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때 친구들이 취업공부를 하는 것을 보고 저는 뭔가 다른걸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뭔가가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권위있는 문단 등용문인 ‘2004 중앙 신인문학상’당선으로 소설계에 얼굴을 내민 장은진씨(29·광주시 광산구 도산동).
그는 국문과나 문학동아리 출신도 아니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공부한 그였기에 글 쓰는 친구도, 글쓰기 사사를 받아 본 적도 없다. 그렇기에 더욱 그의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은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문단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그를 지난 18일 전남대 교정에서 만났다.
사람들의 호들갑과는 달리 그는 차분하고 다소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다음주 금요일날 시상식이 열릴 예정이어서 아직은 실감이 안나네요, 상금이 1천만원이나 된다니 당분간은 돈 걱정 안하고 글 쓸수 있어 그게 제일 기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의 눈은 평온했다. 그는 여전히 집에서 구박받으면서 집안에 틀어박혀 글만 쓰는 문학소녀였다.
4년전 어느날 국문과에 다니는 일란성 쌍둥이 여동생이 소설창작 레포트를 갖고 와 ‘언니도 한번 해 봐’하는 권유에 무작정 2∼3편의 단편 소설을 써 동생의 교수에게 보여줬다. 그 교수로부터 “가능성이 있으니 열심히 써 보라”는 흔한 칭찬에 용기를 얻어 글쓰기에 몰두한 것이 여기까지 와 버렸다.
“처음 소설을 시작할 때 엄마한테 딱 1년만 해보겠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해 지방지 신춘문예에서 본선에 올랐어요. 그것으로 인해 재능이 있다고 믿은 엄마가 소설쓰는 것을 믿고 지켜봐 줬죠. 그리곤 다음해 다른 지방지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그 후로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죠.”
그러나 그의 소설 쓰기는 쉽지만은 않았다. 대학졸업 후 6개월간의 직장생활로 조금 모은 돈과 신춘문예 상금 200만원으로 그는 4년동안을 집에 손 벌리지 않고 버텼다. “거의 집 밖으로 나간적이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인 생활이었죠. 돈이 없어 그 흔한 휴대폰 하나 장만하지 못했거든요. ”
그는 소설을 쓰면서 가슴에 쌓인게 많은 듯 했다.
“소설이 나를 다 망가뜨렸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위에서는 격려보다는 한심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죠. 직업이라는 게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즘 사회에서 소설가도 아니고 습작생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으로 20대 후반을 보냈으니깐요.”
그는 길에서 혹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고개를 숙이고 피하곤 했다. 땅만 보고 다녔다고 한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도 자신있게 소설 쓴다는 얘기보다는 그저 공부하고 있다고 얼버무렸다. 그럴수록 그는 자신에게 혹독했다.
“늦잠이라도 자는 날이면 깜짝놀라 일어났어요. 게을러지면 안된다고 스스로 채찍질도 많이 했죠. 나이는 들어가는데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꼬박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습니다.”
그렇게 그는 한 달에 한 편씩 소설을 썼다. 그동안 써 온 작품 중 초창기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쓰레기통에 버리고도 그에게 30여편의 미발표 단편소설이 있는 것도 그런 그의 부지런함 덕분이다.
이번 신인상의 심사평에서 “독자를 따돌리는 의외의 설정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의 소설은 독특하다. 수상작 ‘키친 실험실’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남편이 아내가 싫어하는 고양이나 개구리 요리를 통해 외도하는 아내를 증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다른 미 발표작 ‘설치 미술가’에서는 사람몸에 직접 소설을 써 그 사람을 전시관에 세워두고 사람과 소설을 동시에 본다는 설정이다. 그는 이런 소설들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쓰여지고 있다.
“다소 일반인들이 상상력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남들과 다른 글을 쓰고 싶어요. 또한 아직 이렇다 할 경험이 없어 이런 류의 소설쓰기를 계속할 생각이에요.”
그는 제목 수첩을 따로 두고 먼저 제목을 정하고 나서 소설의 내용을 생각한다. 소설의 내용은 문학잡지나 그림, 다른 소설작품들을 보면서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단어나 순간 느낌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는 그렇게 소설쓰기를 시작했지만 이제 시작하는 소설 지망생에게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것을 권한다.
“혼자 글쓰기를 시작하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시간이 많이 걸려 미련한 방법이었다”며 “앞으로는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주위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면서 외로이 자신과의 싸움으로 지금의 값진 승리를 얻어냈다.
신인상을 수상한 요즘이 오히려 예전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던 습작시절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신인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위의 시선과 기대가 부담스러웠어요.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더욱 커지고요.” 그는 속으로 많이 울었단다. 딱히 누굴 만나 자신의 심정을 고백할 사람도 없다. 소설쓰기를 시작할때도 신인상 소식을 들었을때도, 수상후 불안감에 떨때도, 그는 결국 혼자 모든 걸 삼켰다.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소감에 그는 이렇게 썼다. ‘지금 이순간 가장 고마운 사람은 나 뿐이다.’
이 말은 어쩜 그에겐 가장 솔직한 대답이었다.
“신인상 수상자중 10명에 1명 정도만 활발한 활동을 한다고 들었어요. 대부분은 2∼3편의 글을 더 내다 시들해 버린다면서…. 그냥 저는 제 나이 60, 70이 되어도 먹고 살 걱정없이 글을 쓰고 있다면 좋겠어요. 소설쓰는 것 자체가 행복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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