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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 철학이 담긴 행정은 늘 풍요롭다-김선기 문화생활부장 얼마 전, 호주 시드니시가 ‘송골매의 알’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는 외신을 접했다. 시내 복판에서 건축중인 빌딩 꼭대기에 송골매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은 것이다. 건물을 계속 짓기위해서는 둥지를 제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드니시는 심사숙고 끝에 경제적 손실이 있지만 알이 부화할 때까지 공사를 중단키로 결정했다. 한국 사회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품위있는 행정의 모습 위로 뒤떨어진 우리의 행정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이제, 행정도 멋을 추구할 때이다. 그것이 자치의 힘이기 때문이다. 법과 규정에 얽매어 꼼짝달싹 못하는 행정, 선례 답습으로 앞뒤가 꽉 막힌 행정, 거기에는 멋이 있을리 만무하다. 멋은 커녕 시민들에게 상실감만 안겨줄 뿐이다. 이 시대는 변화무쌍하다. 이에 발맞춰 행정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고, 행정이 변화되려면 먼저 공무원들의 의식부터 바꿔져야 한다. 새로운 사고만이 ‘행정의 멋’을 창출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이며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한 지역의 문화와 사람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정성을 쏟는 행정은 매우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다. 작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게 되도록 힘을 기울이는 일(행정)은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며 아름답고 보람있는 일이다. 그리고 한 세대 만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꿈을 가꿔나가는 것은 행정의 또 다른 멋이기도 하다. 사례를 하나 더 들자. 로마시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으면서도 땅이나 집이 나오면 시에서 사들이고 있다. 시 재정이 어려워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한다고 한다. 사들인 집은 헐고 마당을 만들어 아이들이 뛰놀게 하고 있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장차 건강한 로마시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을 사서 아이들이 뛰놀게 하는’ 로마시 공무원들은 얼마나 멋진 행정을 하고 있는가. 요즘, 참여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문화수도 육성 사업에 지역민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관계법령이 국회 캐비닛에서 잠자고 있고, 광주지역 국회의원 가운데 문광위 소속은 단 한 명도 없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그렇다고 앉아서 하늘만 보고 있을 순 없는 일이다. 이쯤되면 박광태 광주시장이 탁월한 지도력를 발휘해 특색있는 문화정책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 한 가지 대안으로 ‘대한민국 문화수도, 광주’라는 언덕에 기대어 ‘광주광역시 지방공무원시험’에 ‘문화직렬’신설을 적극 제안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한 바 있지만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초석을 우리가 스스로 깔자는 것이다. 현재 광주시 지방공무원시험 직렬에는 행정직을 비롯해 건축, 토목, 보건, 사서직 등 수많은 분야가 있는 것으로 안다. 다양한 직렬에서 배출된 우수한 인재들은 각자 전문 분야에 배치돼 업무를 탁월하게 수행하고 있고, 결과 또한 좋다. 물론 ‘문화직렬’신설에는 많은 난제가 뒤따름을 모르는 바 아니다. 우선 ‘문화직렬’에 대한 지역여론 수렴과 그에 대한 당위성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지방공무원 임용령’개정까지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박 시장이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광주시의회를 비롯 지역 여론에서 문화 백년대계를 꾸려갈 ‘문화전문 공무원’을 양성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건축직이나 보건직처럼 문화 분야에도 전문직을 둔다면, 업무에 대한 효율성은 물론이거니와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 문화수도 육성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확신한다. 철학은 행정을 풍요롭게 한다. 풍요로움은 곧 여유이고, 그 여유로움에는 멋이 있게 마련이다. 결코 허황된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 행정도 멋이 있어야 지역민들이 공감하는 법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이지만, 시드니시의 ‘송골매 알’에 대한 행정기법은 곱씹어 볼만하다. /kimsg@
칼럼
남도일보
2006.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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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하이드, 지킬박사 되기” 오경교 사무국장 뮤지컬 ‘지킬박사와 하이드’ 가 한국에서 두 번째 막이 오른다. 1997년 브로드웨이에 데뷔, 1587회 공연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이 작품은 영국 소설가 스티븐슨의 원작으로, 인간에게 내재된 선과 악의 개념을 끄집어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지킬박사는 선악의 모순된 이중성을 약품으로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상에서 약품을 발명한다. 그리고 약물을 복용함으로써 지킬박사는 자신의 악한 본성을 꺼내는데 성공한다. 이른바 하이드, 지킬박사는 약물을 통해 상습적으로 악한 존재 하이드로 변한다. 결국 하이드가 지킬박사의 선한 본성을 지배하고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 하이드는 더 이상 지킬박사로 되돌아 올 수 없게 되고 살인죄로 경찰에 쫓기다 체포되려는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지킬박사(善)이면서 하이드(惡)이기도 한 주인공은 사라진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윤리학, 철학에서는 인간본성의 문제를 해석하는 과정으로, 정신분석학에서는 해리성 장애. 즉 다중인격장애로 정신질환의 한 예로 인용된다. 심지어 가수 서태지는 ‘언제까지라도 자신을 속이고 살아야 하는데 끝없는 내 마음의 갈증은 저주받은 인류가 풀지 못할 숙제인가’라며 이중적인 인간과 사회를 꼬집으며 3집 앨범에서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곡을 내놓기도 한다. 우리의 본성은 지킬박사일까? 하이드일까? 아니면 지킬박사였지만 하이드로 변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맹자, 순자, 공자, 로크 등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해왔고 아직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 풀지 못할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여름철 해안가에서 익사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슈퍼맨이 나타나 익사자를 구해내고 슈퍼맨은 안타깝게도 저세상으로 가는 이야기도 뉴스를 통해서 많이 접하게 된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물 속에 뛰어드는 사람을 누군가는 바보같은 행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하는 이 사회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 그는 남을 위해 헌신하는 고귀한 정신을 가진 우리 시대의 영웅이자 슈퍼맨이다. 맹자는 ‘4단(四端)’설에서 사람은 누구나 “측은해 하는 마음,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르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해안가의 슈퍼맨이나 지하철로에 떨어진 맹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어느 시민 등 우리 주변의 아름다운 얘기를 들으면서 “역시 나쁜 사람은 없어”라고 맹자의 성선설에 고개를 끄덕인다. 한편 보험금 때문에 자녀와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 사람에게 유해한 물질을 첨가한 식품을 속여 팔아온 상인, 초등학생 성폭행 범죄자 등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진정한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규정하지 않고, 영국의 철학자 로크는 인간의 선악은 교육과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며 인간을 하나의 백지로 보고 ‘환경적 경험’에 의해 개인의 특성이라는 그림이 그려진다며 ‘백지설’을 주장했다. 본인은 인간본성에 대한 특정 이론을 지지하며 인간본성을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에 근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우리 자신을 선하고 긍정적인 환경에 노출시켰느냐이다. 우리 스스로가 본래 ‘지킬박사’였다면 ‘하이드’로 변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하이드’였다면 ‘지킬박사’가 되기 위해 어떤 욕구를 절제하고 인내했느냔 말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를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인생 공백을 어떻게 하면 인간답고 행복하게 그려갈 것인지 그 해답을 찾아야 하겠다. 자신의 행복에만 운운하는 이기적인 사고를 버리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몸소 봉사하고 사회단체에 후원하면서 아름다운 생각으로 ‘나’라는 ‘백지’에 아름다운 밑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칼럼
남도일보
2006.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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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선량(選良)은 어디 가고… 지방선거 참패 이후 열린우리당내에선 반성과 속죄의 변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한 두 번 속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17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이같은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다. 상임위 배정을 둘러싼 이전투구에서 그들이 보여준 3막극(三幕劇)은 코미디 그 자체다. # 제 1막 이번 원구성을 앞두고 김한길 원내대표가 광주지역 국회의원 두 명에게 문광위를 권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광주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지역의 최대 관심사다. 사업추진이나 예산확보 등을 위해 다른 곳은 몰라도 광주에는 문광위원이 반드시 배정돼야만 했다. 더욱이 전반기에도 광주에는 문광위원이 없었다. 그래도 그 당시엔 문광부장관 자리에 정동채 의원이라도 앉아 있었다. 이젠 이렇다할 국회내 채널이 없다. 당연히 광주 국회의원중 한 둘은 문광위를 차고 나섰어야할 일이다. 그러나 문광위 배정을 제안받은 두 의원은 이를 거절했다. 참여정부가 명운을 걸었다는 광주문화중심도시는 17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국회내에 아무런 원군도 구하지 못한 채 고군분투해야할 운명이다. # 제 2막 국회내 상임위중 ‘기피 1호’는 법사위다. 지역구에 이렇다할 사업이나 예산을 내려줄 수 없는 상임위다. 과거엔 주로 변호사 출신의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리잡았던 곳이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지닌 사람이 해당 상임위에 가지 못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는 폐업하기 전엔 들어갈 수가 없게 돼버렸다. 이런 저런 연유로 여기에 배정된 임종인 의원은 아예 막말을 해댔다. “(상임위 배정 책임자인) 김한길 원내대표에게 증오의 감정이 있다. 원내대표가 무슨 큰 벼슬인줄 아나…. 나한테 법안에 대해 뭐 찬반 관련해 이야기만 해봐라, 죽여버릴 테니까.” 이런 감정적 언사가 여과없이 방송을 타버렸다. 말썽이 나지 않을 리없다. 결국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그에게 경고조치를 내렸다. # 제 3막 이에 앞서 열린우리당은 상임위 배정을 둘러싸고 의원들의 의견과 협조를 구하는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여기에서 일부 의원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상임위를 줄 경우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도부를 협박(?)