 못하도록 할 수 없다. 이러한 논리를 고령자의 일자리에 적용해보자. 일반적으로 일자리는 종사하는 사람이 독점하고 있다. 일자리 독점은 타인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공공재 성격을 갖는 고령자의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 일자리를 독점해서는 안 된다. 타인도 그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고령자가 일자리를 독점하겠다고 다른 고령자와 경쟁하는 상황은 배제되어야 한다. 가령 공공부문 고령자 우선고용직종의 하나인 주차장관리인 일자리를 어느 한 고령자가 독점해서는 안 된다. 1일 주차장 관리 업무가 12시간이라면, 한 고령자가 4시간씩 일한다면 세 명의 고령자가 주차장관리인 일을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있는 일자리를 세 사람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고령자의 일자리가 공공재 성격을 강화하지 못하여 고령자들이 일자리를 놓고 상호 경쟁하고 타인을 배제한다면, 즉 고령자의 일자리가 상호 공유되지 못한다면, 고령실업자가 양산되어 사회적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될 것이다. 초저출산·고령사회에서 고령자의 일자리는 공공재로서 공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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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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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금 빛 용이 된 미끄러운 뱀장어 지난 일요일 (15일) 새벽 까닭도 없이 잠이 안와 텔레비전을 켰더니 행운하게도 CNN 이 UN 안정 보장 이상회의 북한 재제 결의안에 대한 토론을 생 중개하고 있었다. 큰 원형을 이룬 회의석에 동등하고 평범한 청색 의자가 인상적이었다. 좌석에는 각각 출신 국가 표말이 있고 의장인 일본 대사가 알아듣기 쉬운 일본식 영어로 개회를 알리고 회의 목적과 결의안 내용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각국 대표의 발언을 청하였다. 회의 분위기는 지극히 평상적인 것이었고 겉으로는 그 회의가 한반도의 운명이 걸린 결의안 채택의 긴장된 자리같이 않았다. 먼저 프랑스 대표가 연설하였다. 그는 남달리 주황색의 세련된 웃옷을 입고 있었는데 연설은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낭송하는 형식이었다. 다소 긴장한 듯한 그의 연설은 직석에서 영어로 통역되고 있었는데 통역된 영어 중간 중간에 그의 프랑스어가 그의 긴장된 표정하고는 조금은 다른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의 연설내용은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 진 대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우려와 경고가 단긴 것으로 안정보장 이사외의 결의안의 중요성을 북한이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다음 중국 대표의 연설도 중국어로 된 원고를 낭송하는 형식이었지만은 그러나 회의장의 긴장은 알게 더 고조된 듯 보였다. 다음은 아르젠틴 대표가 스페인어로 러시아 대표가 러시아어로 그리고 영국대표를 이어 콧수염이 낯익은 미국대표 발튼이 연설하였는데 그는 연설하는 동안 힐긋힐긋 북한 대표를 쳐다보면서 의기양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의장을 겸한 일본 대표의 강경한 발언이 있었고 뒤이어 당사국인 북한 대표가 영어로 연설하였고 여차로 초청된 듯한 지극히 짧고 의례적인 한국 대표의 연설도 영어였다. 국제회의의 공용어 문제를 나는 새삼스럽게 인식한 계기가 되었다. 각국 대표가 연설하는 동안에 CNN는 간간히 북한 박길언 대표의 표정을 보여주었다. 어쩐지 자꾸 눈이 간 그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기억에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조각된 분노할까 훈련된 분노의 표정이랄까 각국 대표가 연설한 근 한 시간 동안 미동도 하지 않은 그의 동작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극적 정중동(靜中動)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연설도 준비된 영어로 된 내용을 읽는 형식이었지만은 그의 분노는 그의 발성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그의 연설은 첫 마디부터 결의안을 거부한다는 내용이었고 미국에 대한 비난이었고 북한에 대한 재제는 선전포고라고 주장하였다. 결연한 것이 심상치 않다. 마지막으로 한국대표가 연설하는 동안 CNN는 빈자리를 비쳤다. 퇴장한 북한 대표의 자리였다. 한국대표가 연설한 뒤 미국 대표가 추가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연전 후로시조프가 UN 총회에서 연설하면서 신발을 벗어 연단을 내려 친 이야기기를 비유하면서 북한 대표의 무례를 비난하였다. 그리고 의장은 휴회를 알리고 회의는 휴식으로 들어갔다.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잠을 청하였지만은 잠이 아침까지 오지 않았다. 한반도가 무엇을 어떻게 잘 못해 저지경이 되어버렸는가. 반기문 차기 UN총회 사무국장이 미국 ABC ‘굿모닝 아메리카’와의 인터뷰 내용이 국내에 보도되면서 화제다. 그의 말이 어찌나 반들반들 미끄럽든지 대담한 사회자가 ‘한국에서 언론이 당신을 미끄러운 뱀장어라고 말한 것을 정확히 알겠다’라고 비꼰 모양이다.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이 미국의 이라크침공을 불법이라고 표현했던 것과는 달리 반기문은 그 대담에서 적당히 미국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유일하게 언론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타고난 뱀장어인 것이다. 그 뱅장어가 UN 사무총장이라는 금 빛 용이 되었다. 그 용의 금빛으로 그가 재임한 동안 UN에서 북한 대표도 같이 웃는 날이 있기를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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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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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파일]단체장이여 ‘집무실을 떠나라’ 오치남/사회부장 ocn@ 민선 1·2기 전남 진도군정을 이끈 박승만 전 군수는 군수시절 ‘깜짝 일화’를 남겼다. 국비 확보를 위해 중앙 부처를 방문, 이벤트를 펼쳤다. ‘고희(古稀)’에도 남도가락을 멋지게 선사했다. 깡마른 체구에서 뿜어내는 구성진 남도소리에 중앙부처 직원들이 우렁한 박수로 답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깜짝 공연’이 전적으로 작용하진 않았겠지만 국비를 따오는데 성공했다. 박 전 군수의 다소 ‘기인적인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거나 군민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누구에게나 무릎을 꿇고 술을 권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술을 따르면서 상대방을 항상 ‘대감(大監)’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리고 ‘무조건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당신이 비굴하거나 못나서가 결코 아니다. 민선 출범이후 전남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가운데 한 곳인 진도 발전을 위한 ‘충심(忠心)’에서 였다. 이제 세월이 흘러 민선 4기 출범도 100일을 넘어섰다. 대다수 광주·전남 지자체들이 ‘백일잔치’란 명목의 기자회견을 통해 향후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단체장 치적 홍보나 틀에 박힌 비전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은 거의 없어 실망감마저 안겨줬다. 그러나 이제 민선 4기는 출발선을 겨우 지났다. 앞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려면 3년9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다. 이 시점에서 광주·전남 단체장들은 ‘집무실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시정(市政)과 군정(郡政) 등 ‘내치(內治)’는 부단체장에 맡기고 중앙부처로, 세계로 나가라는 것이다. 자기 지역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중앙부처가 알아서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와 투자할 국·내외 기업이나 투자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단체장의 대변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 ‘논두렁 밭두렁을 찾아다니는’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 각종 축제나 행사장에 얼굴을 내미는 행태도 줄지 않으면 지역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공직자들도 자기 실·과 행사장에 단체장을 모셔야 ‘실세’란 의식을 버려야 한다. 시민사회단체나 각종 이해단체도 단체장을 뽑아준 큰 뜻이 어디에 있는지 되새기면서 단체장의 발목을 붙잡아서는 안된다. 고유권한인 인사권까지도 부단체장에 넘기면서 ‘외치(外治)’에만 전념하는 단체장이 하루빨리 탄생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전남도가 내놓은 ‘도내 전 공직자 투자유치 요원화’는 척박한 지역 발전에 절실한 마지막 카드로 보여진다. 도는 2만여 도 산하 모든 공무원을 ‘투자유치 요원화’해 국내·외 기업 및 자본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이를 위해 ‘국내·외 기업 및 자본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한 투자유치 유공공무원 포상 강화 계획’을 수립, 도와 모든 시·군에 통보했다. 투자유치를 성사시킨 공무원에 대해서는 성과급·인사우대·표창·해외연수 등 실적에 상응하는 포상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다. 투자유치 기여도에 따라 투자유치금액의 0.04∼0.1% 해당하는 금액을 최고 2억원까지 성과급으로 지급키로 했다. 민간인 등 신분이나 거주지역에 관계없이 도내에 기업 및 자본 유치에 기여할 경우 도 산하 공무원과 동일하게 2억원까지의 성과급이 주어진다. 이 같은 도의 방침이 발표된지 1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투자유치에 대한 동참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하지만 ‘집안살림’은 전적으로 부단체장에게 맡기고 투자유치나 국고 확보 등 ‘집밖살림’에만 매달리겠다는 단체장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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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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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우리 민족의 홍익철학을 살리자 함수남 회장 컴퓨터는 모든 지식의 저장창고이다. 모르는 영어 단어나 한자도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가며 사전이나 옥편을 들추지 않더라도 컴퓨터의 키만 누르면 나타나고, 내가 얻고자 하는 모든 지식을 키 하나로 다 찾을 수도 얻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멀리 외국에 있는 사람과 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고, 물건을 사고팔 수도 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도시나 농촌을 불문하고 전기만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든 컴퓨터가 다 있다. 컴퓨터야말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중의 하나다. 헌데 이 놀라운 성능을 가진 컴퓨터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있으니 바로 우리의 뇌이다. 우리가 일상의 삶인 먹고 자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과 느끼고 기억하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을 뇌가 하고 있으니 뇌가 하는 일에 놀랄 따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뇌를 잊고 살 때가 참 많다. 인간의 뇌는 뇌간, 구피질, 신피질, 이렇게 3층 구조로 되어있다고 한다. 뇌의 세 층 가운데 가장 안쪽에 있는 뇌간은 호흡과 순환, 소화, 생식 등 생명의 기본적인 기능을 관장하고, 뇌간의 윗부분을 감싸고 있는 구피질은 다양한 감정반응과 운동신경을 관장한다. 