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한 ‘후진타오시대‘ 개막

중국 헌법상 최고 의결기구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는 13일 후진타오(胡錦濤·61)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중국(국가) 중앙군사위 주석에 선출했다.
이로써 후 주석은 당ㆍ정ㆍ군 3권을 장악하고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 지난해 9월 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16期 4中全會)에서 장쩌민(江澤民ㆍ78)으로부터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물려 받은지 6개월만에 형식적인 권력 승계 절차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이다.
장쩌민은 지난 8일 전인대 회의에서 사임 요청안이 통과돼 최고 권력자에 오른지 16여년만에 야인으로 돌아갔다. 70대가 장악했던 권력의 60대 이동이 마무리된 셈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완전한 자신의 시대를 여는데 인고의 세월을 거치면서 통치 능력을 검정 받아야 했다.
후 주석은 2002년 11월 당 총서기에 이어 2003년 3월 국가 주석이 됐으나 권력 승계 마무리에는 2년 4개월이나 걸렸다. 장쩌민 주석의 ‘막후 조정기’에 해당하는 일종의 ‘섭정’을 거친 것이다.
장쩌민의 2년여의 ‘막후 조정기’ 는 그러나 지난 1992년 제16기 당대회에서 제4세대 후계자로 선정되고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오른후 살얼음 걷듯 조심 조심 처신해온 10여년에 비하면 오히려 짧았다.
후 주석이 당초 예상보다 빨리 ‘막후 조정기’를 조기 청산한데는 무엇보다 적기에 보여준 국정 운영 능력과 과단성있는 조치가 주효했다.
후 주석의 제4세대 지도부는 2003년 4월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창궐때 당시 책임을 물어 위생부장 장원캉(張文康)과 베이징 시장 멍쉐눙(孟學農)을 전격 해임하며 사스 퇴치의 길을 열었다.
후 주석은 지난해 12월20일 둥젠화(董建華) 홍콩 행정장관을 공개 석상에서 크게 꾸짖어 결국 둥 장관은 12일 사임했다.
총명하면서도 온화하고 겸손하다는 평을 들어온 후 주석이 국정 운영에 필수적인 결단성이라는 무서운 일면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런 과단성은 후 주석이 지난 1989년 3월 티베트인 시짱(西藏)자치구 서기때 저항운동이 거세게 일자 계엄령을 내린후 철모를 쓰고 다니며 강경 진압에 나선데서 이미 엿보이기는 했다.
후 주석은 이미 정치, 경제, 외교, 대만 문제 등에서 국정 이념을 제시하며 장쩌민 전 주석통치때와 차별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도-농, 지역별, 계층간 소득 격차를 줄이며 각 부문간 균형 발전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조화사회(社會主義 和諧社會)’가 장쩌민의 3개 대표론과 맞먹는 새로운 이론으로 등장했다. 이는 합리적이고 과학적 사고 방식을 내세우는 과학적 발전관과 인본주의(以人爲本)에 토대를 두고 있다.
후 주석은 이번 전인대 기간에 대만 통일정책과 관련, 장쩌민의 8개항을 압축한 4개항을 제시했고 외교정책으로는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세계 평화 속에 우뚝 서겠다는 ‘허핑 줴치(和平 山屈起)’ 정책을 선언했다.
경제정책은 조화사회 이념에 발맞춰 성장 유지 속에 안정을 중시하는 긴축위주의 거시(宏觀) 조정 정책을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완전 권력을 장악한 후 주석이 이러한 국정 이념과 정책들을 내세우고 거대 중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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