했다. 지방선거 패배이후 무너질대로 무너진 당 기강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다 못해 이 지역 광산 출신인 김동철 의원이 나섰다. “…그러찮아도 당 안팎이 어려운데 당 지도부가 배정한대로 따라야할 게 아니냐…, 이런 식으로 하니 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는다….” 아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의명분을 역설했지 않았나 싶다. 그날 자리는 그렇게 수습이 됐는데 그 다음날 김 원내대표가 김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앞서 말한 ‘기피 1호’ 법사위에 가달라고 부탁하는 전화였다. 김 의원은 법대 출신이다. 내심 산자위를 원했던 김 의원은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전날 한 얘기도 있고 전공도 그렇고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김 의원은 인기없는 법사위를 배정받았다. 그런 그에게 김 원내대표는 보상을 해줬다. 예결위와 계수조정소위에 반드시 포함시켜 주겠노라고 약속한 것이다. 선량(選良)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난 인물(人物)을 뽑는다는 뜻이다. 요즘에는 선거(選擧)된 양사(良士), 곧 ‘국회의원’을 달리 일컫는 말로 쓰인다. 따라서 민주사회의 선량은 모든 면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있는 인물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를 기대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그네들의 저급한 행태에 워낙 신물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동철 의원 정도의 행보라면 꽤 괜찮은 편이다. 어쨌든 막가는 행태를 보이지 않았으며 최소한 자신의 이익을 접었기 때문이다. 이런 필요 최소한의 품격이 오히려 눈에 두드러지는 게 한국 현실 정치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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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
2006.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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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물길을 살리자, 샛강을 살리자-한강희 교수 비가 내리고 물이 한 곳으로 모이면 원천(源泉)을 이룬다. 원천이 형성되고 물이 넘쳐 흐름이 잦아지면 비로소 물길이 열려 내가 되어 흐르고 마침내 강을 이룬다. 강이 있고부터 강의 주변에서부터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 강이 몸피에 어패류를 품어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고, 음용수를 만들고, 물산의 유통을 도왔기 때문이다. 한강과 섬진강, 영산강과 낙동강이 우리 주거사의 발원이 됐듯이 인류문명의 시원인 나일강과 갠지스강, 유프라티스강과 티그리스강도 마찬가지였다. 특정 지역의 청정 환경은 언제나 물길과 강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네 유년을 떠올리면 강은 고향의 시간과 공간이면서 또래 친구들 사이에 인정이 교류하는 물꼬였다. 게살에 걸려 새벽을 빠져나오느라 허둥대던 보름달을 떠올리노라면 밤새 불콰하게 달아오른 친구 얼굴이 떠오르지 않은가. 봄엔 풋것들을 구워먹고 입을 훔치며, 여름 나절엔 온종일 멱감고 다슬기를 잡고, 가을밤엔 횃불을 들고 참게와 빠가사리 잡는 재미 쏠쏠하고, 겨울엔 썰매를 씽씽 내달렸던 추억의 공간이 그곳이었다. 이렇듯 강은 모성과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과 함께 민초들의 삶의 치열한 무대가 되었다. 문명의 힘이 거세질수록 산업화의 경계에 놓인 강은 지칠대로 지쳐 오수와 폐수로 암죽으로 끓었다. 도로개설과 가든 열풍에 휩싸인 강은 으레 공사중이었다. 삶과 생활이 윤기를 띠게 되자 강이 되살아나고 있단다. 몇 해 전부터 섬진강과 탐진강에 은어떼가 돌아오고, 한강에서도 1급수에서만 살 수 있다는 수달이 서식하고 있단다. 강이 복원되고 있는 이유는 다시 돌아갈 모성인 자연에 대한 향수도 한몫 했겠고, 시민운동에 편승한 환경단체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환경문제의 시작이자 극점인 물길 살리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물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금 40~50대라면 초중학교 시절 1주일에 1회 정도는 이른 바 홈룸(봉사활동)시간을 경험한 바 있다. 그때 우리는 교사를 증축하기 위해, 화단을 만들기 위해, 운동장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흙과 돌을 날랐다. 주번과 담임 선생님은 나를 때 마다 횟수를 증명하는 인주를 손목에 꾹꾹 눌러댔다. 어지간히 용감한 아이들은 침을 발라가며 인주를 복사하기도 했다. 지역 자치제가 정착되면서 물길과 샛강은 개발 위주의 정책에 몸살을 앓았다. 요컨대 물길을 살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 샛강이 복원돼야 할 시점이며, 더욱이 방치돼서는 안 된다. 물길과 샛강을 살리는 데 그치지 말고 뱃길이 복원되는 데 까지 나가야 한다. 남도의 젖줄과 혈맥인 섬진강에, 영산강에 배를 띄워야 한다. 지자체가 인바운드에 주력한 나머지 야기한 관광상품화, 유원지화로 인한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 오물과 암죽을 걷어내고, 쓰레기와 방치물을 제거해야 한다. 강은 주거공간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물길이 살아나고 강이 복원되면 멸종 위기에 놓인 43여종의 야생동물도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를 위해 학생·공무원·자원봉사자·공익요원이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날도 만들고, 제도적·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일도 시급하다. 일반 직장에서도 ‘1사 1샛강 살리기 운동’을 권유해 봄직하다. 환경선진국 파리에서는 노령인구의 생산성 제고를 위해 노인들을 환경미화원으로 고용하고 있다. 강을 살리는 일은 은퇴한 노인을 위한 고용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다. 미국의 생태윤리학자 데이비드 브라워의 다음과 전언은 강이 ‘나에게로만 흐르는’, ‘나만이 전유할 수 있는 자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짐짓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자연은 앞으로 등장할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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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아프리카의 빛나는 검은 색 토고 전을 이기고 그 난리를 피던 날 모임에 나갔더니 나이 든 친구들도 화제가 다를 수가 없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이미 열 번도 넘게 반복한 내용을 그대로 마치 자기의 이야기처럼 열을 내서 쏟아놓으면 듣는 사람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흥겹게 맞장구를 친다. 그러자 친구 하나가 ‘이 못난 놈들아 토고가 어디 있는 나라인 줄은 아느냐. 토고는 전라도만도 못하는 작은 나라로 인구가 300만이고 GNP 400불의 아프리카의 빈국이야. 그 나라를 이긴 것이 그렇게 좋냐 이 못난 놈들아’ 하고 야유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야유에 동조하지 않고 그 신난 화제는 모임 내내 계속되었다. 월드컵은 확실히 마술임에 틀림없다. 우린 뿐 아니라 세계는 지금 그 마술에 걸린 것이다. 일본 속담에 ‘붉은 색에 섞이면 붉게 물든다’라는 말이 있다. 친구를 잘 못 사귀면 나쁜 길에 빠지기 쉽다는 교훈으로 일정 때 초등학교 선생에게 늘 들은 이야기인데, 이 속담은 해방되면서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보수적 입장이 애용하던 말이었던 것이다. 같은 무렵 ‘말이 많으면 공산당’ 이라는 말도 은연중 그 입장 속에 공감이 있었다. 해방 정국의 현실을 이론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아무래도 일정 시대를 상기하게 되고 그러면 불편한 입장에서 이 말들은 공감을 얻은 듯하다. 나이 30까지 붉은 색을 모르면 바보이고 30을 넘긴 뒤에도 그 붉은 색을 벗어나지 못하면 더 바보라는 말도 있었다. 붉은 악마가 귀여운 나는 아마도 더 바보인 모양이다. . 그러나 물들기 쉬운 색은 붉은 색보다 검은 색이 더 무섭다. 유전자의 강도가 그것을 말한다. 검은 색의 유전자는 우량종을 만든다. 한 생명체에 검은 유전자가 섞이면 그 생명체는 우량종인 검은 생명체가 되어 버린다. 그 기(氣)로 모이는 잡초 같은 생기, 활기, 용기, 오기, 치기, 객기, 광기, 살기 등 그 야성, 생산성, 그 번식력 그 생명력 그 변화가 그것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프리카를 생각하게 된다. 서양의 우월감이 한계를 만나자 그들은 아프리카를 주목하게 되었다. 피카소가 그 하나다. 아프리카의 음악이나 미술 등 예술에서 또 스포츠에서 검은 유전자의 우수성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보고 있다. 인류의 근원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는 학설도 이미 정설이 되고 있다. 사실상 월드컵은 아프리카의 축제다.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와 싸운 토고며 코피 아난의 나라인 가나, 상아해안이란 의미의 아이보리 코스트 즉 코티 디보알, 튀니지, 앙골아 등 검은 영웅들의 축제다. 사실상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등 중요한 팀의 중요한 선수들이 아프리카 출신의 젊은이들이 아닌가. 그 건장한 신장 그 넓은 가슴, 그 야성이며 그 순발력, 그 표범같은 속도, 그 체력 등 그들은 오늘 지구상의 어떤 민족보다 우수하다. 유엔 총장 코피 아난이 ‘유엔은 월드컵이 부럽다’ 라고 한 말은 진의는 아프리카가 서구처럼 힘을 발휘하는 세계가 이상적이고 보편적 세계라는 믿음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 85년 여름 적도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 푸리타운에 갔을 때 사석에서 조심스럽게 아프리카는 인류의 영원한 부담이라고 말한 한국 대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 말은 그 분의 말이면서 주제 외교관들의 말일 것이고 특히 서방 세계의 일반적 인식일 것이다. 한국 대사관 운전사인 죤스 란 이름의 현지 청년은 별로 친분이 없는 나에게 헛소리같이 아프리카는 강해져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나는 별 의미 없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는 강해져야 한다. 지금 아프리카는 그 청년의 소망대로 강해지고 있다. 월드컵이 그 예의 하나이다. 우량종인 아프리카의 그들이 바블같이 수만 채우는 유엔이 아니라 명실공히 실세가 되는 날을 희망하는 코피 아난의 소망을 나는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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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일보
2006.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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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논단]5·31 지방선거와 그 이후-이낙연 원내대표 5·31 지방선거가 끝나고 20여일이 흘렀습니다. 5·31이 저 개인과 한국정치에 던진 충격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5·31은 비상한 선거였습니다. 열린우리당 정대철 고문의 진단처럼, 5·31은 전반적으로 노무현 체제에 대한 다수 국민의 ‘거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 선거 역사에 전례가 없는 5·31의 수많은 기록들은 그래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수 국민이 노무현 체제를 거부한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이제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한국의 정치가, 적어도 한국의 지방자치가 한나라당의 비정상적 독주 체제에 맡겨진 것은 옳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심각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할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비정상적 독주는 한국 정치가 균형을 잃은 채, 보수로 경사될 우려를 낳습니다. 이것 또한 참여정부의 실패의 결과입니다. 진보세력의 자업자득이라고 할만 합니다. 한나라당의 과도한 독주를 견제하고 한국 정치의 균형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계재편이 불가피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열린우리당은 한국정치의 균형자로서 기능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5·31에서 다수 국민은 열린우리당을 거부했습니다. 