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英제작 지도’의미·전망
日, 46년부터 영토편입 음모 “미국 오인시켜 논쟁 시작”


제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를 표방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은 한편에서는 꽤 많은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그 중 하나가 독도가 포함된 영토 분쟁의 씨앗을 잉태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조약 그 자체가 향후 유발할 수 있는 영토 분쟁을 확실히 막을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방법은 지도 작성이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은 조약에 의한 일본과 한국 등의 영토를 규정한 지도를 첨부하지 않았다.
대신 이 조약은 전문(前文)과 본문 7장(chapter)에 27개 조항(article)으로 구성된 전체 조문중 제2장 ‘영토’(territory·제2-4조)에다 실로 막연하게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지역에 대한 영토 규정을 포괄적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한국과 직접 관련되는 제2장 제2조 (a)항에서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퀠파트(제주도)와 해밀튼항구(거문도)와 다줄렛(울릉도)과 같은 여러 섬을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과 청구권을 포기한다”고만 했다.
이 조항만으로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일본영토이며 어디서부터가 한국영토인지를 알 수가 없다. 지도는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목포대 정병준 교수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한 영국정부의 지도는 획기적이다. 영국은 미국과 함께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을 사실상 좌지우지한 주축국이다.
지도는 영국이 샌프란시스코평화협정을 앞두고 미국과는 별도로 3차에 걸친 검토 끝에 최종 확정해 1951년 4월 7일, 미국에 통고한 대일평화협상안에 첨부돼 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준비과정에서 유일하게 작성된 지도로서, 독도를 한국영토로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이 지도는 1951년 2월 28일에 제1차로 마련된 영국측 초안에서는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와 제주도까지 일본령으로 포함돼 있다가 수정된 자료라는 점이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독도가 한국령임을 증명하는 몇가지 지도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1946년 연합군최고사령부 지령(SCAPIN·스캐핀) 677호에 첨부된 지도와 1950년 미국이 샌프란시스코회담을 준비하면서 활용한 지도가 그것이다.
이번에 발굴된 지도가 갖는 의미를 정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이는 샌프란시스코회담 과정에서 제작된 유일한 영국정부의 공식 지도였다. 둘째, 이 지도에는 독도가 일본령에서 배제되어 한국령임을 의미하고 있다. 셋째, 더욱 중요한 사실은 영국이 그 이전 평화회담 초안에서 독도가 일본령이라고 기록했다가, 한국령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정정했다는 사실에 있다.
영국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1차 초안에서는 독도는 물론이고 제주도와 울릉도까지 일본땅에 포함시켰을까?
그 비밀의 일단은 정 교수가 이번 지도와 함께 공개한 1946-47년에 일본정부가 작성해 미국과 영국 등의 연합국 정부에 돌린 팸플릿에서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다.
즉, 일본 외무성은 패전 이듬해인 1946년부터 벌써 일본이 확보해야 할 도서(島嶼·island)와 소도(小島·islet)ㆍ암초(rocks)에 대한 각종 팸플릿을 ‘일본본토에 인접한 소도서(Minor Islands Adjacent Japan Proper)’라는 제목으로 발간했다.
모두 4부로 구성된 이들 팸플릿중 제4부는 독도는 물론이고 울릉도까지 자국 영토가 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정부는 애초에 이들 팸플릿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초안을 작성했음을 엿볼 수 있다.
다만, 그렇던 영국정부가 과연 어떤 통로를 통해 무슨 정보를 얻었기에 2차 초안 이후 미국정부에 최종 통고된 3차 초안에서는 울릉도ㆍ제주도ㆍ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시키게 되었는지는 향후 추적 과제로 남길 수밖에 없게 됐다.
독도 문제는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을 체결한 직후에 이미 표면화했다가 1952년 초에는 이승만 라인을 둘러싼 한ㆍ일간 대립 격화와 함께 더욱 노골화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들 팸플릿은 일본의 음모가 이미 1946-47년에 시작됐음을 밝혀준다.
정 교수는 “일본이 독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실제로 독도가 일본의 역사적 영유, 혹은 무주지 선점지였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면서 “일본은 미국이 독도를 일본령으로 생각하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확신함으로써 이를 발판으로 독도 논쟁을 야기했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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