대뇌 바깥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신피질은 언어활동을 토대로 기억, 분석, 종합, 판단, 창조 등 인간 고유의 두뇌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우리가 흔히 계산능력이 뛰어나고 언어나 논리력, 분석력이 뛰어난 이성적인 사람을 좌뇌형 인간, 직관력과 예술 감각이 뛰어나고 감정적인 사람을 우뇌형 인간이라 한다. 바꿔 말하면 좌뇌형 인간은 신피질이 발달한 사람, 우뇌형은 구피질이 발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민족은 단연 좌뇌형 보다는 우뇌형이 우세했던 민족이었음이 분명하다. 예로부터 풍류와 가무를 즐기고 품앗이를 하며 서로 나누고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런 어울림의 문화가 발달한 사회에선 상대의 실수나 잘못을 따지거나 제대로 가리기 보다는 너그럽게 이해되고 용서되는 가운데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기를 바랐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며 산 민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진정한 어울림의 문화를 제대로 지켜오지 못했다. 수많은 세월 동안 외세에 억눌려 지내다보니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기보다는 변명하고 숨기고 남을 탓하는 일이 쌓이고 쌓여 어언간 우리 민족의 잘못된 근성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잘못된 근성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동안 어떤 잘못도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채 어물쩍 넘어가고 은근슬쩍 지나쳐 온 것이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불신의 사회가 되고, 민족의 정체성마저 뿌리째 뽑혀져버린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우리가 시시비비를 잘 가려야 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의 기틀이 되기 때문이다.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기준이 확실하게 서 있고, 또 잘 지켜지는 사회는 상호간에 믿음이 생기고 신뢰가 쌓여 건전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은 다방면에서 인정받고 있다. OECD에서 세계 41개국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를 조사했는데 문제 해결능력에서 한국 학생들이 단연 1등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지능연구 전문가인 영국 얼스터 대학의 리처드 린 교수팀의 세계 185개국 국민들의 평균 IQ 조사에서도 107을 얻은 홍콩에 이어 106으로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1점 차이로 2위를 했지만 그 나라 국민의 평균치이니만큼 인구수로 따진다면 단연 우리 민족의 IQ가 제일 높다. 세계적인 것이 어찌 IQ뿐이겠는가? 우리는 홍익인간이라는 위대한 철학을 기본으로 하는 민족이다. 우리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개인의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홍익이라는 큰 철학을 무시하고 살아왔다.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갖고 있는 우리 민족이 가슴에 홍익이라는 큰 철학을 품고 그걸 현실화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면, 좌뇌의 종합, 분석, 사고, 판단, 지각적인 능력과 우뇌의 예술 감각을 잘 살려 우리 사회의 기틀을 새롭게 다져 나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밝고 힘찰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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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선진한국을 위한 전략적 선택, 한미 FTA 고광섭 청장 우리네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특히 새롭고 중요한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는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선택을 하기 위한 걱정과 불안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선택은 신중해야 하며 선택한 경우에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중요한 선택을 위한 찬반 논쟁이 뜨겁다.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바로 그것이다. 한·미 FTA가 한·칠레 FTA와는 달리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이다 보니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협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특히,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미쳐 그 파급효과가 크리라고 예상되고 있어 협상 타결 이후의 영향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 모두가 우리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 세계는 개방과 자유무역을 향한 국가간에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하면서 국가간 무역장벽은 낮아지고 있지만 국가별 이념과 문화의 차이, 각 국의 빈부 격차 등으로 전 세계 국가간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간의 무역장벽을 보다 효율적으로 완화·철폐해 무역자유화를 실현하기 위한 지역간 특혜 무역협정인 FTA가 등장했고 우리나라도 이미 칠레와 FTA를 체결한 바 있으며 현재는 미국과 3차 협상을 마치고 4차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세계는 FTA라는 국가간 전략적 제휴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온갖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소극적으로만 대응한다면 우리는 냉혹한 국제경제 시장에서 점점 뒤처질 수 밖에 없게 된다. 미국은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할 거대한 산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미국의 수입시장은 2005년 기준으로 1조 7천억 달러로 중국, 일본, 아세안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그리고 세계 수입 시장의 점유율(2004년 기준) 또한 미국이 21.8%로 선두를 지키고 있고 중국(8.0%), 일본(6.5%), 캐나다(4.0%)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미국과 교류하지 않고는 국제경쟁체제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제품의 미국 시장에서의 판매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1995년 3.3%에 달하던 우리 제품의 미국 시장점유율은 2005년 2.6%로 떨어졌다. 2005년 한 해만 놓고 볼 때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5.2% 줄어든 반면 중국은 23.8%, 인도는 20.9%, 일본은 6.6% 늘었다. 이같은 실적 악화는 우리 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미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다른 나라와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 FTA는 세계 최고 시장과 당당하게 겨뤄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기회이며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시도다. 이제 우리는 한미 FTA라는 대양(大洋)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으며, 그곳에는 거친 풍랑과 변화무쌍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거친 풍랑과 위험 때문에 한미 FTA를 미루거나 포기한다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게 될 수도 있다. 한미 FTA가 부작용이 없다거나 전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협상에는 반드시 득실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과의 FTA가 타결되면 세계 최대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고 우리 경제와 사회 시스템 전반을 선진화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 수 있는 한미 FTA. 치밀한 전략으로 제대로 협상하고 부족한 부분은 열린 자세로 보완하면서 협상 과정에서도 전 국민과 함께 지혜를 모아 넓은 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 21세기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희망찬 걸음을 내딛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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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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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골프 ‘하십니까’, 골프 ‘치십니까’ 한강희 교수 적어도 2006년 10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골프 하십니까’와 ‘골프 치십니까’의 어감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물론 어법으로는 ‘골프 치다’가 맞다). 오늘 우리의 ‘골프 사회학’을 거론한다면, 전자인 ‘골프 하다’는 비즈니스적 성격을, 후자인 ‘골프 치다’는 스포츠로서의 입장을 내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비즈니스적 입장에서는 정보 교환과 사교 공간의 장이라 치부하지만, 서민적 입장에서 골프는 아직 대중 스포츠와는 동떨어진 호사취미로 간주되고 있다. 사실 시간적·경제적 손실을 배제한다면 골프는 최상의 웰빙 스포츠임에 틀림없다. 탁 트인 녹원의 페어웨이(Fairway)에 놓인 잔디를 밟다보면 유산소 운동 효과가 배가돼 심폐 기능이 강화되고 체지방이 감소하는 등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보내기에 제격이다. 게다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정년퇴직 한 70대 지인은 1주일에 서너 차례 파릇한 잔디를 밟고 다니는 동안 지긋지긋한 관절염이 말끔히 치유됐으며 2년 경력에 ‘핸디(handy) 90’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골프 관련 각종 국내 지표를 살펴보면 연인원 2천만 명 이용객, 250만 명의 골프 인구, 230여개(세계 18위)의 골프장, 연 50만 명의 해외 유출(전체 여행객의 5.7%로 매년 60%씩 증가 추세이며, 1조원 규모)등으로 집약된다. 며칠 전 한 홈쇼핑에서는 미국 프로 골퍼 잭 니클라우스가 감수한 60만원 대 골프 클럽이 개시 10분 만에 동이 났다고 한다. 이러한 열기에 접하면 한국의 낭자군(娘子軍)이 내로라 하는 세계 대회를 석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최근 많은 대학에서도 골프 관련 특강이 인기를 얻는 등, 골프 대중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특히 전남-광주는 날씨가 따뜻해 사시사철 휴장 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향후 국책 사업이자 도정 현안인 J-프로젝트가 가시화하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이 시점에서 스포츠라기보다는 비즈니스에 경사돼 종주국의 에티켓과 매너를 수입하면서도, 왜곡된 관행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자기와의 싸움, 즉 고도의 마인드 컨트롤을 생명력으로 하는 신사-숙녀 스포츠로서 골프의 본질이 회복하자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내기성 게임’이 아니면 필드 스트로크(stroke)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물론, 흥미를 잃을 정도로 스포츠로서의 면역력이 저하돼 있다. ‘내기‘를 하는 경우엔 화려하고 멋진 정장, 최상의 클럽(Club-brand)이 무색할 정도로 신경전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포츠의 본질인 ’선의의 경쟁‘을 외면하고 사업 목적상 일부러 져주는 해프닝도 빈발하고 잇는 형편이다. 반바지 차림의 골퍼 입장을 엄격히 불허하는 컨트리클럽이 있지만, 우리네 주말 골퍼(Weekend‘s golfer)들은 캐디의 도움이 없으면 거리·지형·지물 인지는 물론, 규칙 파악도, 스코어 카드도 제대로 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자신이 아닌 캐디(Caddie)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운동이 ‘생활의 일부’를 넘어설 정도로 골프에 올인(All-in)하는 경향도 우리 골퍼들의 한 특징이다. 