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 통일 ‘천년 영웅’…忠의 상징 ‘신숭겸’ 후예전남 해남읍 금강산과 만대산에서 이어지는 오봉산 자락에는 해리마을이 있다. 1천1백년 전 대구 공산 전투에서 견훤군에 포위된 왕건을 대신해 장렬히 싸우다 순절한 충절 명신 신숭겸 장군의 후손들이 터잡아 11대를 잇고 있는 옛 진관마을이다. 고려 이전에 축성됐다고 추정되는 금강산성 아래서 선조가 남긴 충절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해남 평산신씨 문희공파 백은공 종가를 찾아 천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왕건 대신 순절한 명장을 시조로평산신씨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877~927, 시호는
조선 화단 역사 이끈 선구자…선비화가 가문전통시대부터 남해바다 간척으로 기름진 옥토 들판을 조성해 풍요로운 해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됐던 해남 현산 백포마을에는 유서 깊은 고택이 있다. 실학을 연구했던 학자 선비이며 조선 화단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화가가 조성한 별서 고택인 해남 공재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232호)이 그곳이다. 나라의 보물을 여럿 보존하며 선조가 남긴 정신을 계승하는데 힘쓰고 있는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윤덕후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윤존부 시조, 윤광전 중시조해남윤씨는 고려 문종 때 사람 윤존부를 시
문장가·청백리·공신 배출한 절의 명가광주 서구 백마산 자락에는 서창들판과 영산강을 앞에 둔 절골마을이 있다. 청백리 박상 선생이 낳고 자라 현재에 이르는 전통마을 박씨 집성촌이다. 기묘명현, 명재상, 왜란 의병 충신들을 배출한 가문의 전통이 현대 시문학의 대표시인 용아 박용철에 이어졌다. 절골마을에서 인근 소촌동, 송정리 등에 5백여년을 세거하며 선조가 물려준 문학애호와 절의정신을 지키며 번성한 충주박씨 문간공 종중과 종가의 내력을 알아본다.◇고려 충절 지킨 찬성공 박지흥 입향조충주박씨는 고려 부정 박영을 1세조 관조로 모신다. 그
독실한 형제 우애…학당 열어 인재 키운 가문장흥 부산면 만수산 자락에는 금장마을이 있다. 황새가 숨어 있는 명당이라는 풍수를 따라 마을이름이 금장인 이 마을은 고인돌 선사 유적이 보전돼 오랜 마을 역사를 짐작할 수 있지만 1600년대 인천이씨 선조가 장흥에서 입향함으로써 명촌이 됐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400여년을 세거하며 형제간에 우애하며 학덕을 쌓고 풍속을 교화시켰던 장흥 인천이씨 공도공파 독우재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알아본다.◇가락국 왕손 당 황제 성씨 받아인천이씨는 고려조 상서좌복야에 추증된 이허겸을 시조로 모신다.
고려 충신·조선 효자…빛나는 충효 가문우리나라 세번째로 큰 섬 진도에는 호랑이 지형에 자리한 호구마을이 있다. 고려에 절의지킨 충의지사가 입향해 왜적을 격퇴하고 충의 고장으로서 진도의 위상을 높였으며 구빈구휼과 수리관개시설 마련, 교육과 교통망 확충 등 주민 삶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을 배출한 가문이 대대로 세거하고 있는 마을이다. 호구마을에서 선조의 충효 행적 계승에 힘쓰고 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시중공파 정언공후 조병수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대대로 평장사 배출한 고려 명문창녕조씨는 신라 태사 조계룡을 시조로 고
명촌 은거한 학자 후손…문집·한옥 한류 보존전남 나주 봉황산 자락에는 지석천이 흐르는 나주평야를 바라보고 전통한옥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는 도래마을이 있다. 기묘사화의 화를 피해 입향한 선비의 후손들은 대대로 학문에 전념했다. 구한말 격동의 시기에 유학의 학맥을 잇기 위해 학문하고 교유하며 기록을 남겼던 선비의 절개를 느낄 수 있는 고택 문화재들이 즐비한 마을이다. 이곳에서 세거하며 500여년을 지켜온 풍산홍씨(豊山洪氏) 창애공파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알아본다.◇시문 이름난 문장가 홍간풍산홍씨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장원급제
