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지적(地籍) 원점이 100년만에 설치됐다. 전남도가 지난주 지적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표준 세계측지계를 적용해 새로운 ‘남악 원점’을 설정한 것이다.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1000번지 전남도청 앞 잔디광장에서 ‘남악 원점’제막식도 가졌다. 이로써 100여년 동안 우리나라 지적측량 기준으로 사용돼왔던 동경(東京)측지계가 드디어 폐지됐다. 그 동안 세계측지계와 남동 방향으로 365m에 달하던 편차도 개선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제(日帝) 잔재를 청산했다는 의미가 대단히 커보인다. 도는 ‘남악 원점’에 이어 상징적인 차원에서 조만간 해남에 ‘땅끝 원점’, 장흥에 ‘정남진 원점’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원점(原點)이란 길이 따위를 잴 때에 기준이 되는 점이다. 나아가 시작이 되는 출발점, 또는 근본이 되는 본래의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뒤늦은 감은 있으나 측량의 기준을 찾아 지적상의 독립과 자존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전남에 필요한 ‘원점’은 이들 말고도 또 있다. 그것도 아주 시급하다. 다름 아닌 ‘개발(開發) 원점’이다. 우리 나라 개발 원점은 누가 뭐래도 서울과 부산이다. 이른바 경부축(京釜軸)이다. 이건 군사독재시절에 만들어졌다. 100년까지는 안되지만 40년은 족히 되고도 남는다. 대한민국 국토개발의 출발점이나 근본이 됐던 지역들은 그렇지 못한 지역들에 비해 그 동안 엄청난 혜택을 누려왔다. 그리고 이 원점은 균형발전을 얘기하는 지금에 와서 지역간 경쟁력의 격차를 극도로 벌려놓은 주범이 돼버렸다. 이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도 인정하고 있는 바다. 지난번 무안 목포 신안 중심의 ‘서남권 종합 발전 구상’을 내놓으면서 “…70년대 이후 수도권과 영남, 충청권이 중심이 된 개발축을 서남권 및 호남으로 연장해 다핵(多核)형 국가발전을 추진…”이라고 시인했었다. 그러면서 이 지역의 개발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엊그제 목포와 무안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호남 발전의 레일을 깔겠다’, ‘호남 발전의 이정표를 세우겠다’며 온갖 덕담을 해주었다.
그러나 곰곰이 살펴보면 항시 그래왔듯이 이러한 약속들에선 짙은 시혜성(施惠性)이 느껴질 뿐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개발 원점에서 연장을 시켜보겠다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원점 자체를 바꿔보겠다는 ‘혁신적 발상’은 엿보이질 않는다. 진정으로 호남 발전의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의지가 확실하다면 국토개발 역사상 처음으로 ‘호남 원점’을 설치하는 용기도 내봄직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참여정부 지난 4년간에 국토 개발상 동남방향과 수천 수만km에 이르는 편차의 개선을 시도했어야 했다.
이 같은 개발 원점 설정은 ‘적극 지원’, ‘조기 착공 검토’,‘세제 혜택 검토’ 등등의 립서비스와는 질적으로 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그토록 호남이 중요하다면 한번 생각을 거꾸로 바꿔 국가 발전의 기준점을 호남에 두고 모든 정책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수도권과 영남에 키를 맞추는 개발이 아니라 호남 자체가 새로운 개발축이 될 수 있는 정책발상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게 안되면 이 지역은 평생 ‘예산을 한푼도 깎지 않겠다’느니 ‘부지 양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는 정도의 선심을 구걸하는 운명밖에 되지 못한다.
하기야 광주를 문화의 수도(首都)로 만들어 주겠다는 대선 공약도 지금은 문화중심도시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바뀌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판이다. 이제 1년 남짓 남은 참여정부가 이러한 발상의 대전환을 이루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마침 지적 원점을 100년만에 바꿨다고 하니 40년의 불균형 잔재도 털어버리는 게 어떨까 싶어 넋두리를 해봤다. 어쨌든 ‘생각을 달리하면 미래가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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