오죽하면 ’핸디 100대는 골퍼가 아니요, 90대는 가정을, 80대는 직장을, 70대는 밥 먹고 골프만 치는 것‘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생활을 넘어선 운동은 사치‘라는 말을 유념할 대목이다. 이 모두 자유로운 복장으로 자기 클럽을 손수 이끌며 스포츠로서 골프를 즐기는 선진국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머지않아 남도 전역이 골프레저 위락특구로 부상할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진정으로 골프레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에 가까운 ‘골프 하십니까’가 아닌, 대중적 스포츠에 초점을 맞춘 ‘골프 치십니까’로의 시각 조정(Mind-building)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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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 칼럼] 한글 창제에 대한 이념 논쟁 노 대통령은 9일 세종문화회관 강당에서 열린 제560돌 한글날 기념식에 참석, 세종대왕의 정치 철학을 설명하면서 “한글은 계급적 세계관을 뛰어넘어 백성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했던 민본주의적 개혁 정치의 결정판이며 자주적 실용주의와 창조정신의 백미”라고 밝혔다고 전한다. 그리고 나아가 “만약 세종대왕께서 한자만을 고집했던 지배층에 굴복했다면 한글은 결코 만들어 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축사에 대하여 한 보수신문이 시비를 걸고 나섰다. 한글 창제의 밑바탕에 세종의 애민 정신이 깔린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지배 피지배 같은 계급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문의 입장을 두둔하기 위하여 몇 사람의 관계 학자를 동원하였다. 동원된 학자 가운데 한성대 한국어문학부 고창수 교수가 있고 서울대 사회학과 정상인 교수 그리고 서강대 정치학과 박호성 교수가 있다. 고창수 교수는 “세종이 상층부의 정보를 아래로 확산시켜 유교적 통치 이념을 보다 굳건히 하려는 뜻에서 한글을 창제했다”며 “오늘 날과 같은 계급 개념으로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건 곤란하다”는 견해를 밝혔고 또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청산하는 뜻에서 한글을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하고, 정상인 교수는 “세종이 지배계급을 견제하기 위하여 한글을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세종의 가장 큰 목적은 일반 백성에게도 왕의 뜻을 침투시켜 왕권을 강화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오늘날 필요에 따라 과거를 자의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박호성 교수는 자주적 실용주의를 따지고 들면서 “자주적 실용주의는 결과론적 이야기다. 세종 당대는 자주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한글은 기본적으로 중앙 지배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화운동이었다”고 주장하면서 “한글은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까지 효율적으로 통치한 통로역할을 했으며 현대적 의미의 민본주의와 거리가 있다고 말하였다”고 전한다. 중국과 한문지배하의 사대주의적 당대를 읽는 그들의 시각이 합리적인 것으로 일단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주장에서 최만리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학문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의 주장은 나무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입장은 세종 당대의 최만리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최만리 또한 당대 지배이념의 입장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날 기념식이 학문적 토론의 장소가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듯하다. 문제는 보수신문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시비를 거는 한 목적에 학자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방법론이 반드시 그 당대의 시간과 공간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낡은 역사관이다. 역사 또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어야 하고 살아 움직이지 않은 역사는 과거일 뿐 현실과 미래로 연결되지 않는다. 역사가 과거일 뿐 현실과 미래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역사는 죽은 역사다. 사실상 오늘 역사를 보는 새로운 방법론인 신역사주의의 입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 역사주의는 미국학문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오늘의 시각에서 유럽의 역사를 재해석하고 하는 방법론인 것이다. 세종이 위대한 왕이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의 위대성을 말하는 으뜸에 그의 한글 창제가 있고 그 한글 창제의 정신 속에 백성을 중히 여기는 사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 그것을 오늘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노대통령의 기념사를 시비하는 심층에 도사린 의도를 나는 의혹의 눈으로 본다. 사려가 깊지 않은 것이다. 학자들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론에 주목해야 한다. 더구나 한글이 아니냐.
칼럼
남도일보
2006.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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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 다시 ‘서포 김만중’을 생각한다 김선기 17세기 문장가인 서포 김만중(1637~1692)을 국문학사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국문소설의 선구자라는 점 때문이다. 그의 ‘서포만필’에 의하면 그는 송강 정철(1536~1593)이 남긴 문학작품 중에서도 ‘관동별곡’과 ‘전후사미인가(前後思美人歌)’를 ‘동방의 이소(離騷=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때 충신 굴원(屈原)이 남긴 문학작품으로 동아시아 최고의 작품으로 꼽힘)’라고 극찬하고 있다. ‘전후사미인가’란 미인을 생각하는 송강의 전작 ‘사미인곡(思美人曲)’과 그 후속작 ‘속미인곡(續美人曲)’을 합칭한 것이다. 서포는 이들 작품이 한문이 아니라 한글로 지어졌음을 극찬하면서, 그럼에도 자기말 대신 다른 나라말(한문)을 빌려 문학하는 행위를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짓”과 같다고 혹평했다. 서포의 한글사랑은 그의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서포가 이 두 소설을 한글로 쓴 데는 순전히 늙은 어머니 때문이다. 한글에 대한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을 보면, 한글은 ‘아낙네의 글’이라는 지적이 자주 눈에 띈다. 그래서 한글은 ‘천하고 속된 글’이라 해서 ‘언문(諺文)’이라 불렸다. 서포의 어머니는 사대부가였으나 여자라는 점에서 예외는 아니었을 터이다. 올해부터 한글날이 지난해 법률개정안 통과로 다시 국경일로 승격했다. ‘한글날’이 다시 국경일로 되돌아오기까지에는 많은 아픔이 있었다. 한글날 기념식을 처음 거행한 것은 1926년이다. 이 해는 1446년 한글이 반포된 지 480돌이 되는 해였다. 당시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와 잡지사 신민사(新民社)의 공동 주최로 식도원(食道園)이라는 요리집에서 경축식을 열었다. 그런데 1926년에 기념식을 거행한 날은 10월9일이 아닌 11월4일. 이 날이 음력으로 9월29일이었기 때문이다.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을 책자로 완성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근거해 9월29일을 반포일로 보고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다. 처음엔 ‘한글날’이 아니라 ‘가갸날’이었다. 이후 여러 해 동안 ‘가갸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한글’이라는 명칭이 보편화되면서 ‘가갸날’도 자연스럽게 ‘한글날’로 대체됐다. 오늘날과 같이 10월9일에 공개적으로 한글날 기념식을 열게 된 것은 1945년부터이다. 한글날이 10월9일로 된 것은 1940년 7월에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에 나오는 기록에 근거한다. 정인지가 쓴 이 책의 서문에는 9월 ‘상한(上澣)’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기록에 따라 9월 상한, 즉 상순(上旬)에 훈민정음이 반포된 것으로 보고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10일을 양력으로 다시 계산한 것이 10월9일이다. 1946년에는 한글 반포 500돌을 기념해 한글날이 공휴일로 공식 지정됐다. 이후 50년이 넘도록 10월9일은 국경일이자 법정 공휴일이었다. 그러던 것을 1990년 정부의 법정 공휴일 축소 방침에 따라 ‘한글날’을 ‘국군의 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하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때부터 ‘한글날’은 단순한 기념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후 학계와 사회 각계에서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다시 제정해 나라의 잔칫날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마침내 정부는 10월9일 한글날을 다시 국경일로 복원했다. IT강국이라는 허울에 밀려 우리글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현실에서 한글날의 국경일 지정은 매우 의미가 크다하겠다. 17세기에 살았던 서포가 그러했듯, 우리 품으로 다시 돌아온 나라말을 모두가 아끼고 가꿔 영원토록 빛낼 일이다. /kimsg@
칼럼
남도일보
2006.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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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아름다운 시민문화운동을 꿈꾸며 오행원 사장 현대 사회에서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의 영향력은 놀라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 사회의 급속한 다원화 현상과 복지국가로의 전환으로 인해 시민의 사회 참여는 크게 증진되었고 이에 따라 NGO와 같은 제3섹터 조직들이 사회복지, 환경보전, 소비자 및 특정계층에 대한 보호, 교육 등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그 역할이 매우 커지고 있다. 초기 시민단체 활동은 사회의 감시 기능을 주된 목적으로 정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견제와 제어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날로 복잡다양해지면서 뉴거버넌스라는 새로운 모델이 등장, 정부 자치단체 기업 시민단체의 전통적인 영역이 깨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즉 공익성과 공공서비스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정부, 자치단체가 시민단체와 함께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상호 보완의 체제를 구성하기도 하고 기업과도 새로운 동반자적관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자치단체는 시민단체와 함께 도심 나무심기운동, 옛 지명찾기사업 등을 추진하고 기업들은 관련시민단체와 여름환경캠프 프로그램을 운영 하는 등 시민단체를 국민 혹은 소비자로 이해하고 대변하는 대화와 문제해결의 창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추세이다.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많은 시민단체가 각기 맡은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고 일부 단체는 공공기관이나 기업과 함께 더 큰 목적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국 유일의 광주지하철 시민서포터즈 ‘메트로엔젤’이다. 메트로엔젤은 지난 4월에 출범한 신생 NGO이지만 시민들의 큰 반향을 일으켜왔다. 