민주당은 불의의 분당 이후 정치 균형자로서의 역량을 많이 잃었습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뛰어넘는, 새로운 균형자가 필요해졌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그래서 정계재편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몇 개 정당들의 통합을 말합니다. 현실적으로는 통합이 대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통합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현역 정치인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통합 플러스 알파가 돼야 합니다. 그 알파도 대단히 강력하고 인상적인 알파여야 합니다. 전 현직 정치인보다는 각 분야의 신선하고 유능한 전문가나 활동가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저는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돼야만 한국 정치에 의미있는 균형이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정치의 의미있는 균형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새롭게 등장해야 할 정치적 균형자는 어떤 집단이어야 할까요. 우선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장을 경시하는 이념과잉의 고집스러운 정책, 실물을 잘 모르는 무지, 정책실행에서 연거푸 실패하는 무능, 세금 등에 대한 일반 국민의 기분을 무시하는 오만, 편가르기에 의한 사회갈등의 증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무책임성…최소한 이런 잘못들을 바로잡을 역량과 자질을 갖춘 집단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많은 언론은 5·31에서 민주당이 약진 또는 선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민주당 내부에도 그렇게 평가하는 기류가 있습니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선전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민주당이 선전 또는 약진했다는 평가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수도권에서는 희망의 불씨도 찾기 어려울 만큼 참담한 결과를 얻었고, 호남에서도 저를 포함한 민주당 간부들의 지역에서 패배했습니다. 민주당은 민주당의 정통성과 정신을 지키면서 정계재편에 능동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봅니다. 5·31 지방선거가 민주당에 준 숙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얻은 것은 민주당의 긍정적 자산이 앞으로도 유지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민주당은 정계재편과 당의 진로를 놓고 솔직하게 토론해야 합니다. 외부 전문가들을 모셔 고견을 듣고, 민주당 사람들끼리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나누는 일이 시급합니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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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우리사회의 성공 조급증과 이공계 기피-김영철 교수 한국이 IMF 관리체제로 들어서기 수 년 전인 90년 초 미국의 한 권위있는 일간지에 당시 우리의 낭비적인 소비문화를 비판하며 쓴 ‘한국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제하의 기사가 실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의 기사 내용을 알리면서 적지않은 국내의 언론들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하여 극복하여야 만 할 난제가 많음을 지적하고 당시 계속되던 고도 성장과 고소득시대의 도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에 우려를 표시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1997년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들어선지 얼마 안되어 IMF 관리체제로 추락하며 국민소득은 6천 달러 수준으로 곤두박질 쳐 버렸던 것이다. IMF 관리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정부기관, 기업, 금융 등에 있어서 기초체력이 탄탄하지 못하고 허약한 체력에 비만한 몸집을 갖고 있던 구조적인 모순을 개선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7~8년이 지나서야 IMF 관리체제 이전의 소득 수준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한편,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출범과 함께 ‘2만달러 시대’의 청사진을 펼치며 차세대 성장동력 10대 산업분야를 선정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창출하고 이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육성과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예기치 않은 복병을 만나 각 대학의 이공계와 산업계는 우수 인력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좀처럼 반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도 최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각종 이공계 유인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현재로선 괄목한 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공계 기피의 원인으로는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어렵고 힘든 학문이나 직업 분야를 기피하는 풍조나 입시제도의 문제점, 그리고 이공계 관련 직업의 상대적인 고용의 불안정성 등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는 다른 어떤 선진국에서보다 정도가 심한 우리나라의 현상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우리의 이공계 기피 현상에는 10년전에 샴페인을 터뜨리던 때와 유사한 우리 국민의 조금은 유별난 성공에 대한 조급함이 일조 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조급한 성공지향 문화가 심화 될수록 우리의 젊은이들은 보다 장기적인 노력과 투자로 실현할 수 있는 이상과 목표를 추구하는 삶 보다는 안정적으로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이나 일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새로이 시작하여 수십 년이 지나서야 인정받을 수 있는 일보다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득한 면허나 자격으로 빨리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나 분야로 전공에 관계없이 수많은 졸업생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 현재 대학의 현실이다. 최근 큰 물의를 일으켰던 황우석 사건도 따지고 보면 관련자 개개인들이 무리해서라도 빨리 인정받으려는 성공에 대한 조급증이 화근이 된 측면이 강하다 이제는 우리의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 보다는 멀리보고 크게 이루는 도전적인 일에 젊음을 투자하고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삶의 보람과 가치에 대하여 더 많이 이야기하고 교육하여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갖는 젊은이들이 더욱 많아져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다면 이공계 기피현상은 자연스레 이공계 선호현상으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
칼럼
남도일보
2006.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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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월드컵과 광주선언 65억 지구촌의 축제 월드컵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지난주 광주에선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월드컵은 누구나 인정하듯 국가와 인종, 그리고 종교를 막론하고 거의 유일하게 세계화 된 게임이다. 그 월드컵이 전 인류를 매료시키고 있을 때 한국의 지방도시에서 평화와 인권을 향한 발걸음이 묵묵히 내디뎌졌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 채택된 ‘광주선언’은 위태로운 국제 정세 속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전 세계인들이 맡아야 할 임무를 담아냈다.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경쟁이며 다른 민족과 국가들 사이의 교류를 촉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월드컵은 이미 그 임무를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이번 광주정상회의에 서면으로 참여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월드컵의 보편적 인류애를 극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신문의 특별기고를 통해 “유엔은 월드컵이 부럽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대여섯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월드컵에선 누구나 자국 팀을 알고 그들이 무엇을 해왔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누가 득점했는지, 누가 실축했는지가 명백하다는 것이다. 아난 총장은 마찬가지로 국가간의 경쟁도 그런 식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이나 영아사망률 낮추기 등에서 서로 이기려고 노력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월드컵처럼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업적을 자랑하고 성취를 평가하면 얼마나 바람직하겠느냐는 부러움이다. 또 하나는 월드컵을 통해 발현되는 열정을 들었다. 자국 선수가 골을 넣으면 팬들은 모두 거기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는 것이다. 상대팀과의 일전을 앞두고 모든 국민들이 전략을 논하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아난 총장은 이를 말수 없던 십대들도 갑자기 달변가가 돼 분석력을 발휘하는 현상이라고 지목했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온실가스를 예방하는데 어느 나라가 더 앞장서는지 에이즈 예방을 위해 누가 더 노력하는지 등도 대화의 주제가 돼야 한다며 부러움을 나타냈다. 그런 그가 광주정상회의에 이런 내용을 보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여러분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특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신 분들입니다. 세계인의 의식을 고취시키고, 정치적인 의지를 강건하게 하는 한편, 가치있는 통찰력과 여러분의 소중한 경험에 근거한 의미있는 올바른 방향들을 제시해주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있어 매우 의미있는 장소입니다. 이 광주에서 열리는 오늘 회의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 세계의 평화가 오직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 및 발전을 통해서만이 성취될 수 있다는 저의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난 총장이 월드컵과 광주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명하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 존중에 대해서도 서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전 세계와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서도 모두가 달변가가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애정을 갖자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의미가 있는’ 광주가 그 무대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정상회의 주최측은 그 실천방안을 고민하고 후속조치를 강구해야만 한다. 광주선언의 의미인 비폭력, 화해, 평화의 정신과 사회적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빈곤 퇴치 등 국제적 이슈를 풀어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또 남북한 화해협력과 전쟁상태 종식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그려내지 못한다면 이번 회의는 일회성 행사에 불과할 뿐이다. 월드컵 게임에선 골(goal)이 궁극의 목표다. 광주정상회의도 정해진 목표(goal)를 실천할 수있어야 한다. 그래서 광주선언 이후 어떤 가시적인 행보가 나올지가 더 주목된다.