진법 용병술로 왜군 격퇴…선비 의병장 가문순천만국가정원이 있는 전남 순천 도사동에는 해룡창(사비포, 조양포) 조창이 있었던 해룡산이 있다. 견훤의 사위 박영규가 왕건의 고려 개국에 참여해 그의 세 딸이 태조 18비, 정종 문성왕후·문공왕후가 되면서 위상이 높았던 승주목의 요충지로서 방어를 위해 축성한 해룡산성(홍내산성)의 유허가 남아있다. 임진·정유 전란에는 의병군을 이끌고 용병술과 병법으로 호남을 공략하려는 왜군의 서진을 격퇴하고 북상을 방어했으며, 종전 후엔 선비다운 삶으로 돌아가 학덕을 쌓았던 의병장 문위세의 후손들이 세거하는
청백리 정신 계승한 대학자 가문장성 진원 불태산 자락 고산마을에는 고산서원이 있다. 조선 후기 대학자 기정진이 담대헌이라는 정사를 지어 학문을 강론하던 곳에 사당과 제향시설, 강학공간과 장판각 등을 갖춘 서원으로 건축돼 노사선생전집 목판 862매 등을 보존하고 있다.(장성 고산서원 노사선생전집 및 답문류편목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14호) 호남 인재를 배출한 학문의 전당이었던 유서 깊은 서원을 보존하며 학덕을 계승하고 있는 장성 행주기씨(幸州奇氏) 참판공파 노사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마한 왕자 기우성 시조행주기씨는
변함없는 대나무 절개…학덕 높은 선비 가문울창한 수목과 기암괴석이 수려한 해남의 진산 금강산 아래 부춘동에는 해남을 대표하는 ‘해남6현’을 추모하는 해촌서원이 있다. 왜적 침략으로 읍성이 해남과 들판에 급수를 제공하는 저수지인 금강제 앞에 들어서 해남 인재의 산실이 됐던 서원이다. 이 곳에 부춘정사(학당)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대를 이어 세거했던 무안박씨(務安朴氏) 해남파 취죽헌공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박진승 식읍 받아 무안 관향무안박씨는 신라 경명왕 6째아들 완산대군 박언화의 후손인 박진승을 시조로 모신다. 그는
국난엔 의롭게 순국...지조 높은 선비 가문지석천이 흐르는 전남 화순 이양의 청영마을에는 고결한 선비정신을 지키며 평화롭게 학덕을 쌓아온 양씨 가문 후손들이 세거한다. 비록 벼슬에 나가지 않고 가학을 이어 학문에 전념할지라도 다가올 왜적의 침략 전쟁을 준비하고 국가 누란의 위기가 다가오자 목숨을 던져 나라를 지켰던 구국지사들을 배출한 가문이다. 화순 제주양씨(濟州梁氏) 참봉공파 양응필 종가를 찾아 지조 높은 선비로 살아온 가문의 내력을 살펴 본다.◇고려 유격장군 양보숭 중조제주양씨는 탐라국을 개창한 양을나(良乙那)를 시조로 모신다.
신무기 개발로 나라 지킨 명장 가문전남 고흥만 비봉산 자락에는 일제가 그 후손을 찾아 보복할 정도로 치명적인 군비개발에 전공을 세운 명장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안동마을이 있다. 1555년 을미왜변 이후로 수많은 침략을 격퇴한 해전의 명장이며 전라, 경상, 충청의 수사를 두루 역임하고 수군절도사 이순신의 조방장으로 파견된 판옥선 제작의 주역이 정걸장군이다. 절도사 이순신의 결정, 왜변 격퇴의 해전 경험을 가진 조방장 정걸의 착상과 현장지도, 나대용·송덕일의 제조기술, 이 삼자가 결합해 탄생한 것이 거북선이라는 주장이 있다.
향촌 은거해 선비 정신 실천한 가문지리산 서남쪽 섬진강이 흐르는 너른 평야가 한눈에 보이는 사도리에는 상사마을이 있다. 사도리는 도선국사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모래위에 삼국도를 그려 통일을 암시한 이인을 만났다는 설화에서 지명이 유래한다. 신라시대부터 천년의 유래를 가진 상사마을은 전국 제1의 장수마을로 유명하다. 마을 우물 ‘당몰샘’은 가뭄이나 장마에도 일정한 수량이 솟아오르고 이슬처럼 맑고 달콤한 전국 최상의 청정샘물이다. 장수비결로 꼽힌 당몰샘을 보존하며 이 마을에서 세거하는 해주오씨(海州吳氏) 문양공후 진사공파
문묘·강학 도입한 선각자 가문전남 담양 만덕산이 보이는 구아산 자락에는 공자를 추모하는 강학당을 한반도에 태동시킨 고려 명신의 후손들이 세거하는 대소산마을이 있다. 미암 류희춘과 송덕봉 부부가 살았던 장동마을과 이웃해 서로 교유하며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대소산마을에는 독특한 가옥 건축으로 알려진 망인당고택이 있다. 김선기가옥으로 알려진 종택을 14대째 보존해 온 광산김씨(光山金氏) 문정공후 육행당파 김대기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알아본다.◇8대 평장사 배출한 가문광산김씨는 무진주 광산현(光山縣) 서일동(지금의 담양 대전면 평장동
