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기의 과거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별로 한 일이 없거나 혹 있다 하드래도 보다 적절하게 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사는 시대도 부정적으로 봐야 잘 보인다.
나라나 겨레 할것 없이 어떤 분야에서는 별로 한 일이 없거나 보다 더 적절하게 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해방 54년이 된 마당에 더욱 그 생각은 절실하다. 식민지 생활 36년보다 거의 배에 가까운 세월을 우리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로 있고 그 분단은 앞으로 얼마가 더 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시 맞는 8·15의 느낌이다.
한국 전쟁도 있었고 아직 대치하고 있는 상태라 관계된 문제가 복잡하다. 그러나 상황 해석을 양파 껍질처럼 버끼면 결국 하나의 겨레 하나의 나라에 이른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겨레를 두고 생각하면 지금 우리의 이 꼴이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시대를 그저 따라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일이 있을 때 수를 채워주고 죽어 준 민초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70년대초 남북합의서가 발표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이 곧 될 것같다는 착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어떤 신문의 기획으로 통일 주제의 시를 쓰기위한 통일로 종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합의서 발표가 있고 얼마 가지 않아 그것이 사기임을 느끼고 그 때 쓴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 몇해 뒤에 어떤 잡지에 나는 소 시집의 형식으로 ‘백지’를 앞세워 그 시를 발표했다. “손바닥을 대고 땀을 흘리는 짐승이 되기 까지는 아직도 먼 평양 116키로의 물소리”가 그 시의 전문이다.
그 소시집을 읽고 시인 전봉건이 동아일보 월평에 다음과 같이 썼다. ‘통일로 종점’과 ‘백지’는 같은 맥락으로 읽어야 한다.
통일 그러나 그 허공을 향하여 무수히 날려 보내야 하는 순수한 ‘백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전봉건은 이북이 고향인 사람이다. 그리고 월남하여 하나의 병사로 한국전쟁에 참가한 시인이었다. 전봉건 시인이 죽은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해방되고 반세기 한국전쟁을 포함한 무수한 세월에 백지를 느끼는 전봉건 시인의 감회는 오늘 더욱 절실할 뿐이다. 이 곳이 무엇인가. 한반도의 지난 50년은 백지가 아닌가. 그리고 그 백지는 앞으로 얼마나 갈지 누가 아는가.
중국 연변을 여행하고 금강산을 여행하면서 거드름을 피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만난다. 사진 찍는 일이 여행의 전부인 그들에게 한반도의 분단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찌 그 사람들 뿐인가. 그들은 오늘 여기에서 내가 잘 살면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일제 36년이나 해방 54년이 절실한 의미가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70년대 조국 근대화며 새마을 운동으로 우리를 다른 길로 간 사람들처럼 오늘 세계화니 무한 경쟁이니 민주주의니 하여 그들은 우리를 다른 길로 몰고 간 것이 아닌가. 그들을 따라가면 통일 그 허공을 향하여 백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날려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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