칼럼
최혁
2006.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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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글로벌 경쟁력과 ‘한국적 가치’ 한강희 교수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과 흑인계 미국인으로서 두 가지 문화의 장점을 취할 수 있었다. 이는 행운이었고 축복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내가 한국인의 혈통을 갖고 태어난 게 큰 행운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미국 프로 풋볼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피츠버그 스틸러스 소속 한국계 선수 하인스 워드는 어머니가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던 희생정신, 겸손, 자긍심, 사랑 등을 ‘한국적 가치’라 호명했다. 그는 이런 덕목을 통해 자신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아들에게도 이 가치가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즈음 화두가 되기에 충분한 ‘한국적 가치’란 70~80년대에 등장한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가치를 극대화한 형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연하자면 예의 20여년에 걸쳐 독자적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네 마리 용’의 탄생의 원인을 인치와 인정(仁政)사상에 바탕을 둔 아시아의 뿌리 깊은 유교적 정서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한국적 가치는 글로벌 시대를 사는 한민족의 경쟁력으로 자리할 수 있는 정신적 상품에 해당한다. 그 정신적 가치는 우리 문화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그 선두에 문화상품으로서 영화와 드라마가 있다. 한국적 감수성을 탁월하게 영상화 한 ‘대장금’과 ‘왕의 남자’, 이산과 분단의 아픔과 슬픔을 세계적 차원으로 승화한 ‘공동경비구역’, ‘쉬리’,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동막골’은 기존의 배급 시스템과 스타배우 기용, 장르의 공식을 뛰어넘는 흥행 성공작이었다. 열악한 우리 영화 관객 구조에서 1천만 명을 상회한 것은 경이에 가까운 기록이며,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는 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산과 분단이란 한국인들의 상처와 결핍이 팬터지물로 간주되는 ‘나니아 연대기’, ‘해리포터 시리즈’에 견줄만한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일은 이러한 성공의 배면에는 관객의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장인 정신, 즉 담론의 진정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흥행만을 위한 작품은 흥행과 반비례하며, 우리 문화의 진정성 구현과 정신적 가치 창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우리 축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캐치프레이즈화 한 ‘투혼(鬪魂)’ 역시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를 집약한 것이다. 이를 가리켜 태극전사 이영표 선수는 우리 선수만이 가진 어떤 기운(아우라)으로서 ‘조직적 집중력’이라 정의한 바 있다. 미셀위와 최경주, 이승엽과 박지성 선수도 한국적 가치를 선양하고 있는 사례이거니와 그들에게는 모두 은근과 끈기, 겸손과 양보, 목표를 향한 진정성, 즉 사랑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 아시아 제국의 많은 관료들이 독재정권에 항거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 건설에 주력한 인권교육의 현장으로서 광주를 찾고, 이미 고전이 된 새마을 운동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중국의 공무원들이 새삼스레 방한 여정에 오르는 일은 우리의 정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결과라 볼 수 있다. 한국적 가치를 형성한 요인으로는 정신적 지표 외에도 각종 문화유산, 풍속과 관습, 의식주 행태에서도 찾을 수 있다. 김치와 장류식품, 토속 음식과 민속주 등 먹거리 등속에서도 한국적 가치는 유감없이 발현되고 있다. 한편 아시아는 물론 세계 정상이 참여하는 국제회의를 상시 개최할 수 있고,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하게 된 것은 한국적 가치가 문명적으로 구현된 좋은 사례다. 우리의 감성구조가 인류보편의 심상으로 다가선 이상, 보다 치밀한 기획과 전략이 담긴 ‘한국발 신문화르네상스’가 다양한 형태로 점화하기를 기대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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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6·15의 광장과 군중 속의 고독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왕립 미술관이 있고 거기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유화가 있다. 이 그림은 그리스신화 가운데 호기심으로 태양 가까이 근접했다가 날개를 붙인 접착제인 초가 녹아 바다에 추락하여 익사했다는 소년 이카루스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이 그림은 태양에 대한 도전이 상징하는 서양 사상의 근원적 주제를 다룬 것으로 자연과 인간의 일치를 담은 16세기 작가 브뤼겔의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 그림이 시의 소재가 된 것은 영국의 큰 시인 W. H. 오든의 ‘미술관’이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서다. 이 그림은 73.5 x 112 의 작품으로 그 가운데 공간의 대부분은 큰 바다와 배들과 수평선 멀리 항해하는 호화선과 항구 가까운 들에서 밭갈이 하는 일상적 농부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이카루스의 추락은 한 구석에서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바다로 빠지는 두 다리가 전부다. 시인 오든은 작가 브뤼겔이 위대한 희생은 일반적인 관심과는 달리 한 구석에서 조용한 속에 발생한다는 것을 표현한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광주는 도시가 생성 된 이래 가장 큰 흥분과 감동적인 국제행사를 치르고 있다. 6·15 광주 평화선언을 위하여 대회 공동대표인 고르바초프를 비롯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일곱 사람의 수상자가 직접 참가하고 만데라, 코피 아난, 달라이 라마, 바웬사, 지미 카터 등 많은 다른 수상자 들이 영상 메시지를 보내 온 것으로 보도 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6·15 민족 대축전을 위하여 북에서 120여명의 대표가 서해 직항로를 통하여 광주공항으로 직접 들어왔고 그들이 5·18 국립 민주묘지를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3일 동안 갖가지 행사에 참여하고 그 축제를 위하여 도시 전역에서 며칠 동안 부대행사가 개최되면서 광주는 행사 기간 동안 온 도시가 하나가 되고 있다. 한편 월드컵은 또 월드컵대로 온 세계가 들끓고 있고 한국은 한국대로 한국 팀이 16강은 물론 2002년 4강의 신화를 다시 열망하며, 특히 광주가 그 4강의 현장이었음을 상기하면서 그 흥분이 다시 오기를 바라고 있다. 월드컵은 이미 스포츠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고 그 관심은 나라와 민족과 인종을 초월하여 세계가 하나가 되고 적이면서 적이 아닌 가운데 경쟁 속에 평화를 구가하고 있다. 세계가 하나가 되는 그 흥분과 일체감을 어떤 종교와 어떤 이념, 어떤 정치, 어떤 경제 활동, 어떤 전쟁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을까 생가하면 스포츠는 분명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창조 이상의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한 신문에 기고한 글이 흥미롭다. ‘유엔은 월드컵이 부럽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목표가 성취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라고 그는 말한다. 유엔 회원국이 191개 국임에 반하여 FIFA 회원국이 207개 국임을 상기시키면서 월드컵이 유엔보다 더 보편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를 6가지로 말하면서 그 열정이 부럽고 피나게 경쟁 하면서 살생이 없음이 부럽고, 모든 나라가 동등한 것이 부럽고, 상호 교류의 방법이 부럽고, 상대에 치명적 피해를 주지 않고 얻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부럽고, 월드컵이 공통된 인간성의 축복이어서 유엔이 할 수 없는 위대한 것을 이룩하고 있음이 부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벨 평화상 수상자회의, 6·15 민족대축전 그리고 월드컵 등 이 자랑스러운 행사의 한 중심에서 내가 어찌 다른 사람처럼 흥분되고 자랑스럽지 않으랴만은 그러나 고백이지만 이 흥분 속에서 나는 한없이 고독하다. 광장의 고독 혹은 군중 속에 고독 같은 것일 것이다. 이 고독이 한 구석에서 조용한 가운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이나 오든의 시 ‘미술관’과 같은 역사에 남을 시를 써서 오늘의 역사적 감동과 흥분을 적고 싶은 창조적 고독이기를 나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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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 시장님, 객석에서 자주 뵙죠-김선기 문화생활부장 지난 5월은 유난히 뜨거웠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임을 세삼 일깨워 준 달이었다. 5·31 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의 영광을 안은 승자들은 다음 달 초 일제히 취임식을 갖고 집무에 들어간다. 저마다 지역발전을 위해 나름대로의 정책 대안과 열정들을 갖고 있기에 그 어느때 보다 든든한 느낌이 든다. 이번 5·31선거 당선자들은 과거와는 달리 인물 중심으로 뽑혔다는 대체적인 평가여서 그들에게 거는 기대는 더욱 크다. 특히 재선에 성공한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도지사를 맞는 지역민들의 마음은 남다르다. 두 분은 정치적으로나 사회·도덕적으로, 모두 훌륭한 덕망을 겸비하고 있어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4년 임기를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시정(市政)과 도정(道政)을 이끌어 나간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톱니바퀴는 맞물려야 돌아가듯, 여기엔 반드시 지역민들의 관심과 성원, 그리고 채찍이 동반돼야 한다.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 만큼 문화가 중요하다는 말일 게다. 이 시점에서 두 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먼저 광주시의 경우 ‘5월 정신’과 ‘광주의 정체성’을 담아내기 위해 지난 95년 창립된 광주비엔날레라는 국제규모의 미술축제가 있고, 월드컵 사상 한국축구 4강 신화를 일궈냈던 월드컵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창립된 광주비엔날레는 올해 6회째를 맞는다. 그동안 크고작은 성과를 일궈냈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하지만 매 대회마다 자잘한 문제점들이 도출돼 지역민들의 냉소를 받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박 시장은 발전적인 차원에서 ‘광주비엔날레 진단팀’을 구성, 지난 1~5회 대회에서 발생됐던 각종 문제점들을 낱낱이 점검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등을 돌려버린 지역민들을 끌어안지 않고서는 광주비엔날레의 성공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월드컵 경기장의 활용 문제이다. 물론 광주시에서 다각적으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줄 안다. 천문학적인 시민 혈세를 들여 건립한 경기장을 빚장 걸어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면 이는 국제적인 웃음거리일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월드컵 기간이라 사람들이 북적거려 다행이다. 