호남학풍 일으킨 기묘명현 가문전남 조계산과 주암호로 산자수려한 순천 송광면 이읍마을에는 16세기 호남 유학의 르네상스를 이끈 큰 선생를 추모하는 부조묘가 있다. 그에게 학문을 가르친 스승과 그의 제자가 동방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될 만큼 성리학 학문 전통의 중심인물이다. 설화 9편이 구전될 정도로 백성의 마음 한가운데 자리했던 인물, 신재 최산두가 부조묘의 주인공이다. 그는 정몽주-김종직-김굉필로 이어지는 성리학 학통을 이어받아 조광조와 더불어 사림의 개혁정치를 추진했던 성리학자다. 그를 중시조로 모시고 17대를 잇고 있는 순천 초계
절경에 은거…도학 꽃피운 가문남도 350리 영산강의 아름다운 8경 중 제2경은 ‘몽탄노적’이다. 은빛 비단처럼 느리게 흐르는 맑은 강물 위로 물새들이 떼지어 날아 앉는 풍광이 드넓은 갈대밭위에 펼쳐진 곳이다. 솔개 날고 물고기 뛰노는(연비어약鳶飛魚躍) 조화로운 자연의 도(道)를 저절로 느낄 수 있는 절경지로 알려져 있다. 견훤군에 몰려 사면초가에 처한 왕건이 꿈속에 나타난 현인의 계시로 강을 건너 구사일생했다는 설화로부터 유래한 지명이 몽탄(꿈여울)이다.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배뫼마을에서 400여년을 세거하며 도학 정신을 계
대자연 이치 깨달아 ‘봄’…장춘정 가문영산강이 태극 문양처럼 굽어 흐르는 전남 나주 다시면 죽산리에는 죽포라 불린 나루터에 화동마을이 있다. 이 마을 어귀에서 높은 바위를 병풍삼아 맑은 물을 굽어보고 품격 높은 자태를 발산하고 있는 정자가 장춘정이다. 강과 산, 아름다운 나무들에 둘러쌓여 사시사철 ‘생동하는 봄기운을 간직했다’는 이 장춘정(藏春亭)에 걸린 판액의 싯귀와 기문을 통해 자연속에 사유하며 학문의 깊이를 더했던 16세기 호남명현들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 마을에서 대대로 장춘정을 지켜온 고흥류씨 만호공후
‘文’ 이치 깨달아 ‘富民’…문익점 영원히 추모보성강이 율어천과 만나는 전남 보성 율어리에는 진천마을이 있다. 참샘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에는 차밭과 대밭에 둘러쌓인 천년송과 돌배나무가 솟아 아늑한 햇살아래 내려앉은 고택이 있다. 남도 고유의 가옥구조와 건축양식 특성을 인정받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 가옥의 주인공은 남평문씨 집안이다. 진천마을에 터잡아 300여년을 세거한 보성 남평문씨 순질공파 문동윤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재상에 오른 3형제 가문 중흥남평문씨는 고려 태사대부 문다성을 시조로 모신다. 그는 전
한·중·일에 빛나는 ‘절의정신’국토 서남단 전남 무안 해제의 봉대산 자락에는 풍수지리에서 하늘의 옥녀가 비파를 타는 형국이라는 옥녀탄금 명당에 자리한 슬산마을이 있다. 한 때 군비 저장고가 있었던 이 마을에 장춘오헌을 짓고 때론 북벌을 상소하고 때론 서당을 열어 계몽에 앞장서 온 가문이 있다. 노인의 금계일기를 비롯, 가문 인물들의 기록들은 보배롭다. 400여년 전 슬산마을에 터잡아 수많은 족적과 기록을 남긴 무안 함평노씨(咸平魯氏) 한림공파 슬산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고려 문하시중 노목 시조중국 주나라 ‘백리’가
‘충·효·열’삼강 본보기 가문전남 함평 고막원천이 흐르는 철성산 자락에는 양택으로 이름난 옥동마을이 있다. 아름답고 물산 풍부한 옥동마을에 터잡은 파평윤씨는 마르지 않는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550여년을 잇고 있다. 나라의 위기에는 목숨 걸고 저항하고 일상에는 학문하며 미풍양속을 구가해 온 함평 파평윤씨 대언공파 정랑공 종가를 찾아 뿌리 깊은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여진 정벌 동북 9성 윤관 후손파평윤씨는 고려 삼한벽상공신 태사 윤신달(893~973)을 시조로 모신다. 뇌성이 진동하던 어느 날 파평의 용연(龍淵) 위
전국의 종가협회 대표단은 12월 16일 준비위원회를 열고 한국 종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제반 준비활동을 추진하기로 하고 ‘한국 종가 유네스코 등재 추진 협의회’를 구성했다.한국가구박물관에서 열린 이날 회의에는 경기·서울, 충청, 전라, 경상 등 지역 대표단과 학계 등 관련 인사가 참여했다.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키며 최소한의 대표들만 참여했는데 경기·서울권역에서 이용규 경기도불천위문중협의회장과 김희덕 부회장, 경상권에서 강신중 영남종가협회(영종회) 고문과 이목 총무, 충청권에서 윤완식 충남문중협의회 총무, 전라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