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순의 세상보기] 세상을 꼴로 볼 것이 아니다.

오지호 선생이 생존해 계실때 지산동 골목 초가에 사시는 선생을 나는 잘 찾아 뵈었다. 사립문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별채가 있고 그 안에 있는 작은 화실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선생의 초기 작품인 소녀상이었다. 내가 선생을 찾은 것은 선생이 작업하는 현장을 보고 싶었고 그림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생의 상징적 예술 론인 한국 치마와 판소리에 대한 미학을 배우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당신의 미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만 한자에 대한 주장뿐이었다. 70년대 초 선생은 한문 가치론에 대하여 열을 올리고 계실 때다.
선생의 주장에 의하면 한글로 표현하는 순수한 우리말은 감각적이거나 본능적인 어휘 말고 관념이나 사상을 상징하는 어휘가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순수한 우리말은 사상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관념이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한자나 한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선생은 철저하게 한글 전용의 소설을 무시했으며 국한 혼용을 주장하였고 한문교육에 대한 행동에도 나섰다. 끊임없이 신문 등을 이용하여 그 주장을 폈고 논쟁에 참여하였고 직접 실험을 통하여 한자 교육의 효율성을 증명하려 노력하였고 문교 정책에 주장을 반영하기 위하여 당시 국무총리인 김종필도 만나고 하였다.
오늘 오지호 선생의 주장이나 문화적 전통의식의 끊임없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글 전용이 일상화되고 있다. 모든 공문서는 한글화되었고 모든 글쓰기는 한글 전용이고 더구나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매체를 통하여 한글전용의 문화는 더욱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고 있고 여러 방면으로 순수한 우리말은 관념화하고 있고 사상화 되고 있으며 문화적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 감각적이거나 본능적이고 윈시적 감정 표시뿐 아니라 시대적이면서 관념적인 사상을 표현하는 움직임의 거센 물결이 일고 있다. 그리고 그 물결은 기존의 지성이 아니라 대중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한글 전용의 문화 가운데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개념밖에 없다고 보는 그 순수한 우리 말 가운데 어떤 어휘는 실로 놀라운 관념어이고 사상어 임을 지적하고 발견하려는 노력은 아직 적어 보인다. 가령 ‘시원 섭섭’ 과 같은 말은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어휘이면서 그 안에 진보와 보수가 공존하고 있는 복합적 사상이고 혁명성과 보수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시원함은 변화와 파괴와 혁명성을 반영한 어휘이고 섭섭함은 변화나 파괴나 혁명에 대한 저항이나 반동을 반영하는 보수적 입장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 가운 데 나는 전기 ‘시원 섭섭’ 말고도 ‘세상을 꼴로 본다’는 말을 좋아한다. 세상을 꼴로 본다는 말은 세상을 우습게 본다는 것이고 세상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본다는 것이고 세상을 어렵게 보거나 무섭게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기존 질서와 가치에 대한 저항과 부정을 반영하고 있고 문명비평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으며 철학적으로 이성 비판적 입장이고 문학적으로는 낭만적인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이 개념을 더 철학적 이론으로 발전시키면 순수한 우리말의 사상성의 체계를 수립할 수 있으며 이 발견은 앞으로 한국 철학의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업고 물동이를 이고 젖가슴을 내놓은 맨발의 한국 어머니가 바티칸에 성모마리아상으로 세워진다는 보도를 보면서 ‘세상을 꼴로 볼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아직도 믿을 만하고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공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평소에 시를 통하여 가난하고 무식하고 한 많은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라고 생각해 왔다. 오늘의 세계는 희생적인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의 비전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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