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86주년을 앞두고 27일 공개된 미군 정보문서는 1919년 전후 시베리아 각지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과 일제의 탄압 사례를 미군의 시선으로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또, 당시 시베리아 전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운동을 일제가 얼마나 대대적으로 탄압했는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해외 한인들에 대한 일제의 잔학상을 밝히는데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시베리아 항일운동 연구’ 전기=그동안 시베리아지역 항일독립운동 연구는 가해자인 일본측 관헌 기록이나 러시아 현지 기록에 주로 의존했기 때문에 정확한 진상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 이상일 박사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기록을 집요하게 추적해 미군 문서를 입수함에 따라 당시 상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료를 확보, 해외독립운동 연구를 심화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
근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수원대 박환 교수는 “러시아지역 항일운동에 관한 미국 문서가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사료가 제한됐던 관련분야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미군 문서는 한국인의 항일독립운동이 동토의 땅 시베리아 곳곳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졌으며 위기의식을 느낀 일제의 탄압은 야만적인 방법으로 자행됐음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 공산세력에 맞선 미군은 당시 일제와 동맹군관계였음에도 한국인 독립운동 탄압실태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보인 사실이 이번 문서를 통해 확인됨으로써 일제의 잔혹행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게 전개됐음을 짐작케 했다.
연해주와 간도,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만든 해외임시정부인 ‘대한국민회의’가 1919년 3월 15일 발표한 첫 독립선언서가 이번에 처음 공개된 것도 해외독립운동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대한국민회의의 첫 독립선언서는 1919년 3월 17일 작성됐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첫 독립선언서는 영문으로 작성돼 미국을 비롯한 각국 영사관과 현지에 주둔한 외국 군대에 배포됐으며 이는 세계 각국에 일본의 한반도 강점의 부당성을 알려 독립운동에 우호적인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에서 이뤄졌다.
이 선언서는 “대한국민회의는 조선이 정복당하지도 그리고 양도에 의해 매각되지도 않았음을 선언한다”고 밝혀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침략 행위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고문·감금에 일가족 몰살까지=문서에는 시베리아에 원정군으로 출병한 일제가 주도 면밀한 방식으로 현지의 독립운동가들을 잔인하게 탄압한 실상을 상세히 담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일제는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을 무작위로 체포해 감금과 고문을 일삼았으며 심지어는 한인학교에 무장한 채로 들어가 교과서를 불태우거나 책상 등의 집기를 부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실례로 1919년 3월 15일 하바로프스크에서는 미군 병사들에게 영문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던 한인 2명을 체포해 사슬로 묶은 뒤 감옥에 2주동안 감금하며 고문을 자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군은 또 항일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한국인을 돈으로 매수해 동료들을 고발케 하거나 러시아 경찰에게 금품을 대가로 조선인 탄압에 앞장서도록 하기도 했다고 문서는 전하고 있다.
미군 드리스데일 중령이 3·1운동 당시 국내 상황을 담아 본국에 보낸 보고서도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에는 제암리 인근에서 70대 노파 부부가 세 아들과 세 손자를 일본군의 총칼에 잃은 사연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일본군이 노파 부부가 보는 앞에서 세 아들과 세 손자를 무참히 살해한 뒤 주민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시신을 불태우기까지 했다는 것.
보고서에는 제암리 사건을 포함, 일제의 잔혹성을 드러내는 사례가 다수 포함됐다.
국사편찬위 이상일 박사는 “이번 문서 공개가 관련 연구자들에게 3·1운동 전후 시베리아 독립운동사 학술 연구를 고무하고, 일반인들에게 일제의 만행에 대한 경각심과 독립 운동에 목숨을 바친 선열의 뜻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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