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을 바라보며]빌바오 벤치마킹의 허와 실

광주시와 시립미술관 측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分館)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다름아닌 오는 2010년 완공될 아시아 문화전당내에 이를 들여놓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예술적 콘텐츠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한편 ‘구겐하임’의 권위와 유명세에 힘입어 동서양의 관람객들을 끌어모아 보겠다는 의도로 읽혀진다.
뉴욕에 본관을 둔 구겐하임 미술관은 현재 이탈리아의 베니스, 독일 베를린, 그리고 스페인의 빌바오 등에 분관을 두고 있다. 이들 가운데 특히 빌바오 분관은 거의 신화와도 같은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이를 벤치마킹하고자 세계 80여개의 도시들이 너도 나도 구겐하임 분관유치에 뛰어들고 있는 판이다. 우리나라에선 부산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는 등 이미 유치경쟁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의 문화중심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광주가 이제서야 움직인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구겐하임 분관유치가 선착순으로 결정될 일이 아닌 바에야 시동이 늦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다만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빌바오의 기적’이 과연 어떤 경로를 통해 이뤄졌는지를 명확히 이해한 뒤 경쟁상대들보다 훨씬 필요하고도 충분한 여건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만큼 빌바오 스토리는 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빌바오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자치주의 해안도시다. 15세기 이래 제철소와 철광석 광산, 그리고 조선소가 있던 우중충한 공업도시였다. 지난 80년대 이후 빌바오의 철강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 이에 따라 도시는 활력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로 10년 가까이 고통을 겪기도 했다. 침체와 불안 속에서 도무지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던 빌바오시에 회생방법을 제시한 것은 바스크 정부였다.
지난 91년 바스크 정부는 문화산업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빌바오시의 조상들은 문화와 거리가 멀었다. 전통문화를 팔아 엄청난 관광수익을 올리는 유럽의 다른 도시와는 처지가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세계 사립미술관의 최고봉인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 유치였다. 그리고 97년 조선소가 빠져나간 빈 자리에 1억5천만달러를 들여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공했다. 콘테이너 하치장으로 쓰이던 네르비온 강가는 문화의 요람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때맞춰 98년엔 바스크 분리주의자 그룹이 테러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빌바오는 말 그대로 거듭났다.
특히 이 미술관 건물은 기대 이상으로 빌바오에 마법을 걸어주었다. 금속제 구조는 꽃잎처럼 마음대로 이리 저리 휘어져 하늘을 향해 춤추었고 물고기 비늘처럼 표면에 붙은 수십만개 티타늄은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메탈 플라워(금속제 꽃)’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 건물은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20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건축물은 건축학도들이 숭배하는 메카가 돼버렸고 전시작품들은 빌바오 구겐하임을 현대미술의 본산으로 변모시켰다. 개관후 1년간 관람객은 당초 예상했던 45만명을 훌쩍 넘어 무려 136만명에 달했다. 이들의 소비규모는 1억6천만달러였으며 바스크 지역경제에 막대한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이 사실만 놓고 보면 광주가 구겐하임 분관을 유치하려는 시도는 지극히 당연하고 옳다. 문제는 빌바오의 결과만을 보고 벤치마킹하려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빌바오와 바스크 정부가 그와 같은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 쏟은 정열과 희생을 먼저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문화적 랜드마크로 도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어찌 일부의 생각만으로 이뤄지겠는가. 역량있는 리더십의 창출과 도시마케팅의 전문지식, 그리고 지역민의 공감대 형성이 없으면 분관 유치는 또 다른 허세의 시작일 뿐임을 모두가 명심해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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