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는 어느새 여름을 밀어냈고 서늘한 바람은 한낮의 뙤약볕을 무색하게 한다.
올 여름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폭우로 기대했던 휴가는 물거품이 됐다. 그렇다고 또다시 휴가를 떠날 수도 없고….
주말, 여름이 가는 소리와 함께 온가족이 떠날만한 적당한 곳은 어딜까.
아흔아홉 봉우리마다 절경이요 감춰진 비경마다 애틋한 사연이 맺힌 섬, 백도.
사람은 간 데 없고 오로지 새들이 쉬어가는 보금자리요 맑은 물속은 갖가지 물고기가 천지다.
이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섬이 풍기는 매력때문이리라.
거문도를 찾는 사람들은 오히려 백도를 먼저 찾는다. 이는 서해 홍도와 함께 해상관광의 백미로 꼽기 때문이다.
거문항에서 동쪽으로 70리, 뱃길로 한시간 거리인 백도.
유람선으로 섬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세시간의 여정은 가히 황홀경에 빠져든다.
해상의 걸작품이요, 절로 ‘선계(仙界)런가’하는 착각에 사로잡힐 지경이다.
옅게 드리워진 해무가 걷히자 어렴풋이 드러나는 봉우리들.
푸른 하늘과 바다에 유난히 하얗게 드러난 섬.
바위들이 하얀빛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 바로 백도(白島)다.
조물주가 빚어낸 기기묘묘한 절경은 다가갈수록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상·하백도를 비롯해 39개의 무인도를 거느린 이곳은 ‘해금강’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
저마다 특유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섬들은 인적을 거부해 태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뭍사람들을 반기듯 지저귀는 휘파람새.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터라 이곳은 350여종의 야생식물과 흑비둘기·가마우지 등의 보금자리로 희귀 동·식물의 보고다.
화려하고 신비로운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백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백도에 다다르자 안내원은
“섬들이 100개에서 하나가 모자란지라 백(百) 위의 일(一)자를 떼어버린 백도(白島)요, 먼발치에서 섬들을 바라볼 때 온통 하얗게 보인지라 흰백(白)자 백도라.” 고 유래를 소개한다.
이어 그의 걸죽한 입담이 이어진다.
“그러나 태초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산 아들이 지상으로 쫓겨온 후 용왕의 딸과 눈이 맞아 풍류를 즐기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후 아들이 무척 보고싶었던 옥황상제는 100명의 신하를 내려보내 찾아오게 했으나 그들마저 세상에 취해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옥황상제가 벌을 내린 것이 섬으로 굳어져 지금의 백도를 이루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렇듯 서른아홉 섬, 아흔아홉 봉우리마다 숨은 이야기가 전하고 그 이야기처럼 특이한 생김새를 하고 있는 바위들.
병풍처럼 폭을 늘인 병풍바위, 옥황상제가 연락했던 나루섬, 하늘에서 내려온 신하형제가 꾸지람을 듣고 숨었다는 형제바위, 먹거리를 쌓아놓았다는 노적섬, 새가 돌로 변해버렸다는 매바위….
그곳엔 저마다 제이름을 가지고 있다.
섬을 돌며 안내원의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관광객들은 연신 탄성을 토해낸다.
전설이 마치 실화로 착각될 정도로 기암의 모습과 이름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선상은 기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바짝 다가가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부산해진다.
뱃머리는 하백도로 향한다.
옥황상제의 아들과 용왕님의 딸이라는 서방바위와 각시바위를 비롯해 보석바위·궁성바위, 석불바위 등….
선상유람은 이내 사람들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버린다.
돌아오는 길에 뱃전으로 밀려오는, 갯내음 섞인 바닷바람 앞에선 작열하는 여름 태양도 무기력하기만 하다.
백도를 떠나오며 그려진 하얀 포말 뒤로 초가을의 백도는 더욱 눈부시다.
글·사진/최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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