출범 6개월 만에 5천여명의 시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등 지하철에 대한 관심은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이는 무엇보다도 지하철 이용을 통해 대중교통을 살려보자는 취지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광주YMCA, 광주YWCA,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광주장애인총연합회 등 우리 지역 14개 시민단체와 협력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출범했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다. 메트로엔젤은 그동안 지하철과 무등산 등지에서 지하철 승객 늘리기 캠페인, 대중교통서비스 향상을 위한 정책제안 등 시민문화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특히 지난달에 전국 최초로 광주환경운동연합, 녹색교통, 푸른광주21, 자전거동호회 등과 함께 광주지하철 환승용 자전거 무료대여사업을 탄생시키는 등 우리지역 대중교통문화를 바꿔가고 있다. ‘광주지하철과 자전거의 아름다운 만남’을 주선한 한 시민단체 대표는 지하철 자전거 발대식 행사에서 “광주도시철도공사와 시민단체가 하나 되어 푸른 광주 조성을 위해 함께 첫 발을 내딛은 뜻 깊은 날”이라고 서두를 꺼낸 것을 볼 때 전국 어느 도시철도 운영기관도 갖지 못한 든든한 응원군이 있다는 것 자체가 광주 지하철 입장에서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대중교통 이용자 중심의 NGO로서 승객늘리기 운동, 편의시설 확충을 비롯한 정책방향 개선을 요구하고 제공된 서비스 등을 평가하는 감시자의 역할도 중요한 만큼 공사에서 고객의 Needs를 파악하고 이용자 중심의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하면 Win-Win의 새로운 협력모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 힘차게 출발하여 한발 한발 내딛어가는 ‘메트로엔젤??이 지금의 열정과 추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라는 에너지원이 제공되어져야 하며 그러한 결과가 머지않아 세계속의 교통문화 선진도시 광주를 이끌어 낼 것으로 기대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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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F1 코리아 그랑프리’ 꿈은 이루어진다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열광하는 마니아들의 함성, 시속 355km의 폭발적 스피드, 최첨단 기술과 글로벌 대기업들의 천문학적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비즈니스, 거기에 화려한 스타파워까지…. 한 마디로 현대인이 동경하는 꿈의 무대가 완벽한 조건들을 갖추고 등장한다. 이른바 꿈의 자동차 경주로 불리는 ‘포뮬러원 그랑프리(Formula One Grandprix, F1)’다.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제전으로 꼽히는 이 대회가 드디어 한국에서 열리게 된다. F1의 관례에 따라 개최국명을 그랑프리 앞에 붙이게 되므로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전 세계 모터 스포츠의 최고봉인 이 엄청난 행사의 유치가 이번 추석 연휴 직전에 공식 발표됐다. 전 세계 모든 F1 대회를 관장하는 FOM(Formula One Management)의 버니 애클레스톤 회장과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F1 월드 챔피언십 그랑프리’의 한국 개최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더욱이 흥분을 감추지 못할 일은 그 꿈의 무대가 이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2년후 영암군 일대 150만평 부지에 들어설 경기장에선 2010년부터 7년간 젊음과 도전, 그리고 환상의 레이스가 펼쳐지게 된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선 F1 레이스가 낯설기만 하다. 이게 왜 ‘꿈의 무대’인지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이럴 땐 드라마가 제 격이다. F1엔 꿈을 이룬 드라마가 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레이서 미하엘 슈마허의 스토리가 그것이다. F1을 잘 모르는 한국에서도 독일출신인 슈마허를 아는 사람은 꽤 있다. 그만큼 저명인사다. 3년전 세계적 축구 수퍼스타들이 자선경기를 연 적이 있었다.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루이스 피구 등 기라성같은 별들이 모였는데 여기서 가장 주목받은 선수가 슈마허였을 정도다. 그런 그도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부잣집 아이들이 버린 타이어를 주워 달고 지역 유소년 클럽대회에 출전했다. 그러나 우승은 항시 그의 차지였다. 이런 아들을 위해 부모는 생업을 포기했다. 아버지는 경기장 매니저로, 어머니는 경기장 샌드위치 가게에 취직했다. 슈마허는 부모의 헌신에 보답했다. 1991년 F1에 데뷔해 통산 90승을 올렸고 세계 챔피언에 일곱번이나 올랐다. 수입에서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일한 스포츠 스타가 됐다. 매년 약 8000만달러를 벌어들인다. 그럼에도 사생활은 깨끗하다. 아이들에겐 일주일에 단 2유로를 용돈으로 주면서도 동남아시아 쓰나미 피해엔 1000만달러를 내놓았다. 빌 게이츠가 기부한 300만달러보다 많다. 장기기증 서약서에 사인하는 그에게 많은 팬들은 존경심마저 가진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슈마허와 같은 스타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애클레스턴 회장도 앞으로 4년동안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국인 F1레이서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맞는 얘기다. 지난 월드컵에서도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 우리 민족이다.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에게만 꿈은 이뤄지는 법이다. 박지사가 F1의 꿈을 꿀 때 반신반의해하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꿈은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꿈을 지금 이 지역 사람들은 함께 꿔나가야 한다. 영암에서 머신(F1 1인승 경주용차)들이 힘차게 굉음을 울리는 그 날까지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믿고 힘을 합해야 한다. 더욱이 현재 출발점에 선 F1을 놓고 말이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라는 것이다. 또 지지부진한 특별법제정도 신경을 쓰이게 한다. 허나 연간 1조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낳는 F1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전남發 스포츠 문화충격이 쓰나미처럼 아시아를 뒤덮는 감격은 더더욱 포기할 수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한 고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칼럼
최혁
2006.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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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개편 논의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져 나오는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보면서 도가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계개편’ 하면 사람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기가 쉽다. 물론 사람을 떼어놓고 얘기하기가 어렵겠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논의는 나중 몫이고 우선은 정책을 가다듬고 준비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10년, 20년 이후의 대한민국에 대한 비전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정책을 가다듬고 준비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우선 이념과 생각이 같은 그룹끼리 하나의 그릇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정치권은 크게 3개 정도의 그릇에 담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박근혜, 이명박 등 정통보수적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을 담는 그릇이다. 이념 스펙트럼에서 보면 맨 오른쪽에 위치할 것이다. 또 하나의 그릇에는 민노당과 열린우리당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담는 그릇으로, 이념적으로는 맨 왼쪽에 위치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그릇에는 양쪽의 극단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속하게 된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걸어 온 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왜 이들이 양극단에서 벗어나 중간지대에 서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중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중간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많고 적음을 떠나 중간지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된 이유는 바로 ‘이념의 과잉’이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나는 이 그릇에서 추구해야 할 정치철학의 하나로 ‘따뜻한 생활정치’를 꺼낸 적이 있다.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이념과 정파적 논쟁을 뛰어 넘어 국민들의 삶속에 다가가는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치, 이를 ‘따뜻한 생활정치’로 정의하려고 했지만 보다 많은 토론과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개의 영역으로 그루핑(grouping)하게 되면 정체성이 보다 명확해진다. 그룹 내에서 이념과 철학으로 다투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세 개의 그릇들이 각자 가지는 정체성에 따라 정책들을 다듬고 정리하여 이것으로 경쟁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평가를 받고 선택을 받도록 합시다. 그래야 이미지 정치, 지역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구를 대권주자로 내세우며, 누구를 앞장세울 것인가는 그 다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물론 이 같은 생각에 대해 ‘이상론적이다’ ‘가능하겠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국민들의 정치의식 수준도 정치권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앞서가고 있습니다. 최근 정계개편논의는 말로는 이념, 정책중심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정권을 잡기 위한 짝짓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당파를 넘어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 함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정파를 넘어서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상황을 점검하고, 5년후 10년 후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다듬어 나간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정거장에 나와 있다. 서로가 생각하는 경유지와 목적지가 같은 지 여부를 우리는 아직 확인조차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행선지도 없는 버스에 우르르 몰려 탄 뒤 어디로 갈 것인가를 두고 버스 안에서 싸우는 어리석음을 또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경유지와 목적지가 분명한 지도를 갖고 버스에 탑승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정치가 순항하게 될 것이다. 지난 6월 민주당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토론자의 충고가 생생하다. “새 병의 낡은 포도주(Old wine in a new bottle)식의 개편을 또 하려 하는가.”
