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순의 세상보기]고양이만도 못하는 호랑이

도올 김용옥이 80년대 초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재직 중이던 고려대학을 버렸다가 후회했던지 1년도 안되어 다시 들어오겠다고 말하자 대학 당국은 단호하게 이를 거절하면서 대학이 개가 개구멍을 출입하듯 들락날락 하는 곳이 아니라고 통보하였다. 그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김용옥은 고대의 상징인 호랑이를 가리켜 ‘고양이만도 못하는 호랑이 새끼’라고 비아냥거렸다. 이 에피소드는 지금도 그 대학을 말할 때 패러디로 사용하고 있다.
호랑이는 학술적으로 고양이과에 속한다. 호랑이가 왜 고양이과에 속한지 정서상 납득이 되지 않지만 그러나 유전자 연구가 발달한 지금까지도 따로 분류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학계는 그것들이 같은 뿌리인 것을 믿는 모양이다. 호랑이를 상징으로 가지고 있는 그 대학 출신들은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뜯어 먹지 않는다’ 라는 명제를 좋아한다. 사실상 호랑이는 크고 위엄이 있고 용감하고 거기에 단군 할아버지의 전설적인 선조이기도 하여 민화에서 볼 수 있듯 호랑이는 전설적으로 한국 사람과 가깝다.
그러나 호랑이는 현실적으로 공포의 대상이다. 한국의 설화에서 호랑이를 가까이 말하는 것은 그 공포심을 덜기 위한 심리적 고안으로 짐작된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나 귀신을 무서워하여 그들과 접근하여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원시종교의 의미와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영국에서 미국을 호랑이로 그린 만화를 본적이 있다. 사실상 무소불위이고 무섭기로야 미국은 호랑이와 비할 바가 아니다. 거기에 국익에 관하는 한 인정사정없고 언제 그 공포가 자기의 신변에 다가설지 알 수 없다. 호랑이인 미국은 약한 나라 약한 사람들에게 지금 원시신앙의 미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며칠 전 대전의 어떤 대학 병원에서 실수로 위암 환자와 갑상선 환자를 바꾸어 수술한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그 만화 같은 사실에 할 말을 잃고 있다. 어찌 그와 같은 불합리한 사실이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합리한 사실은 호랑이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며칠 전에 발생한 미국 무인 비행기의 파끼스탄 오지 마을 폭격이 그것이다. 이슬람의 명절 날 그러니까 우리 같으면 설날 아프카니스탄에 사는 친척들이 파키스탄에 위치한 고향에 왔다가 그 폭격의 벼락을 만난 것이다. 테러리스트의 제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를 잡기 위한 폭격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자리에 미국 CIA가 노리는 그 인물은 없었다. CNN의 보도에 나온 파키스탄의 정보상의 인터뷰에 의하면 어린이들과 여자들을 포함한 18사람의 시체 속에 그 자와히리 시체는 없었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자와이리는 폭격 전에 이미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오폭이었다는 것이다. 나의 시에 ‘사람가지고 장난 하지 마라’ 가 있다. 인체 줄기세포가 인륜를 어긴다고 주장한 미국인들이 아닌가. 더구나 어제는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기일이자 미국의 국경일이었다. 미국인들은 국경일에 파키스탄의 폭격과 파키스턴의 반미 데모 보도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사는 상식에 의하면 설혹 그 자와히리가 그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들에게 위험이 있다면 무고한 살상을 피하기 위하여 폭격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월남전에 대한 미국 영화를 보면 미국 병사가 불 속에서 월남 어린이들을 구하여 안고 나오는 광경을 많이 본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우리는 감격해 한다. 그것이 세상의 정답으로 믿고 있다. 미국의 많은 교회가 구하는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있다고 믿는다. ‘테러리스트 미군은 아프카니스탄에서 물러가라’고 분노한 파키스탄의 군중들은 외치고 있다. 그러나 호랑이는 대꾸하지 않는다. 나는 거기에서 속 좁기로 고양이만도 못하는 호랑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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