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대순의 세상보기] 위선적인 노예무역에 대한 사과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면서는 분노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대표하는 그 찬란한 문화가 다 어디 가버렸는가. 소장한 유물들이 정말로 볼품이 없다. 가을 날 들에서 이삭줍기같이 겨우 몇 점 주워 모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리스 여행은 대개 다음 코스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런던이다. 런던에 들어와 그들은 어디 보다도 먼저 대영 박물관에 간다. 그리고 그리스 수천 년의 문화, 특히 신전 하나를 뜯어다 군함으로 실어다 복원해 놓은 것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이 ‘도둑놈들’이다. 어찌 대영 박물관뿐이냐. 파리 루블 박물관도 그렇고 로마 바티칸 박물관도 그렇다.
그러나 대영 박물관 입장 관람료가 무료임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대영 박물관이 아니면 우리가 어찌 수천 년의 그리스 문화를 저렇게 효과적으로 섭렵할 수 있는가 하고 말한다.
19세기 초 시인 로드 바이런이 대표하는 그리스 독립전쟁 지원을 계기로 출병한 영국군을 수행한 고고학자들은 그리스 여기 저기 버려진 유물들을 수집해 영국으로 반입시켰다. 유물들은 개인의 소유를 금지하고 국가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해 대영 박물관에 소장전시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저 유물들이 그리스에 남아 있다면 어찌 되었겠는가를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것이다. 실사구시적 사고이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엘리자베스 시대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는 19세기라는 말을 아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상 셰익스피어까지도 19세기의 낭만주의가 있어 완성되었다는 주장도 강력하다. 그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낭만주의 사상의 시대적 배경의 하나로 영국 사람들은 1807년 3월에 있었던 노예무역 금지령을 내건다. 그들은 아직 노예무역이 성행하고 있을 때 의회에서 노예 무역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리하여 해군으로 하여금 노예무역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적도 인근 가나 이웃에 세라레온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 내가 여행한 적이 있는 그 나라의 수도는 프리타운인데 영국해군이 노예무역을 단속해 노예선을 나포, 그 안에 묶여 있던 노예들을 일단 적당한 항구를 정해 거기에 풀어놓고 수용한 곳이다. 그러나 서로 언어도 통하지 않고 식량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고 수용된 입장에서는 생활이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상 ‘그 놈이 그 놈이’라 고마울 것도 없었고 노예무역 금지는 영국 국내 정치적 이상주의에 불과한 셈이다. 프리, 즉 자유라는 개념의 위선적 애매성이기도 하다. 오늘 세라레온은 아프리카 최악의 내전국의 하나다.
미국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즉 아프리칸 아메리칸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만일 그들의 선조들이 불행하였던 그 이주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흑인들이 어찌 세계 제일의 미국인으로 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의 자손들이 아직 아프리카에 남아 수단에서, 콩고에서, 세라레온에서, 가나 등에서 살면서 그 원시적 생활과 가난과 그 질병과 내전의 그 무수한 살생과 같이 살고 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하는 것이다. 서양의 범죄적 역사를 가리려는 악랄한 발상이다.
영국 블레어 수상이 노예무역 금지령 의회 통과 200주년을 기념해 영국의 노예무역에 대한 사과를 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블레어 수상은 과거 국제적인 노예사냥꾼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명예를 기리는 카리부 국의 유엔결의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천5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예무역에 대한 범죄를 이제 와서 사과정도로 될 일인가는 의문이다. 서양제국은 역사적으로 사과할 일이 많다. 사실 365일 사과만 해도 부족할 것이다. 일본도 그렇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이라크처럼 그들의 말대로 잘못된 정보로 침공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일 또한 사과해야 할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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