칼럼
남도일보
2006.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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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맛깔스러움에,깔끔을 더한 남도음식 박혜자 국장 가슴 졸이던 태풍도 비껴가고 가을 밀물이 어느덧 남도 들녁을 가득 차 오르고 있다. 황금들녘에 이어 붉은 단풍하며 붉은 옻나무잎들의 화려한 외출을 가득 실은 만선의 남도산야가 곧 우리들 눈앞에 펼쳐 질 테고 그 뒤를 따라 남도음식이 술 익는 냄새 마냥 우리들의 후각을 행복하게 하는 순천낙안읍성의 남도음식축제가 연 이어진다. 남도에서 태어나 남도의 이 가을을 흠뻑 흠향하는 멋스러움, 이 또한 남도인이 아니면 어둔하다 하겠으니 이곳에 사는 나름의 행복에 더함을, 모든 신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겠다. 이중 남도음식하면 이제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어 전남도에서는 이를 남도고유의 문화자원으로 하고 한편으로는 관광상품화를 위해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韓)브랜드화사업으로 육성 되도록, 그동안의 맛깔스럼에 정갈스러움을 더한 음식문화개선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간의 남도 전통밥상은 상다리가 휘도록 상판을 가득 채우고 주발에 담은 밥은 고봉 차림이 미덕이요, 후한 남도 인심으로 회자 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음식문화는 세대가 바뀌며 문화가 변하는 것처럼 자의적 변천이든 타의적 변천을 무시할 수 가 없는 추세다.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있는 밥상을 보자. 우선 배를 굶주려 보지 못한 오늘의 세대들은 먹기부터 배가 부를뿐더러 행여 저 가득 담긴 반찬들은 재탕은 아닌지, 한가운데 놓인 탕은 이사람 저사람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의식의 절차를 밟아야 할지 하면서 약간의 맛이 저감되는 느낌을 누구라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이에 전남도는 남도음식을 한(韓)브랜드화에 더불어 대대적인 식단개선사업을 펼치기로 하였다. 우선은 소형, 복합 찬기를 사용하여 대부분의 소량의 찬을 1회용으로 한정토록 음식물 유형에 따라 권장 반찬 가짓수를 준수하므로 더욱 정갈스럽게 할 계획이다. 특히 많은 관광객이 찾는 담양, 보성, 강진군 등을 남도알뜰 식단 시범 군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별도예산을 지원하기로 하고 선도적으로 이끌어 갈 표준식단 매뉴얼, 개선요령 등을 개발하여 보급할 계획이다. 우선적으로 모범음식점의 한정식 위주로 주도적으로 시행하되 1단계는 모범음식점, 친환경농산물 인증 음식점, 2단계는 인지도가 높은 음식점, 3단계는 전 업소에 확대하여 실시 할 계획이다. 물론 이러한 운동은 각 자치단체만으로는 절대로 이루어 질 수 없으므로 식품 관련단체 등 해당 음식점주들 더 나아가서는 도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하겠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는 첫째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즉 전국적으로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로 인한 경제적 가치는 연간 14조7천476억원에 이르고 전국적으로 하루에 8톤 트럭으로 1,880대분(1만5천75톤)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이중 배출되는 쓰레기는 전체의 약45%이상이 음식점등 집단급식소에서 배출되는 실정이다. 둘째는 푸짐한 상차림으로 영양보다는 반찬가짓수를 중시하는 풍토가 쉽게 개선되지 않으므로 영양의 과잉섭취로 인한 비만과 각종성인병으로 인한 활동제한은 1인당 연간 8.7일로 증가하는 추세이며 특히 중풍, 심장병 등의 순환기계질환에 의한 활동제한일이 증가하고 있는 등 국민건강문제가 심각한 실정이므로 표준화된 식단보급 등으로 국민 건강 증진에도 기여 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음식문화개선운동은 알맞게, 골고루, 깨끗하게, 건강하게 이끌어 나아 가 남도 특유의 맛깔스러움에 깔끔 미를 더한 멋진 상차림으로 세계속의 한(韓)브랜드로 나가는 데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 된다.
칼럼
남도일보
2006.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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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君子는 다투지 않는다 최근 들어 고구려 소재 대하사극이 인기다.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방영하면서 시간대만 잘 맞추면 용맹한 고구려 무장(武將)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 주엔 안시성의 영웅 양만춘 장군이 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를 당태종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왔다. 요즘 유행하는 팩션(Faction,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신조어.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같은데 어쨌든 이 최고(最古)의 한시를 다시 음미하게 됐다.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꿰뚫고 오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에 닿았도다. 전쟁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고구려를 침공해온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낸 을지문덕 장군의 이 품격있는 충고는 예나 지금이나 멋스럽기 그지없다. 이를 무시한 우중문은 대패의 망신을 당했으며 그 패전은 수나라 멸망의 원인이 됐다. 대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은 일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만족함을 알고 제 때 그만둘 수만 있으면 작게는 개인적 망신을 면할 수 있고 크게는 국가와 사회를 건사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이 지역사회를 크게 소랍스럽게 했던 박광태 시장과 열린우리당 광주출신 국회의원들간의 다툼이 꼭 그런 경우다. 박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간 법적 소송 문제가 도무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 시장을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한 광주 국회의원 7명은 여전히 소 취하에 부정적인 의견이라고 한다. 박 시장 고소건은 노벨평화상수상자 광주정상회의와 관련, 9억원의 국비지원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지역 국회의원들이 이를 반대했다고 박 시장측이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촉발됐었다. 지역 의원들이 자기 지역 예산을 깎는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기막힌 심정을 토로했던 게 빌미였다. 국회의원들은 이게 허위내용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이라며 지난 7월 박 시장을 광주지검에 고소했었다. 이제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는 검찰 조사에 달려 있다. 어찌 보면 시원스레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잘잘못을 따져야만 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하면 과연 그게 이 지역에 무슨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자고로 소송 좋아해서 잘되는 집안은 없다. 비록 당은 다르지만 광주시장이나 광주지역 국회의원들 모두가 ‘광주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지니고 한 배에 탄 사람들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서로 정치적 사활을 걸고 법적 투쟁을 벌인다면 앞으로 이들끼리의 상생과 공조란 기대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 여파는 결국 광주시와 시민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굳이 따지자면 박시장을 검찰에 고소한 것만으로도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체면을 세웠다. 만천하에 스스로 죄없음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광주시로부터 화해제스쳐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 정도 선이면 족함을 느낄 수있어야 한다. 시시비비를 가려야할 검찰 입장도 더 이상 나가면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또 기어코 어느 한편의 잘못으로 판정지으려다 보면 전선(戰線)은 끊임없이 확대될 게 분명하다. 예산국회가 진행되는데 자중지란으로 소모전을 벌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얘기다. 공자(孔子)는 시대의 교양인을 ‘군자(君子)’로 표현했다. 요즘으로 치면 ‘신사’다. 민선 단체장이나 국회의원이 군자다워야함은 물론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탈이긴 하지만 그럴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君子無所爭(군자는 다투지 않는다)’이라고 역설했다. 반드시 다퉈서 뭔가를 해결하려 든다면 소인(小人)이라는 것이다. 명절도 돌아오는데다 시간도 충분히 지났으니 못이긴체 하며 화해하는 게 군자답고 고구려 후예답다. 소송에 쏟을 정력을 사용할 곳은 지금 허다하다
칼럼
최혁
2006.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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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광주·전남 초고령사회의 활력화 전략 형광석 교수 전남의 일부 지역이 이미 초고령사회임은 널리 알고 있는 바이다. 총인구와 생산가능인구의 장래 전망은 광주·전남이 초고령사회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남은 이미 총인구의 감소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전남의 총인구는 2001년 200여만명에서 2030년 125만여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에 광주의 총인구는 2001년 약 140여만명에서 조금씩 증가하여 2020년 148만여명으로 되었다가 2030년에는 147만여명으로 감소한다. 광주·전남의 총인구는 2001년 340만여명에서 2030년에는 272만여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향후 30년간에 광주·전남의 총인구는 68만명 정도가 감소한다. 한편 55~64세의 고령자 인구와 65세 이상 노인 인구를 합한 55세 이상인구의 비중은 광주의 경우 2001년에서 2030년 사이에 14.2%에서 36.2%로 급격히 증가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에 전남의 경우 55세 이상인구의 비중은 2001년 25.0%에서 52.5%로 급격히 증가할 전망이다. 전남의 고령화는 광주에 비해 더욱더 급속하고 심각할 전망이다. 생산가능인구 중 55~64세의 고령자의 비중은 광주의 경우 2001년 16.2%에서 2030년 34.1%로 증가할 전망이다. 전남의 경우 생산가능인구의 절대적 규모는 계속 감소하는 경향인데도 고령자의 비중은 2001년 25.8%에서 2030년 42.2%로 대폭 증가할 전망이다. 위와 같은 장래 고령자의 급격한 증가라는 도전에 대하여 광주·전남은 고령자가 광주·전남 경제의 중추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활력있는 초고령사회 전략’으로 응전해야 한다. 