실례로, 일본 니가타 월드컵경기장의 경우는 시민들에게 완전 개방해 동네축구는 물론 지역민들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다. 이같은 외국의 사례를 눈여겨 볼 일아다. 박 지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남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암울한 시간들로 점철됐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똑바로 세우게 했던 정신적 발원은 바로 이러한 유·무형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가꾸고 보존하는 것은 도백으로서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명심하길 바란다. 양 시·도백이 ‘경제를 살리기’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다. 적극 공감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민들의 정신문화를 윤택하게 해주는 문화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돈이 있어야 비디오 한 편이라도 볼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 한다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총·칼이나 빵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지난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재삼, 양 시·도지사에게 당부하건대 문화예술을 정치·경제 논리의 틀에 꿰맞추지 말고, 지역민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 젖어드는 정책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의식 행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시·도지사의 권위있는 모습이 아니라, 공연장이나 영화관 객석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리더자를 지역민은 원하고 있다. /kimsg@
칼럼
남도일보
2006.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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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지자체 선거 결과를 되새기며 -강영태 온 국민의 관심속에 치러졌던 5·31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민심은 천심이라는 국민의 준엄한 목소리가 표출된 선거였다. 전국적으로는 한나라당의 압승 속에서 여당이 참패하였고, 우리지역에서는 그동안 꾸준히 지역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민주당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연임되었다. 이번 5·31 지방 선거에서 여당이 선거사상 참패를 기록한 가장 큰 원인은 경제실정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광주·전남지역 광역자치단체장의 재선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광주의 경우 박광태 시장은 경제 시장임을 자처하고 기업유치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지속적으로 구축하여 광주를 기존의 소비도시에서 생산도시로 탈바꿈시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실업난을 해소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점 등이 시민들에 큰 신뢰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전남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산업기반시설이 미약하여 기업유치에 어려움이 많은 곳이지만 박준영 전남지사가 많은 기업유치와 실현가능한 비전을 도민들에게 심어줌으로서 낙후전남을 희망의 전남으로 바꾼 것이 재선의 원인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광주·전남 광역단체장의 연임은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우리지역 경제발전 계획이 앞으로도 차질없이 진행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광주시에서 지역경제 양극화를 위해 추진중인 대·중소기업상생협의회나 광산업 육성정책 등 지역경제 발전정책이 앞으로도 더욱 심도있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전남도에서 추진중인 혁신도시 개발사업과 지역 특화산업 육성사업, J-프로젝트 등의 단계적인 경제개발 계획도 가속도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심은 먹고사는 기본적인 문제 해결이 정책의 최우선이 되어야 함을 웅변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이런 민심을 이번에 제대로 읽었다면 앞으로 남은 기간만이라도 전력을 쏟아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살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우리경제의 성장동력을 회복해야 되고 그것은 바로 기업활력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반기업정서가 강하고 기업가 정신이 위축돼서는 우리경제의 미래는 어둡다. 기업투자가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않는한 일자리 창출은 기대하기 어렵고, 내수 회복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국민들이 먹고사는 걱정을 하지않고 살 수 있으려면 먼저 기업이 우대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기업인이 애국자로 존경받는 사회가 되면 기업창업이 많아지고, 기업인들도 소명의식을 갖고 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광주시와 전남도도 최근 만연해 있는 반기업정서를 해소시켜 기업가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자긍심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전국 제일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지금은 전국 어디에 가도 ‘기업하기 좋은 고장’이란 문구가 쉽게 눈에 띌 만큼 기업 투자유치는 그 지역의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지역을 기업하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고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 현실성 있는 행정구현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민선 4기 출범과 함께 우리지역 기업을 돌아보는 시점에서 각종 중소기업 지원 시책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도 담보가 없어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게 경기도에서 실시하는 중소기업공제기금 이차보전 등은 눈여겨 볼만 하다. 또 단체수의계약 폐지로 판로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위해 시행중인 공공기관의 중소기업 제품 구매를 향상을 위한 공공구매제도에도 적극 동참해 이 지역 중소기업의 판로를 열어줘야 한다. 그리고 신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각종 창업촉진 방안과 우수한 인재양성 프로젝트 개발 등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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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군현운집(群賢雲集)의 땅’ 광주 최웅일 이번 주 광주가 群賢雲集(군현운집·여러 현인들이 구름처럼 모인다는 뜻)의 땅으로 변한다. 세계적인 인권·평화 운동가 23인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정상회의’가 드디어 막을 올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어진 사람을 현인(賢人)이라 일컫는다. 덕행의 뛰어남이 성인(聖人) 다음가는 사람이며 현자(賢者)라고도 불리운다. 세계적으로 군축(軍縮)이나 평화 증진에 현저히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 노벨평화상이고 보면 이 상의 수상자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현자로 불리워도 손색이 없다. 갈수록 테러와 분규, 인종과 성차별 등이 난무하고 있는 지구촌에서 그래도 평화와 인권의 희망을 싹틔우는 이들의 존재는 소중하기만 하다. 그런 그들이 무려 스무명 넘게 광주로 모여든다. 어쩌다 보니 월드컵도 겹치고 6·15 남북공동선언 6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행사도 동시 개최되는 바람에 주목의 강도가 다소 떨어지는 게 안타까울 정도다. 지방화시대에 접어들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나름대로 수없이 많은 국제행사를 치러왔고 또 치르고 있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 이같은 행사들은 흥행위주로 흘러왔다. 들인 돈만큼 대내외의 주목도 받고 많든 적든 수익도 고려하자면 대중성을 모른체 하기 힘들다. 따라서 학술회의나 세미나는 그만큼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 민주성지 광주에서 열리는 평화와 인권의 국제적 학술회의라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 싶다. 게다가 직접 참석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舊) 소련 대통령, 이란의 쉬린 에바디 여사 등 7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 엠네스티,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 등 7개의 단체들은 모두 그 존재 하나 하나가 한 국가보다도 역할이 크고 가치지향적이다. 축하서신이나 영상메시지로 간접 참여하는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 코피 아난 UN사무총장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만으로도 광주의 위상은 적잖게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이번 정상회의의 추진위원이기도 한 박경서 인권대사는 최근 노르웨이를 방문했다가 현지 사람들이 광주에 대해 의외로 높은 관심을 갖고 있어 놀랐다고 한다. 지난 월드컵 때 4강신화를 이룩한 대한민국을 그저 간신히 기억할 정도일 것으로 여겼는데 한국의 지방도시 광주까지 거론하고 나서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물론 노르웨이는 노벨평화상을 선정하는 나라다. 다른 노벨상이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 등에서 선정되는 것과 달리 평화상만큼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선정과 시상 권한을 갖고 있다. 이는 노벨상을 제정한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그런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광주가 이곳에서 주목받는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특히 평화상은 노벨상 내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기 때문에 세계적 파급효과도 만만치 않을 게 틀림없다. 지난해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도시 마케팅 측면에서 막대한 파급효과를 창출했다. 그러나 APEC는 정부가 주도한 행사다. 거기에 쏟아부은 물량이 광주시가 주도해온 정상회의와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쥐꼬리만큼 지원해주겠다는 정부의 제안을 시는 아예 일축해버렸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 효과나 홍보효과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광주라는 도시브랜드를 키우기엔 부족함이 없다. 지자체 스스로 해낸 게 이 정도라면 대견하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시민이 채워줘야 된다. 광주시도 단발성 행사에 그쳐서는 안된다. 포스트 정상회의 사업을 하나씩 가시화시켜 나가야 된다. 높아진 광주의 브랜드 가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후속조치를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옛말에 현인은 복을 내리고 악인은 재앙을 만나게 한다고 했다. 구름처럼 모인 세계적 현인들이 광주의 앞날에 어떤 계기를 마련해줄지 기대하는 바가 크다.
