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체-옥원듕회연-힘차고 강한 운필, 세로줄은 깔끔.

한글은 세종28년(1446) 반포 이후 왕실에서는 왕은 물론이요 왕후와 왕실 가족 뿐 아니라 내관, 궁녀들까지도 한글을 썼고, 이들이 궁 밖의 사가(私家)와 한글로 편지를 주고 받는 등 한글은 왕실과 조정관서 밖에서 보편적으로 사용 발전됐다.
숙종 대 이후 영·정조 시기(1725~1800)에 빠르게 발전했고, 순조·고종 시기에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 특히 세조비 정희왕후가 7년간, 중종비 문정왕후가 8년간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조정관서의 문서를 주고 받느라 궁녀들이 글씨 쓰는 일이 많아져 일찍부터 글씨 공부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또한 비빈이나 공주 옹주들과 이어지는 친인척 간의 봉서대필, 당시에 성행했던 시조, 가사, 한글소설 등을 베껴 쓰는 과정에서 이들은 글씨를 보다 아름답게 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주로 궁중나인(宮中內人)들에 의해 발전돼 온 서체였기에 ‘궁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대체로 단정하고 아담한 여성적인 아름다운 자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궁체의 대표적 글씨중 하나가 ‘옥원듕회연’(사진)이다.
제목은 사랑하는 두 남녀의 약혼 선물인 옥으로 된 원앙이 없어졌다가 다시 찾는 것에서 연유했으며, 이합(離合)을 상징하고 있다. 파당대립과 관련해 갈등을 일으키는 두 집안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사이의 남녀를 주인공으로 해 대립과 선악의 갈등을 그린 인간 내면을 다룬 소설이다.
힘차고 강한 운필의 선, 자음·모음간의 서로 잘 어우러지는 획들, 세로줄은 깔끔하게 잘 맞춰져있으면서 글자 한자 한자의 가로줄 맞춤은 무시했으나 글자간의 크고 작은 모습들이 너무나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서체가 완성되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과 정성과 창조정신이 들어갔을까.
/광주서예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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