고령자 정책은 모든 정책에서 우선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광주·전남의 모든 정책의 입안과 추진시에 초저출산·초고령 사회를 대전제로 하여야 한다. 예컨대 지역 일자리를 직접 창출할 수 있는 기업유치나 투자유치도 초저출산·초고령 사회를 극복할 수 있도록 고령친화적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활력있는 초고령 사회의 실현 여부는 고령자의 고용 및 취업 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광주·전남의 공공부문에서 남성과 여성의 고령자에 대한 시간제 근로, 단기간 근로 등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장래에 광주·전남 공공부문의 비정규적인 일자리는 고령자가 아니면 단기간으로도 취업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을 지금쯤에서는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고령자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고령 실업자는 교육훈련을 받을 의지가 비교적 크고, 또한 고령자의 교육훈련은 전직에 도움을 주고 재취업 능력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자는 대부분 취업을 원하고 있으므로 사업장에서 고령 친화적인 작업환경을 구축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광주와 전남은 행정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을지라도 노동시장은 두 개로 분리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말하자면 광주와 전남은 하나로 통합된 노동시장이라 할 수 있다. 광주와 전남은 노동시장 측면에서 보면 공동운명체이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금년 7월에 국가차원의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07~’11)’을 수립하였듯이, 여타 지방정부보다도 선도적으로 광주와 전남이 합동으로 가칭 ‘제1차 광주·전남 고령자 고용촉진 5개년 계획’을 입안하여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 계획은 매 5년마다 고령자에 관련된 대내외적인 환경변화를 반영하여 입안되어야 한다. 초저출산·초고령사회에 직면하고 있는 광주·전남의 미래는 활력있는 고령자(active senior)가 지역에 밀착하여 광주·전남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오래된 과일나무라 하더라도 가지치기를 잘하면 새로운 가지가 나오고 그 가지에서 꽃이 피듯이, 지방정부가 고령자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지역주체인 주민이 활력있는 지역밀착형 고령자를 지향하면 광주·전남은 초고령사회를 활기차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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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인문학 위기론에 대한 나의 선문답 한 안방마님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살림 따라올까 싶다.’ 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우연히 생각났다. 남편은 선비라 살림에는 뜻이 없이 다만 공자 왈 맹지 왈 책 읽기에 여념이 없고 자식은 많고 집안은 가난하여 없는 살림에 호구하기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시절 이야기다. 그런 속에서 마님은 혼지 친정으로 시가 어른 댁으로 SOS를 보내 위기를 모면하는 등 평생을 살림살이 책임을 져야 했다. 페미니즘의 시대에 스스로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냐 싶지만 나의 기억에는 주변에 흔히 있는 풍경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집이 그랬으니까. 밖에서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외국에 나와 있으니 제일 좋은 것은 ‘그 지겨운 (한국)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가 있다. 국내에 있을 때는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안볼 수도 없고 보면 지겹고 화나고 그러면서 하루라도 그것들을 안보면 세상이 안돌아갈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그 안방마님의 살림살이처럼 그것들은 숙명적 부담이 되어버렸거나 아니면 어떤 저주받은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지금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못해보는 것은 내가 세상 돌아가는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탓도 있으리라. 나는 최근에 흥미로운 책 하나를 읽었다. ‘복화술의 목소리’라는 번역서다. 엘리자베스 하비라는 토론토 대학 교수가 쓴 것을 번역한 것인데 그 번역자 가운데 박연성이 들어 있다. 그는 지난 해 나와 같이 ‘W. H. 오든’을 공저로 출판 한 바 있는 사람이라 보내온 정의로 보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르네상스시대의 문학과 20세기 페미니즘 이론을 넘나든 비평서인데 특히 근대 초기의 영문학 작품을 역사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연구한 내용이다. 남성이 여성의 목소리를 빌어 즉 복화술의 화술로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얼마나 섹슈얼리티와 성 정체성이 왜곡되었는가를 논증한다. 페미니즘이 역사까지를 손보고 있는 사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페미니즘이 오늘 새삼 얼마나 무서운 호랑이인가를 생각하고 내가 지금 호랑이가 사는 계곡을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호계삼소 (虎溪三笑)라는 고사가 생각났다. 진 나라 스님 혜원법사가 자기를 찾아온 도연명과 육수정 두 사람을 전송할 때 이야기에 팔려 자기도 모르게 호랑이가 사는 계곡 가까이 다가가 호랑이 우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정신을 차리면서 세 사람은 크게 웃었다는 고사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담이 큰 세 사람의 파안대소를 연상한다. 요즘 신문마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기사에 눈이 시리다. 그동안 심심찮게 인문학 전공자들의 목맨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전에는 한 대학 인문학 교수들의 선언문 발표가 있었고 며칠 전에는 전국 80여개 인문학 대학 학장들이 ‘인문학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했다는 보도를 읽는다. ‘오늘 날 세계는 경쟁과 효율성만을 강조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배려와 윤리의식이 실종되고 있다’ 하고 ‘인문학의 위기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정성을 황폐화시킬 수 있음을 자각한다’고 말하는 등 격한 목소리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다시 호랑이를 느끼면서 이 목소리가 페미니즘의 호랑이와 멀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갑자기 선승들의 선시(禪詩)를 읽고 싶어졌다. 자기도 그 까닭을 잘 알 수 없는 선문답을 하고 실어진 것이다. 엉뚱한 반응이다. 서가에서 현대 한국 선시라는 책을 꺼낸다. 그 안에 효봉 스님의 선시도 있고 만해 스님의 시도 있다. 효봉 스님의 시 한수,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좌우 전후에 떨어지지 말고 따라 가다/ 산과 물이 막다른 곳에 이르면/ 다시 한 걸음을 더 가서 거기에 닫는다.’ 내 친구 가운데 동양화가가 있다. 그는 최근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찾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그래도 그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잘 안되는 모양이다. 돈 때문이다. 돈이 안 되면 그림이 안 되는 모양이다. 인문학의 위기와 그 이유가 다르지 않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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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 모래알 조직된 씨름판 기경범 교복과 통기타, 이소룡, 예비고사, 고교평준화, 장발, 나팔바지와 흑백 TV... 우리가 지나온 70-80년대 아날로그 문화의 아이콘들이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70년대와 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중장년들에게는 세대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아련한 추억과 향수의 전유물들이다. 이같은 복고풍에 맞춰 주류 대중가요에도 리메이크바람이 불면서 그 시절의 노래들이 신세대 가수들의 입을 통해 다른 버전으로 전달되는 익숙한 가사가 귀에 낯설지 않다. 스포츠 분야에선 이같은 7080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종목으로는 고교야구와 씨름이 아닐까 싶다. 씨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과 문화, 얼과 정서가 스며 있는 종목이다. 학창시절이면 누구나 운동장 모래밭에서 마치 천하장사 타이틀을 따기 위해 친구의 허리선을 붙잡고 안다리걸기를 했던 옛 사진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씨름은 천하장사 타이틀을 놓고 모래판에서 힘과 기를 겨뤘던 거인 이봉걸과 기술씨름의 달인 이만기가 활약했던 80년대 황금기를 맞았다. 그런데 요즘 씨름판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최근까지 활약했던 천하장사 이태현이 모래판을 떠나 격투기 선수로 변신해 지난 10일 일본에서 브라질 선수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결과는 1회 9분 만에 TKO패. 이태현은 결국 주먹 한방 못 날리고 상대의 거센 공격에 일장적으로 밀리며 기권패했다. 화면에 비친 이태현의 모습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 그대로였다. 후배의 경기를 지켜본 왕년의 천하장사 이만기는 한국씨름연맹과 국내 씨름계의 현실을 한탄하며 직언과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만기는 "씨름연맹이 새로운 팬을 찾지 못하고 씨름장 시설의 관리 등에서도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며 "후배들이 격투기로 간다고 해도 막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만기의 발언에 대해 한국씨름연맹은 영구제명 조치를 내렸다. 이만기는 이에 반발해 영구제명 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자신과 민속씨름동우회 일부 회원들이 갖고 있는 135개의 씨름타이틀을 반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만기와 한국씨름연맹의 갈등은 우리 씨름계가 간직 해 온 전통과 자산을 무너뜨리고 내부의 고질과 병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씨름계 안팎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직언과 비판을 비난과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연맹측의 무사안일과 자만도 이같은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처럼 양측의 대립은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어쩌다 우리 씨름판이 이 지경이 됐는가. 