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광주 일상예술창작센터
즐기는 예술문화 보급 위해 지난 3월 태동
아트북·공예·염색 등



피부 관리에 신경을 써야하는 30대에 들어서면서 천연비누를 만들었다. 돈주고 사는 비누보다 역시 좋았다. 나누고 싶은 욕심에 선물도 하면서 5년이 지나니 사겠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비누를 팔아 수익을 보는 것보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다. 가끔씩 가판을 만들어 대학가에 보따리를 풀기도 했다. 참 즐겁다.
천연비누와 칼라믹스 공예로 생활창작아티스트가 된 정 영(35·여)씨 이야기다. 웰빙 시대라는 세파 때문에, 사실 정씨같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많다. 이들을 묶어줄 울타리가 미흡하고 작가라는 말이 스스로 쑥스러운 탓에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최근 정씨 같은 생활창작아티스트들이 힘을 모아 둥지를 틀고 거리로 나섰다. 이름하여 ‘일상예술창작센터 광주지부(이하 광주창작센터)’.
광주창작센터는 지난 3월 태동했다. 사무국장인 김형수(29)씨를 비롯해 안미정(25·여)씨 등 문화기획을 공부하던 20대 활동가 7∼8명이 광주 무등극장 옆 건물 꼭대기 층에 보금자리를 만든 것이다. 엄숙한 갤러리나 눈으로만 즐기는 ‘죽은 예술’을 지양하고 생활에 녹아있는 ‘문화 난장’을 즐기자는 청사진을 내세웠다.
“광주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동안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거리는 너무 멀었습니다. 예술이 고귀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도 좋지만, 즐기는 이와의 소통이 단절돼 왔던 작금의 예술은 사장될 수밖에 없죠. 예술이 별겁니까? 같이 신나게 즐기면 되는 거죠.”
이는 광주 창작센터 일원들만의 생각이 아니다. 사실 지나치게 단정한 미술관이나 화려한 공연장 앞에서 머뭇거리다 뒤돌아선 사람들이면 다 동감하는 부분 아닌가.
서울과 이천, 부천에 이어 전국에서 네 번째 지부로 태어난 광주창작센터는 매주 토요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홍보관(옛 전남도청) 옆에 꾸며진 쌈지공원에서 프리마켓 ‘무등골 예술시장’을 열고 있다.
모델은 한국 예술시장의 명소가 된 서울 홍익대 앞 프리마켓. 프리마켓(free market)은 열린 공간에서 일반인 누구나 손수 만든 창작 예술품들을 전시·판매하는 예술시장이다. 수공예 창작품을 판다는 점에서 중고품을 판매하는 벼룩시장(flea market)과는 다르다.
광주 창작센터에는 최옥희(아트북), 정영옥(가죽공예), 고경주(은공예), 배수진(퀼트), 이금숙(비즈공예), 백경숙(황토염색), 김도연(한지공예)씨 등 30여 명이 생활창작아티스트로 가입해 활동 중이다. 다양한 경력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애초 예술을 전공한 작가부터 올해 처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20대 초반의 아마추어, 단순히 자신의 취미와 재능을 살린 사람들까지 다양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다.
#그림1중앙#
프리마켓에서는 금속공예, 한지공예, 도자기공예, 북아트, 염색, 퀼트 등 여러 분야의 작가들이 손수 만든 ‘작품’을 ‘상품’으로 판다. 이들은 ‘예술가’이면서 ‘상인’이다. 또 이곳은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프리마켓에서 팔리는 물건들은 옷, 컵 받침대, 열쇠고리, 수첩 등 어디서나 손쉽게 사거나 구할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작가의 손이 많이 간 귀하고 독특한 작품들이다. 따라서 보통의 예술작품처럼 단순히 전시되고 보는 작품이 아니라 일상에 쓸 수 있는 물건이다. 특히 그 특유의 키치스러움을 발산하는 물건들이 많아 수공품 마니아들에게는 최고 문화 상품으로 등극한 지 오래됐다.
여기에 프리마켓에서는 각종 공연도 열린다. 단순히 물건 구매의 장에서 탈피해, 매주 언더그라운드 공연과 예술 혹은 에코 페미니즘 관련 워크숍도 같이 진행된다. 또 작가들이 직접 시연회를 열어 시민들이 작품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말이 ‘예술’이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작가가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 예술은 신주단지가 아니라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강단진 지론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광주 창작센터는 거리문화에만 몰두하지 않기로 했다. 또 다른 문화를 탄생시키는 것보다 기존의 죽은 문화를 바꿔보겠다는 취지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갤러리를 파고들기로 했다.
오는 13일까지 광주 북구 일곡도서관 갤러리에서 권가원(일러스트페인팅), 이상목(도자공예), 황희영(핸드페인팅 생활도자기)씨 등 12명의 작가들이 첫 번째 기획전시를 여는 것. 장소만 갤러리이지, 관객을 만나는 방법은 거리에서와 똑같다. 가격을 매겨놓은 작품들을 판매하며 작품시연도 한다. 전시장 곳곳에는 온갖 표정이 담긴 머리끈과 휴대전화 고리, 그리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수첩·다이어리 등 화려한 빛깔을 뽐내는 독특한 물건들과 이를 사고파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와함께 광주 창작센터는 ‘시민참여 창작워크숍’ 등을 기획해 타 지역 프리마켓과 차별화를 둘 생각이다. 또 프리마켓 내에서 작가들의 개인 기획전도 병행할 방침이다.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 하니 자생적인 시민문화 만들기와도 딱 들어맞는다.
“광주가 문화중심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가만 많아서는 안되고 행정만 문화적으로 변해서도 안됩니다. 그곳에서 사는 시민들이 문화적으로 변해야죠. 프리마켓은 그에 대한 최고의 대안이 아닐까요?”
광주 창작센터 일원들의 되묻는 문장이 더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제발 좀 예술을 즐기면서 살잔 말이야”라는 느낌표가 따라붙는다.
(문의=010-7175-2403, http://cafe.daum.net/moodeungmarket)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