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을 바라보며]이제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시대?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유달리 사자성어(四字成語)가 횡행하는 모습이다. 작금의 세태가 돌아가는 현상과 의미를 네개의 한자(漢字)조합으로 담아내는 게 다른 해보다 빈번해졌다.
지난해 말 교수들은 해마다 해온 전례에 따라 ‘상화하택(上火下澤)’을 뽑았었다. 불길은 위로 치솟고 못물은 아래로만 향하니 도무지 화합이란 찾아볼 길이 없더라는 게 2005년에 대한 진단이었던 셈이다. 새해 소망 사자성어로는 ‘약팽소선(若烹小鮮)’을 내밀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듯이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가 얼마나 천방지축이었으면 이런 화두를 던졌을까 싶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교수사회의 ‘약팽소선’에 대해 “가만히 놔두라는 것은 대단히 보수적인 구호로, 이대로 가면 잘될지 모르겠다”며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국가기관 및 정당 주요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신년인사회에서였다. 노대통령은 ‘경제성장은 내버려 두고 바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중요한 일들을 챙겨서 하다보면 다 잘 돼갈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며 “같은 말을 가지고 아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내놓은 사자성어로는 ‘선흉후길(先凶後吉)’을 택했다. “보편적 상식, 사리라는 것을 존중하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노력들을 함으로써 출발보다 뒤가 더 좋아서 역시 선흉후길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잘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선흉후길의 괘는 포철의 이구택 회장도 뽑아들었다. 올해만 잘 넘기면 미래는 밝고 따라서 상반기에는 어렵겠지만 하반기에는 점점 나아질 것이란 얘기다. 중국은 병술년의 외교방침으로 ‘화자위선(和字爲先)’을 읊었다. 제발 그래주길 바라는 바 평화를 우선시한다는 말이다.
새해 벽두의 정국을 뒤흔든 유시민 의원 입각사태와 관련해서도 한 마디가 나왔다.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이 유의원에게 ‘각자위정(各自爲政)’이라는 사자성어로 충고한 것이다. 원래는 저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는 말인데 의역하면 전체와의 조화나 타인과의 협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결과가 뻔하다는 뜻이다. 동료 의원들이 유의원을 평소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사자성어가 난무하다보니 황우석 박사도 가만 있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지난번 반박 기자회견에서 “불광불급(不狂不及)… 우리는 일에 미쳤었다”라며 변명아닌 변명을 하고 나섰다. 이 말은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다다를 수 없다)‘는 뜻이다.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자성어와 대조를 이룬다. ‘논어’는 공자가 두 제자를 평하면서 “한쪽은 지나치고 한쪽은 미치지 못한다”며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눈 앞에 뵈는게 하나도 없었다. 그 자신을 포함해 연구원들이 학문적 열정만을 생각해왔다”며 인용한 ‘불광불급’은 이날 인터넷 검색 순위 상위에 오르내렸다. 황교수는 2004년 출간된 한 책의 글에서도 이 용어를 썼다.
한때 삼행시가 유행을 타더니 이렇듯 이제는 언뜻하면 사자성어다. 심지어는 수십개의 사자성어를 죽 나열하며 바람피우는 행동을 풍자한 인터넷 유머도 있다. 우리 고유의 네글자 리듬감이 알게 모르게 일상속으로 녹아든 듯싶다. 한자문화권의 전통때문에 사자성어가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새해의 바램으로 두어가지 꼽아봤다. 올해에는 우리 사회가 선건전곤(旋乾轉坤, 하늘과 땅을 뒤집듯 나라의 폐풍을 단숨에 크게 고쳐 국가대세를 일신함)을 이뤄 가급인족(家給人足,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해 세상살기가 좋음)하길 정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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