최홍만과 이태현 등 모래판을 누비고 있어야 할 젊은 장사들은 샅바를 놓거나 다른 진로 모색 등으로 하나둘 씨름계를 외면하고 있고 팬들에게 씨름은 가십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얼굴에 멍자국과 붓기가 선명한 이태현은 상처투성이이인 우리 씨름계의 자화상이자 현주소인지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이처럼 몰락한 씨름계를 재건하고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와 정서가 녹아 있는 씨름을 살리기 위해서는 씨름인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씨름계 화해와 화합을 이끌어내고 모두의 역량을 모아 팬들을 모래판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선수들이 떠날 수 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유능하고 우수한 선수 육성 발굴을 위한 팀 창단, 씨름장 시설 확충과 팬 서비스 강화 등 민속씨름 진흥을 위한 다각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정부 차원의 적극 지원과 팬들의 사랑도 더해져야 한다. 비온 후 땅이 더욱 굳어지는 법이다. 다시 샅바를 잡고 차돌리기를 하는 젊은 장사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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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지역산업발전과 테크노파크의 역할 남헌일 원장 필자는 작년 6월부터 광주테크노파크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부임이전부터 부임이후 얼마 동안은 지인들로부터 “테크노파크가 뭐하는 곳이냐?”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스쳐가면서도 딱히 간단 명료하게 설명해 주지 못했던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창업이나 경영지원과 같은 기업지원이 테크노파크의 전부라 생각했는데 막상 부임해서 보니, 산업에 관련된 것이라면 기업·대학·연구소와 지자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일들이 테크노파크가 해야 되는 역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테크노파크는 당초 ‘산업기술단지지원에관한특례법’에 명시되어 있는 법적 의무사업, 즉 창업보육사업 등 목적사업뿐만 아니라, 기업과 산업발전에 필요한 정책의 수립과 집행, 그리고 필요한 경우 정부와 지자체를 대행여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지역산업발전을 위한 테크노파크의 역할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립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90년대 후반이후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기존의 자본과 노동을 근간으로 한 ‘가격경쟁력’에서 정보와 지식을 근간으로한 ‘기술경쟁력’으로 바뀌면서 정부의 지방산업정책에도 혁신적인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정책입안과정에 중앙정부와 더불어 지자체가 적극 참여함으로써 지역의 현실을 반영한 특색있는 산업정책을 시행하고, 대기업 보다는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산업단지와 같은 물리적 집적화 보다는 ‘경제주체간 협력적 네트워크’를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든 혁신주체의 본래 역할까지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각 주체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요구받을 뿐이다. 다만 모든 혁신주체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각 주체의 역량을 집적화·연계하는 새로운 조정자(Coordinator)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테크노파크를 설립하게 되었다. 현재 전국에는 광역지자체를 중심으로 16개의 테크노파크가 산업자원부장관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광주테크노파크는 시범테크노파크사업의 일환으로 ‘99년에 개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업여건이 가장 열악한 가운데서도 철저하게 수요자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해 왔고, 그 결과 지난 7월 산업자원부에서 기업인 등 테크노파크사업 수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 광주테크노파크가 시범 테크노파크중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광주테크노파크가 운영하는 LED/LD패키징지원센터의 경우, 제3회 지역혁신박람회 광주지역 예선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타지역의 유관기관으로부터 벤치마킹을 위한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중앙부처 관계자로부터도 가장 역동적이고 앞서가는 테크노파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스스로 떨칠 수가 없다. 기업지원을 통한 실질적인 성과, 즉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스타벤처기업을 아직까지 배출해 내지 못했고, 혁신주체간 조정자로서의 역할도 미흡하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지역에는 다양한 혁신주체들이 생겨나 각자의 분야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혁신주체의 양산 및 주체간 연계조정 메커니즘이 취약하여 수요자인 기업의 혼란을 초래하고, 예산과 사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산업자원부에서는 지역혁신주체들의 자율성을 살리면서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테크노파크를 지역의 거점기관으로 지정하여 이를 중심으로 혁신주체간·사업간 연계협력을 의무화 하는 거버넌스 개편을 시행한 바 있다. 거버넌스 개편을 계기로 테크노파크는 지역혁신의 거점기관으로서 혁신주체들의 연계협력을 위해 필요한 심부름을 열심히 해서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더욱 더 기업과 지역사회 친화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여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다짐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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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스스로 책임져야 할 기초자치 폐지론 광주 모구청 A 구청장은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선 자치단체장이 된 사람이다. 그는 고위 공직자 출신이어서 관선시대 구청장 경험도 없지 않다. 그런데 막상 민선 구청장이 되고 보니 기초단체장으로서 역할이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더라고 토로했다. 할 일이 태산같아서 막막한 게 아니었다. 워낙 주어진 예산이나 권한이 미미해서 뭘 하자고 들어도 할 게 없더라며 그는 사석에서 한탄했다. A 구청장은 자신의 지역과 비교해 인구가 10% 정도 수준인 도내 어느 군(郡) 예산이 1천780억원인 반면 자신들은 1천730억원이더라며 어이없어 했다. 그나마 인건비에 복지비를 빼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새로 기초의회 의원들 월급까지 줘야만 할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구청장이 임의로 사업을 벌일 액수는 겨우 10억원 안팎이더라고 했다. 엄밀히 따져 웬만한 중소기업 1년 예산보다 적은 돈으로 수십만 인구의 기초단체를 나름대로 ‘특별한 지역’으로 만들어가야만 할 입장이다. 막막해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비정상인 셈이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온갖 공약을 내세우며 치열한 선거전을 벌인 끝에 이제 막 구청장으로 선출된 사람에게 안된 얘기지만 기초단체의 상황이 그렇다면 (기초단체의) 폐지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러자 그는 단호하게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원래 소신도 그랬지만 막상 해보니 기초단체의 자치 필요성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치역량이 충분해질 때까지 기초단체나 기초의회의 민선체제를 잠정 유보하는 게 좋겠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우리보다 지방자치의 역사나 경험이 많은 일본도 자립능력을 갖춘 20여개 지역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대부분 구청들이 관선체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기초자치단체나 기초의회의 폐지론 또는 무용론이 끊이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러나 풀뿌리 민주주의의 큰 흐름을 좇다보면 다소의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는 시각과 실정법의 한계때문에 수면위로 올랐다가 다시 물밑으로 잠복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폐지론이 고개를 드는 것은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회 의원의 그릇된 행태나 부족한 자질이 노출됐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우들이 마치 연례행사처럼 꼬박꼬박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주에도 이러한 사례들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광주 남구의 한 의원이 구청과 수년째 수의계약을 체결해 도덕성과 직위남용 시비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를 연계공사라느니 장기계약공사라느니 변명하고는 있으나 백번 양보해도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위조한 고등학교 졸업장을 대학에 제출해 부정입학한 일마저 발생했다. 평소부터 학력 컴플렉스를 지녔던 광주 북구의회 모의원이 학교 행정계장과 짜고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이다. 게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옷을 벗은 기초단체장이 자신의 친인척을 재선거 후보로 들이미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경우도 심심찮게 눈에 띤다. 이런 작태들을 보고 있자면 도덕적 해이도 그렇지만 지역민들을 완전히 ‘봉’으로 여기고 있지 않느냐는 불쾌감마저 든다. 당연히 기초자치 폐지론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매사가 그렇듯 가랑비에 옷젖는 법이다. 가뜩이나 취약한 기초자치 현실에 이런 몰지각한 행태들이 자꾸만 덧칠해진다면 언젠가는 실정법 개정도 현안으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때가 오더라도 기초자치 관계자들은 누구를 원망할 자격이 없다. 지방자치를 후퇴시킨 장본인들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제발 지금부터라도 그 말썽많은 외유성 해외연수도 좀 자제하고 자신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민주주의 초석을 다진다는 사명감을 지닌채 자숙해주길 바란다. 지역 주민들이 참고 보는데도 한계가 있질 않겠는가.