칼럼
최혁
2006.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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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월드컵 축구를 즐기는 최상의 방법-한강희 교수 2006년 6월 현재, 한국에서 정치와 축구만큼은 웬만하면 전문가 축에 속한다. 어느 당의 인기가 어떻고, 누가 대권 고지에 유리한가, 향후 어떻게 이합집산을 할 것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상당한 정도의 논리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정객들의 행태는 ‘참다운 일꾼’과는 무관해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제도적 차원의 축제라고 불리는 선거는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신명나는 한 판 잔치가 아니라 선거 당사자들끼리 치고받는 난장판이 되기 일쑤다.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와 낙선자에 바라건대 선거는 마무리가 아니라 정책 실행의 심판대라는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축구 역시 2002 월드컵 이후 국민 대다수가 전문가가 되었다. 월드컵을 기점으로 우리 선수들이 세계 무대인 내로라하는 유럽 명문에서 활약하고 있다. 최근의 분위기는 A매치 경기를 외면하기라도 하면 한국인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축구는 국민이 열망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우리 축구는 80년대엔 프로야구 붐에 밀려 잠시 비켜나기도 했지만 2002년을 기점으로 과거의 인기를 보란 듯이 복권시켰다. 아주 무관심한 경우를 제외하면 젊은 여성들의 경우도 오프사이드 여부, 3-3-4와 3-4-3배치, 옐로카드와 레드카드의 구분 등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하튼 축구는 정치와는 달리 국민적 관심과 기대에 비교적 성실히 부응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도 ‘한국민의 축구에 대한 전문성’을 공인시켜 주고 있다. 언제나 기대와 열망을 현실로 확인한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에 속한다. 다시 축구의 시즌이 도래했다. 4년 후에도, 이후에도 4년마다 꼭 같은 열병이 지속될 것이다. 이렇듯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한국 축구에 대해 관전자인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즐겁고 행복한, 신명나는 마당’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마음의 조정이 필요하다. 축구와 한국 스포츠, 세계를 빛내고 있는 유명 스포츠 스타들에 대한 골수팬이라면 적어도 고도의 마인드컨트롤이 수반돼야 한다. 마인드빌딩을 구축한 관전자만이 진정한 의미를 가진 팬이나 매니아로서의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축구, 최소한 4강과 8강에 오르기 위한 축구에 마음의 전부를 걸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 한 외신이 “한국 축구는 오로지 월드컵에만 올인하는 축구”라고 한 지적은 나름대로 곱씹을 만하다. 한편 이천수 선수는 “한국 축구가 아직 원정 경기에서 단 1승을 올리지 못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은 바 있다. 우리의 일천한 프로축구 역사를 감안해야 한다. 지난 2002 월드컵에서 이뤄낸 4강 기적은 홈그라운드, 국민적 응원 열기, 거장 히딩크라는 삼위일체가 빚어낸 신화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17차례의 월드컵에서 브라질, 이탈리아, 서독만이 3회 이상의 우승을 차지했을 따름이다. 1998년 우승국인 프랑스는 2002년 예선에서 좌절했으며, 이번에는 지난 대회 4강에 오른 터키가 지역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지난 대회에서 한국이 거함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무찌른 것은 축구공이 여전히 둥글고, 출전 선수가 11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축구의 묘미는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변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팬이라면 한국과 겨루지 않는 팀들끼리의 경기도 관전하면서 우리의 축구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금도를 지녀야 한다. 그렇다고 4강과 8강이 어려우니 아예 편한 마음으로 보자는 얘기는 아니다. 꿈과 희망, 응원과 성원을 아낌없이 보내 4강 신화 재현을 기원하되 지나친 낙담과 흥분은 하지 말자는 얘기다. 지구인의 축제인 월드컵을 그 자체로 즐기다 보면 어느 사이 4강이 저벅저벅 걸어올지도 모를 일이다. 월드컵을 즐기는 최상의 방법은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축구 경기 자체를 좋아하고, 우리 선수들을 좋아하고, 이를 지구촌 축제로서 즐기는 데서 찾아야 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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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대순의 세상보기] 고르바초프가 후회를 한다면 아직 레닌그라드가 성 페테르부크라는 옛날 이름을 회복하기 전 91년 여름 나는 러시아를 여행한 일이 있다. 원체 선입관이 뿌리 깊은 나라라 대도시의 건물은 물론 지나는 거리나 차창 밖으로 보는 주변의 풍경 등 나라가 아직 검은 빛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인상은 아름다운 도시 레닌그라드에서도 가시지 않았다. 유숙한 호텔 근처에 다행히 국립 레닌그라드대학이 있어 혼자서 정원으로 아침 산책을 가게 되었는데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어디서 송아지만한 검은 개 한 마리가 나를 향하여 돌진하여 왔다. 겁에 질려 서 있는데 그 뒤로 주인인 듯한 한 중년 남자가 다가서더니 영어로 심문하듯 몇 마디 묻고 지나갔다. 여름 아침에 그는 검은 가죽 코트를 입고 있었다. 91년이면 80년대 후반 개혁의 이름인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로이카가 성숙한 시기였고 개방을 뜻하는 글라스노스트가 일상화하던 시기다. 그 앞 해 나는 동베르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아직 공식적인 개방은 아니었지만 통행은 자유로웠고 중심지인 린덴바우 거리며 그 한 어느 건물 벽에 앉아 있는 엥겔스 좌상이 겁을 주기는 커녕 기념품처럼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너진 베르린 장벽의 시멘트 조각을 기념품으로 사들고 나오면서 세계가 상상 이상으로 변하고 있다는 실감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모두 당시 소련 수상이었던 고르바초프의 위대한 개혁과 개방 정책의 산물이다. 그의 개혁과 개방은 그가 말했듯 1917년 러시아 혁명과 맞먹는 사건이다. 그의 페레스트로이카는 노벨평화상 가지고는 그 가치를 대표할 수 없다. 그가 최근 중국의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련 해체를 후회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갑작스러운 민주화로 국가가 더 혼란에 빠져 결과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중국에게도 민주화에 신중을 기하도록 충고하면서 ‘내가 중국의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민주화와 관련된 어떤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면서 ‘민주화를 용납하면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 되었다. 나아가 1989년 등소평의 천안문 사태 유혈 진압에 대하여 등소평을 칭찬함으로서 자유세계가 비난하는 중국의 민중 탄압을 비호하고 있다. 그가 소련 해체를 후회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소련의 민주적 개혁을 후회한 것이고, 소련의 전체주의적 체재의 견지를 통하여 세계적인 냉전체제 유지를 선호한 것이 되고, 동 유럽 각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지원을 후회하는 것이 되고, 독일 통일 묵과를 후회한 것이 된다. 이것은 다시 그를 이은 엘친에 대한 비판이 되고 오늘 러시아의 꿈을 재현시키고자 하는 푸틴의 강력한 지도력을 성원한 것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노벨 평화상을 거부한 것이 되고 궁극적으로 오늘의 세계와 역사를 재인식하는 것이 된다. 앞으로 있을 6·15 광주 노벨평화상 수상자회의 참석도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 인터뷰 보도에는 없었지만은 소련이 해체되지 않고 미국과의 냉전 상태가 유지되었다면 오늘 미국의 독주에서 보이는 사건은 없었을 것이고 미국이 그렇게 유아독존으로 패권을 행사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전쟁과 같은 억지는 없었을 것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것은 중국에 대한 지지이면서 미국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나아가 미국 중심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것은 다시 민주주의가 절대적 가치라는 입장에 대한 회의이기도 하고 미래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지배적 정치 체제일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고 세계와 역사 그리고 인간에게 민주주의가 가장 적절하다는 사고방식에 대한 이의제기로 보인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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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파일]갈등과 반목부터 풀어라- 오치남 사회부장 ocn@ 5·31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5일 지역간 갈등과 반목을 없애자고 호소했다. 박 지사는 이날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동-서간, 시-군간, 마을간 갈등을 모두 털고 창조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합의해서 결정된 것을 수용할 줄 아는 성숙하고 민주적인 자세를 가져야 화합과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거 기간동안 전남도내 22개 시·군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갈등과 반목이 너무 심하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전형준 화순군수 당선자도 당선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를 계기로 지역간, 계층간 분열된 민심을 하나로 통합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갈등으로 나누어진 민심을 통합하고 하나의 화순을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연수 진도군수 당선자도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각종 유언비어와 고소·고발로 몸살을 앓았다”며 “읍·면별, 성씨별, 계층별로 지지후보를 달리하면서 가족은 물론 친구, 이웃끼리도 ‘보이지 않는 적’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공직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자치단체의 경우 공무원들의 선거개입과 줄서기가 극성을 부리면서 벌써부터 살생부가 나도는 등 심각한 후유증이 예고되고 있다. 