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순의 세상보기] 신들린 헛소리의 아름다움

플라톤이 그의 공화국에서 시인을 추방한 것은 시인의 신들린 헛소리 때문이었다. 플라톤은 공화국의 정신으로 이성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이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의 신들린 헛소리를 이해했다. 그는 시인이 신들린 헛소리를 통하여 따분하고 상식적인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카타르시스 론의 본질이다. 이것은 플라톤이 아폴론적인 이성을 중시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디오니소스적 감성에 대한 이해를 표시한 것이다.
플라톤이 시인을 추방한 것은 시인의 본질을 옳게 파악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그 타당성이 인정되었다. 사실상 시인의 신들린 헛소리는 시의 본질적인 것이다. 가령 현대시인 가운데 W. B. 에이츠의 최종 작품인 ‘비전’은 신들린 헛소리로 되어 있다. 무슨 소리인지 자기 말고는 알 수 없다. 아니 자기도 알 수 없는 소리를 토하고 있는 것이다. 신들린 헛소리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가장 난해하다는 ‘피네건스 웨이크’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다시 프랑스의 에루알의 자동기술을 말할 때도 같은 해석을 할 수 있다.
신들린 헛소리는 푸로이트의 무의식에서 더욱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푸로이트 이전에 무의식의 세계는 헛소리의 세계였다. 프로이트의 사상이 현대적이라는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신들린 헛소리는 현대적인 것이다. 사실상 현대인들은 말짱한 정신으로 적응하기 어려운 현상 속에 살고 있다. 부조리 현상이 그것을 말한다. 부조리한 현상처럼 현대를 잘 대표하는 입장은 아직 없다. 그리고 이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극단적 허무주의로 연결된다.
1950년 대 전쟁 중에 미당 서정주가 실성거린다는 소문이 있었다. 신들린 헛소리를 토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변을 겪은 충격이라고 해석되지만 그는 대구에서 식객으로 있으면서 그의 불안한 정신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것을 이해한 것은 청마 유치환이었다. 그는 헛소리하는 미당을 자기 집에 살렸다. 미당이 대구에서 광주에 왔을 때 그는 헛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고향 사람들은 그에게 따뜻했다. 그의 주변에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무등을 바라보며’ 등 그의 가작은 그의 심적 변화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서울로 갔다. 그러나 서울에서 그는 다시 불안하였다고 짐작된다. 그의 시가 다시 신들린 헛소리로 돌아간 것이다. 이 무렵 그는 무당을 주제로 한 시를 써서 화제가 되었다. ‘주러리 주러리…’ 한 것 즉 무당의 의상을 표현하면서 무당의 신들린 헛소리를 미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위선은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종길이 앞장을 서서 비판 했는데 두 사람은 몇 차례 논쟁하다가 서정주가 침묵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시를 쓰지 않았다.
나는 최근에 ‘나는 디오니소스의거시기 氣다’란 시집을 냈다. 나는 거기에서 신들린 헛소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의 의도는 별로 받아지지 않았다. 몇 군데서 서평이 있었지만은 나의 의도대로 해석한 사람이 없었다. 시를 상식적으로만 해석하려고 한 것이다. 새롭다든가 젊음 못지않은 폐기가 있다든가 등이다. 거기서 내가 의도한 것은 신들린 헛소리였던 것이다. 한국 무속에 대한 국제 학술 세미나가 청주 무속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전에 알았다면 나는 거길 참석했을 것이다. 95년 에모리 대학에서 한국 무속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이론적이라 실감이 덜 했지만 그러나 나는 ‘신들린 헛소리의 아름다움’의 세계를 발견하였다. ‘나는 디오니소스의 거시기다’는 그 숙제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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