칼럼
최혁
2006.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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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대학의 인문주의 회복을 열망하며 한강희 교수 고려대 문과대학 교수들이 작금의 인문학(The humanities)의 위기를 우려하는 ‘9·15선언’이라는 성명서를 내고 사회적·국가적 차원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해당 대학의 한 교수는 상아탑의 고유 기능인 학문적 기초를 인문주의로 연결시키지 못한 실용주의는 근시안적 교육정책 발상으로 국가 백년대계를 기약하기에 허약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사안은 이권과 권력을 필두로 한 정치적 이슈만이 온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뜨거운 양철지붕의 나라’이다보니 별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가십성 단신 뉴스로 수그러들었다. 이른 바, ‘돈이 안되는’ 인문학은 그 장래를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초라해지고 있다. 문과대학·인문대학을 선호하는 학생이 줄어들고, 전공도 일부 인기 학과로 몰리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국문과·영문과 학생이 입학과 동시에 고시를 준비하고 철학과·사학과 학생이 취업전선을 위해 토플과 토익에만 신경을 쏟고 있다. 대다수 인문학 전공은 졸업장 취득만을 위한 학과로 유지되는 악풀이가 계속되고 있다. 비단 인문학만이 아닌 기초 과학 분야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전해진다. 문제는 대학 역시 ‘취업과 비전’이라는 ‘자유 민주주의적 시장주의’를 외면할 수 없기에 속수무책·수수방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개선·돌파하려는 의지는 교육부·노동부 등 정부 차원의 기획과 조정, 이를테면 사회 전 부문의 인력 수급이라는 큰 틀이 주도면밀하게 대학 사회에 스며드는 양태로 극복돼야 한다. 한편으로 대학 구성원과의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제도적 장치로 상승(相乘)해야 한다. 기초 학문에 대한 폄하와 경시는 대학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재정지원사업이 역기능을 초래하는 사실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과학 입국이라는 취지 하에 기초 학문의 중요성이 고려되지 않고(일부 수도권 유명대학은 예외이지만)눈앞에 놓인 ‘특성화 실적’만을 좇고 있다. 인문학의 영역도 문화 콘텐츠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이론의 실용화, 주변부 학제의 중심화로 상품적 시너지를 도모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 역시 진정한 기초 인문학·기초 과학의 토대 구축과는 배치된, 한편으로 예산투입의 효율성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사실이 이러하다보니 대학은 온통 프로젝트 사업장으로 변하고 있다. 전문성 있는 양질의 논문, 학생 수준에 눈을 맞춘 교과과정의 구현, 최상의 교수-학습 환경 구축은 부차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대다수 프로젝트는 6개월~1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내에 민-관-산-학 연계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는 요식적 보고서(paper-work)로 머무르기 십상이다. 한편으로 특정 대학, 특정 학과 학생에 혜택이 집중되다 보니 균등하고 성실하게 등록금 ‘납세 의무’를 행한 대다수 학생들은 속된 말로 ‘봉’이 되고 있다. 이미 ‘황우석 사태’라는 값비싼 희생이 일깨워주듯이 대학은 자본주의의 실험장이 아니다. 새삼스레 되풀이 하자면 대학은 학문의 기초를 세우고 익히는 도량이 주된 목적이 돼야 한다. 대학이 수급 불균형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인 연유는 학문의 실제적 응용이 마치 학문의 완성으로 착시되고 있는 데 한 원인(遠因)이 있다. 이즈음 “이집트의 피라미드 공사는 이미 끝났고, 바벨탑은 무너지고, 로마의 거대한 콜로세움도 무너져 내리고, 네로의 황금빛 궁전에 찬이슬이 내려지는 등 속세의 기적은 모두 사라졌지만, 학문은 여전히 그 자체로 당당한 기품을 자랑하며 생명력을 꽃피우고 있지 않는가.”라는 불후의 격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공을 초월하여 대학(학문)의 알파와 오메가는 인문주의의 기초를 탄탄히 세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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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미래로 가는 나의 뜬 구름 지난 주말 순천대학에서 21세기 영어영문학회 가을 학술발표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 특강을 요청 받고 참석하게 되었는데 회장을 비롯한 모인 100여명의 회원들이 모두 젊은 사람들이라 그 가운데 자기가 둥둥 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싱싱하고 살아 움직이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자기를 확인한 것이다. 홍일점이라는 말 대신 그렇다고 스스로 백일점이라 놀릴 수도 없고 분위기가 공부하는 사람들의 차분하고 안정된 속에 맑고 푸른 하늘을 느끼면서 그 속에 자기가 뜬 구름이라 생각된 것이다. 나의 특강 제목은 ‘나의 영문시집과 에세이’였다. 언젠가 한 번은 영문학회나 영문학 전공 학생들 앞에서 그것을 발표하고 싶었다. 영어에 대한 자기의 한계를 아는 처지라 물론 자기에게 영시가 분수에 벗어나는 일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왜 내가 영어로 시를 쓰게 되었으며 그 도전과 모험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떤 반응이 있었으며 지금은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 쓴 시 몇 편과 두 편의 에세이를 수록한 소책자를 준비하여 등록 데스크 위에 올려놓았다. 그 소책자는 지난 2002년 여름 중국 서안에서 열린 제8차 아시아 시인대회애서 행한 나의 기조연설을 위하여 준비한 것이었다. 기조연설의 제목을 ‘기승전결(起承轉結)에 대하여’ 이었는데 그것을 복사한 것이다. 한국어로 된 원문과 같이 기조연설은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되어 수록되어 있다. 그 소책자의 머리에 참고삼아 여덟 편의 영문 시와 두 편의 에세이를 수록했는데 그것은 나의 기조연설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반응으로 보아 착안이 좋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순천대학 가을학회는 분위기로 보아 큰 성황이어서 한 때 비껴 설수도 없이 나는 그 맑고 밝은 군중에 섞여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역시 정처 없는 구름이구나 생각하고 있는 데 누군가가 ‘선생님‘ 하고 불러 돌아보았더니 영문학과 노승희 교수였다. ’선생님 사인 해주세요‘ 하면서 그 소책자를 내밀었다. 엉겁결에 사인을 하고 무던히 글씨도 못 쓴다 흉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려주는데 기다리고 있었던지 또 다른 사람이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저도요‘하면서 그것을 내밀었다. 순천대학 박오복 교수였다. 사인의 요청은 이미 그들이 그 책자 내용을 검토했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기념으로 보관하겠다는 의사를 표하는 것이라 해석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인을 하면서 내 마음이 설렌 것은 그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하늘에 별자리가 뚜렷한 영문학계 빛나는 별들이다. 그들의 빛나는 사정거리에 들었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한 것이다. 나는 그 설렘 속에서 오늘 내가 그 젊은 별 들의 하늘에 뜬 구름이지만 그러나 그 푸른 하늘에 나의 시가 한 구석 그 빛나는 미래의 시간이 된다고 생각하니 어찌 상기되지 않겠는가. 거기 수록된 나의 영문 시는 81년 여름 옥스퍼드대학 하계연수 과정에서 낭송되었다. 그리고 미국 오하이오 데니슨대학 개교 150년 기념행사의 하나인 국제 시낭송의 밤에서 낭송되었고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 적도 근처 세라레온 수도 화라비대학의 교수 학생들 앞에서 낭송하였고 89년 가을 학기 미국 아이오와 국제 작가 프로그램에서 낭송되었다. 그리고 2002년 중국에서 소개되었다. 다만 아이러니컬하게 한국에서만 낭송의 기회가 없었다. 그 꿈을 이룬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하였든가. 그 학회 회장인 이경순 교수가 신입생으로 들어온 18세의 소녀였던 시간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해 봄에 나는 그 영문학과 신임 교수로 부임했었다. 우리는 말하자면 이 대학 동기생이다. 동기생의 그 높고 푸른 설렘을 앞으로도 그들과 같이 공유하고 싶다. 나의 뜬 구름이 미래로 가고 싶은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9.2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