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 자궁에 아이를 가져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임산부의 마음이 이러할 게다. 내가 한 편의 소설을 잉태 했을때 느끼던 그런 환희 말이다. 지금의 생활은 참으로 행복하다.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름 모를 들꽃이며 곰상곰상 기어다니는 개미들, 그리고 끝까지 배신없는 자연의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사랑하고 버릴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때론 코 끝 진한 ‘사람 냄새’가 그리울 때도 있긴 하지만….<작가의 독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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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소설가 은미희씨(41), 그녀는 지역에서 소설쓰는 몇 안되는 여류작가이다. 아니, 어쩌면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출신의 유일한 작가라고 표현 함이 옳으리라.
끈임없는 가슴앓이와 고뇌, 그리고 그 속에서 건져올린 삶의 편린들…, 이 모두가 소설의 소재가 되어 오뉴월 아이스크림 처럼 독자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녹아내리고 있다.
때론 길가에 쓰러져 있는 ‘거리의 철학자(행려병자)’라든지, 기차역 대합실의 노숙자, 성장이 멈춰버린 어느 고아 소녀의 애절한 삶 등이 모두 그녀가 찾는 글감들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지만, 그녀는 어느것 하나 예사롭게 넘기질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에는 문제의식이 있고 날카로운 비수가 숨어 있다. 작가 역시 생활인이기에 시대의 조류에 한번쯤 눈을 팔 법도 하겠지만, 치열한 작가정신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 까닭인지 그녀의 소설은 어둡고 침울하며, 깊은 한 숨이 배어있다.
몇 번의 취재 요구에도 ‘별로 내세울 게 없는데…’라며 한사코 겸손한 미덕을 보인 작가 은미희.
그런 그녀에게 최근 감당못할 반란(?)이 찾아들었다.
한국비평문학회에서 그의 단편소설‘뿔 없는 염소’(‘라쁠륨’지 2000년 여름호 발표)를 ‘2000년을 대표하는 문제소설 10편’ 중 하나로 선정했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비평가들의 조명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겠지만, 그녀의 입장은 다르다.
‘부끄럽다’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다. 처음 구상했던 의도대로 잘 되질 않았단다. 못생긴(?) 자신의 알몸을 독자들에게 보여준것 같아 창피 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소설로 선정된 ‘뿔 없는 염소’의 줄거리는 읽는 이의 가슴을 달구기에 충분하다.
성장이 멈춰버린 20대 초반의 고아 출신 여자가 사회의 냉대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 관념에 젖어 정신적 성장이 멈춰버린 사람들을 통해 ‘행복은 볼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라는 평범하면서도 감동 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쯤해서 최근 그의 주변에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그녀는 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에 앞서 한국여성문학상(소설부문)을 비롯 광남문학상(중편소설 부문), 9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부문) 등을 거머쥐었다.
여느 작가들 같으면 여기서 받은 상패들을 애지중지 관리하며 두고두고 지인들에게 자랑을 할터이지만 그녀는 지난 겨울, 4개의 상패를 모두 폐기 처분하고 말았다.
“상패는 작가로서의 탄생을 인정해 주는 기념품에 불과 합니다. 주제넘은 얘기지만 문학예술을 점수로 환산 한다는 그 자체가 몹시 싫습니다. 작가는 무한의 상상력과 체험을 통해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건져내야 합니다. 고여있는 물은 썩기 쉽듯 작가들의 정신도 어느 일정한 테두리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상패를 볼때마다 ‘등단 작가’라는 의식이 머리속에 남아 자칫 나태해질 수도 있겠더라구요. 그래서 등단 전의 초발심을 갖기 위해 상패를 모조리 버렸죠.”
그녀의 글쓰기기는 참으로 독특하다. 지금도 연습장에 깨알같은 글씨로 초고를 엮어낸다. 그리고는 노트북에 입력할때 다시 손질을 하며 작품을 완성시켜 나가는 버릇을 갖고 있다.
은씨는 다음달께 문예지 ‘미네르바’봄호에 단편소설 ‘석상의 시간’이 발표될 예정이다. 또 최근 탈고한 1천500매 분량의 장편소설 ‘비둘기 여인숙’(가제)과 현재 집필 중인 500매 분량의 중편소설 ‘소수의 사랑’을 문예지를 통해 곧 독자들에게 선보일 참이다. /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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