지방선거가 남긴 가장 큰 생채기다.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특히 혈연과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히고 설킨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더욱 더 심각한 실정이다. 선거로 인한 갈등과 반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민선 4기 출범이후에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광주·전남 기초자치단체장의 물갈이가 대폭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선 광주 5개 구 가운데 3개 구가 새로운 단체장을 맞는다. 전남도 22개 시·군 가운데 12곳의 단체장이 새로 취임할 예정이다. 광주·전남 27개 기초자치단체의 56%인 15곳의 단체장 얼굴이 바뀐 셈이다. 일부에선 살생부가 나도는 등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지역사회도 ‘내편, 네편’으로 갈라져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직과 지역사회가 요동치면 지역 발전도, 경제활성화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당선된 단체장이 나서야 한다.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는 데 온몸을 던져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지지했던 주민들까지 모두 감싸는 포용력을 보여줘야 한다. ‘내편, 네편’을 떠나 지역 원로들에게 머리숙여 화합의 길에 앞장서 줄 것을 간청해야 한다. 이른바 ‘아군’도 주민이고 ‘적군’도 같은 주민이기 때문이다. 당선자들이 조직 내부 갈등도 스스로 풀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상대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했던 공직자들에게 피해를 주면 절대 안된다. 이들을 용서하고 격려하는 아량을 보여 줄 때 공직사회는 빨리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공직자에게 온정을 베풀라는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선거에 깊숙이 개입했거나 줄서기만 해온 공직자는 그에 상응한 벌을 내려야 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단체장의 직권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선거 개입을 막기 위해서다. 반대로 숨어서 자신을 도운 공무원에게도 어떠한 특혜나 이익을 줘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공직사회의 선거개입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 위해선 당선자들이 ‘주인이 아닌 머슴’으로 일한다는 초심(初心)을 지키면 된다. 단체장의 사심(私心)이 작용하면 ‘포용과 아량의 미학’을 보여줄 수 없다. 지역 주민들은 선거과정에서 갈등과 반목 등으로 갈라진 지역과 공직사회를 추스르는 단체장이 되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단체장은 4년후 성공한 ‘고을 원님’으로 남게 될 것이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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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들이 있었기에 6월이 행복하다-유선영 중위 맑고 푸르기만 한 6월의 하늘이건만, 그 하늘 속에 우리의 마음을 왠지 숙연케 하는 그들이 있다.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님들의 넋을 기리는 현충일과 동족상잔의 비극 6·25, 오랜 시간 고통의 역사를 품고 온 산하 속에는 아직도 당시의 상흔이 남아 있다. 이 상흔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나라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현충일,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전몰장병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며, 그 유가족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날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위훈을 기리고 추모와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최소한의 보답을 위해 각자는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을까. 언젠가 TV 방송을 통해 ‘당신의 잔고는 얼마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다. 순간 아직은 보잘 것 없는 제 은행의 잔고를 떠올렸지만, 질문인 즉,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각자 ‘능력의 잔고’를 묻는 질문이었다. 흔히 보통사람의 경우, 평생 자신의 능력에 5~10%를 쓰고,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과 같은 천재들은 15% 정도의 능력을 평생에 걸쳐 쓴다고 하지만,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그들의 능력을 백분 활용하고 간 멋진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 ‘신께서 주신 내 능력의 100%를 다 쓰고 가니, 내가 죽거든 장송곡 대신 행진곡을 틀어라!’ 라고 이야기 했다는 이화여대 초대총장인 고 김활란 여사, ‘그는 생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는 메시지가 담긴 전 프랑스 대통령인 퐁피두의 묘비.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들로 하여금 고개가 절로 숙여지게 한다. 생활 속에서 여러분의 역할도 마찬가지이다. 각자에게 맡겨진 제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는 주어진 능력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달려있다. 각자 재능의 장르와 빛깔은 다를 수 있으나, 능력의 ‘정도’ 는 비슷하다. 50보 100보이다. 나부터 네가 속한 부대와 전우인 부대원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있는지, 오히려 누를 끼치는 근심의 원천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보려한다. 그 곳이 어디든, 각자 여러분들의 능력의 창고를 열고, 잔뜩 먼지 묻은 ‘가엾은 내 능력’에 바깥바람을 쐬어주는 것이야 말로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에 최소한의 보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나의 잔고는 얼마나 남아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우리들의 그곳에서 모두의 재능이 풀 가동되도록 실천하는 6월이 되었으면 한다. 다시 한 번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옷깃을 여미는 경건한 마음으로 선열들이 보여준 위국희생정신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자. 한편 숭고한 애국정신을 본받아 각자의 맡은 바 그 자리에서 한국의 이름을 빛낼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합치고 의지를 모으자. 그래서 6월 한 달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작게는 내 가족의 생명과 안전을, 크게는 나라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귀한 목숨을 바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많은 이름 없는 국가유공자를 기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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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지방의 문화예술과 연극-차영호 회장 지방문화예술의 활성화와 그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서, 연극이야 말로 가장 큰 추진력과 상징적 역할까지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각별한 역량의 예술임을 생각할 때 연극은 그 예술 자체의 본질이 곧 집단체적 공동의 예술이며 연기자와 관객 모두가 함께 공감함으로서만 이루어지는 통합 예술이다. 이러한 의지속에서 오늘의 지방연극 단체들의 실질적 성장과 그 공연의 활성화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지역의 문화예술은 한나라 문화예술의 뿌리로서 창조적 원동력 임에도 불구하고 개화기 이후로는 줄곧 서울 중심의 서양 문화예술 모방에 치중한 나머지 지방은 볼모로 방치되어 온 상태였다. 오늘날까지 문화예술은 서울을 중심으로 구성된 광활한 시골이라는 느낌을 버릴 수 없는것도 사실이다. 이제 지방화 시대에 걸맞는 지방문화육성책으로 인하여 우리의 문화도 서울 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며 각 지역의 특색있는 문화가 한데모여 건실한 민주문화의 큰 강을 이루고 그 문화는 변두리 문화에서 탈피하여 직접 민족문화의 발전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지방화 시대의 발전은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풍요만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다.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를 개발유지하면서 삶의 질이 보강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지역의 정서와 생활감정을 근간으로 한 지역의 문화는 개성을 바탕으로 형성되며 결코 획일적이지 않다. 또 절대적 가치기준에 평가 될 수도 없다. 그래서 지역연극예술의 의의가 사뭇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광주의 연극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방연극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도에서 적극적인 후원이 있어야겠고 관의 뒷받침 없이 민간단체만 가지고는 안 될 것이며 시립극단 등을 만들어 적극성을 띠어 연극 인구를 늘려가고 연극에 대한 인식을 높여가야한다. 이처럼 연극인은 연극인대로 화합하고 노력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관에서는 관대로 연극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을 때, 지방연극의 활성화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리라 생각된다. 우리 지역의 극단들도 40여 년의 역사 속에서 20년 가까이 된 극단들이 6개이며 30년이 넘는 극단도 2개나 된다. 그 극단들은 100여 작품 이상씩을 공연하고 전국연극제에서 2회의 대통령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전국연극제에서 수상한 저력이 있는 극단들이고 140여명의 연기자가 연극에만 몰두하고 있다. 또한 1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 지역 대학의 연극영화과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하여 중앙과 지방의 극단 및 각 예술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문화는 문화예술회관에나 있고 수십 억 원을 퍼붓는 요란한 행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이 숨 쉬고 사는 뒷골목과 신세대가 넘치는 충장로 거리에도, 갈 곳 없는 노인들의 아지트 광주공원에도 고루 있어야 한다. 진정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다. ‘우리에게 문화는 있는가?’ 온 시민이 함께 나와 춤추고 노래 부르며 하나가 되어 떠들썩하게 놀고 즐기는 유럽이나 문화선진국의 전통축제들은 말 그대로 하나의 축제다. 그들은 그 축제를 통해 전통의 맥을 잇고 시민적 동질성을 확인한다. 그러니 지역 사회 갈등이란 있을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신세대들은 젊음을 발산할 해방공간이 없으니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된 노인들은 앉을 자리 조차 마땅찮은 시멘트 덮인 공원을 서성대고 있는것 아닌가. 고급 문화 향유 욕구 충족과 더불어 140만의 시민들에게 찾아가서 보여줄 것이란 연극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광주의 관립극단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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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을 바라보며] 민주당의 술잔이 넘치고 있다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이름 그대로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다.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는 까닭에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하라는 상징적 의미도 지녔다. 과음을 하지 말라는 뜻도 담고 있어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린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었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실학자 하백원(1781∼1844)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하백원은 바로 이 지역인 화순에서 태어나 30여년간 실학 연구에 몸을 바친 실학자이자 과학자였다. 도공 우명옥은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에서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알려졌다. 유명해진 우명옥은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와 계영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 후 이 술잔을 조선시대 의주의 거상 임상옥(林尙沃)이 소유하게 되는데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작가 최인호가 쓴 ‘상도(商道)’에는 이와 관련된 얘기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분에 넘치는 지지를 받았다고 보여진다. 특히 이 지역 상황만 놓고 볼 때 민주당은 그야말로 망외(望外)의 수확을 거뒀다. 불과 2년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지역구 의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뒤 교섭단체도 구성못할 정도로 처절하게 몰락했던 민주당이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들은 당당하게 호남의 제 1당으로 복귀하는 쾌거를 이뤘다. 풍찬노숙(風餐露宿)과 와신상담(臥薪嘗膽) 2년만에 그들은 다시 근거지를 확보한 셈이 됐다. 그러나 민주당의 승리는 과연 그들이 응당 차지해야할 당연한 몫일까. 그들이 지난 2년간 지역민들로부터 그런 보답을 받을만한 처신을 한 게 맞느냐는 것이다. 아직도 구태를 못벗고 사과상자에 든 공천헌금이나 받았던 그들이다. 그래놓고도 당지도부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지도 못했던 그들이다. 민심이 열린우리당을 철저히 외면해가고 있음에도 일부 지역에선 제대로 된 인물을 공천하지 못해 유권자들의 붓대롱을 한없이 주저하게 만들었던 죄과도 결코 가볍지가 않다. 오죽하면 당 대표 지역구 두 군데 모두에서 단체장 후보들이 고배를 마셨겠는가. 그토록 반(反)열린우리당 정서가 만연돼있던 절호의 기회를 맞고도 잔존해있는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패배를 자초했던 원인이 어디있는지를 반성하는 기미는 그 어디에도 없다. 엄밀히 따져 민주당이 열린우리당 대안세력으로서의 자격과 규모를 지녔다고 보고 그들에게 표를 준 지역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자신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회창 후보를 피하다보니 지지하게 됐을 거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민주당에 그대로 적용이 된다. 그들이 좋거나 적합해서가 아니라 열린우리당을 더 이상 믿지 못하고 한나라당이나 민노당의 손은 들어줄 수가 없으니 민주당을 울며 겨자먹기로 고른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선거후 취해야할 자세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개혁하고 변화시키며 민심을 수용할 시스템을 갖춰 나가기 위해 겸허히 반성부터 했어야 마땅하다. 감히 민주당發 정계개편부터 입에 올리고 나설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축배를 들어올리는 대신에 계영배를 곁에 두고 민심의 폭풍에 두려움을 느꼈어야만 했다. 2년전 잔이 넘치게 술을 받은 열린우리당이 그리고 그 보다도 앞서 분에 넘치게 대접을 받았던 옛 민주당이 어떤 행로를 걸었는지 유념하고 또 유념할 일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민주당이 받은 잔에는 넘침을 경계하는 슬기가 깃들어있지 않아 보여 씁쓸하기만 하다.
칼럼
최혁
2006.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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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시론] 언제나 문제는 ‘스토리텔링’이다-한강희 교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수많은 이야기 속에 둘러싸여 있다.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쓰면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서사의 틀거리를 기반으로 하는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야기는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흡인하는 매력이 있다. 어떤 이가 태어난 근거를 전생과 해몽으로 풀어내고, 죽을 때엔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흥부가 박을 타서 부자가 되거나, 춘향이가 치도곤을 맞으며 십장가를 불러 대는 것도 스토리텔링에 해당한다. 삼성그룹을 일류로 이끈 이병철과 현대의 신화를 일군 정주영의 입지전적 인생유전도, 특정 연예인의 비하인드 스토리인 X파일도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스토리텔링이란 원래 문학에서 나온 용어로 조리 있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서사라는 의장을 입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승-전-결, 초장-중장-종장, 발단-전개-갈등-파국-결말 등 일정한 줄거리에 재미와 정보, 윤기 나는 삶의 지혜를 얹어놓으면 그만이다. 최근 스토리텔링이 기업의 마케팅에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마케팅에서 상품을 시장에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상품이 소비자와 어떠한 연관을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스토리가 개입된 광고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개입된 경직한 분위기를 흥미 있는 이야기 구조로 풀게 되면 효과가 배가된다는 논리다. 현명한 비즈니스맨은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비즈니스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이를 비즈니스에 연결시킨다. 스토리텔링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문제에 쉽게 접근하는 길을 터주기 위한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에 해당한다. 오늘의 소비자는 자신의 꿈과 감성을 만족시켜 주는 이야기가 담긴 상품을 선호한다. 다양한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품질과 가격만으로는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없는 시대에 소비자는 상품 그 자체의 완성도를 사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얽힌 꿈과 감성의 이야기까지를 산다.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가장 큰 요인은 해박한 지식이 아니라 감수성이 담긴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사들은 스토리텔링을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광고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은 문학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마케팅에 도입되는 등 특정 영역에 군림하는 이단자가 아니다. 여느 부문에도 대입할 만한 효율적인 무기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왜소하고 초라한 우리의 정치문화를 일신시킬 수 있는 장치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 이번 지방선거에 도입된 매니페스토 운동(참공약 선택하기)의 방법론은 스토리텔링의 정치적 변용에 해당한다. 기존의 추상적이고 실천불가능한 정치행태를 구체적인 정책과 비전이 담긴 공약, 재원마련, 절차 수행, 연한 설정, 평가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해당 지역의 현안을 논리적으로 설계해 지역민에 설득력 있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지향적인 스토리텔링이라 할 만하다. 이제 우리 정치와 행정도 잔뜩 권위만 실린 기존의 일방적 의사표현을 걷어내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양방향의 스토리를 만들어 다가서야 한다. 단순한 마케팅보다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공략하는 효율적인 스토리텔링은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단계의 청신호에 해당한다. 우리 시대를 지혜롭게 살 수 있는 키워드는 이야기를 잘 만들어 재미있게 전달해 주는 이야기꾼적 기질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무엇을 얼마만큼 많이 진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획과 전략이 담긴 스토리텔링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은 분명히 독자뿐만 아니라 지역현안 해결을 기대하는 유권자, 감성의 정보소비자를 공략하기에 안성맞춤인 우리 시대 으뜸의 화두다.
칼럼
남도일보
2006.06.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