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으스러질 듯/
못 생긴 산과 하늘 부둥켜안으며/
배꽃들은/
황토산 자락에/
연분홍 첫사랑의 숨결을 토해놓지/
<곽재구 시인(순천대 문창과 교수)의 ‘배꽃’가운데>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이른 더위에 이어 꽃샘추위가 한차례 스쳐 지난 12일 오전.
나주로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제주도 한라산에 눈이 내렸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이어 아나운서는 “지난 밤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진 한라산 어리목 등에는 가지마다 눈꽃이 만발해 장관을 이루었노라”고 전한다.
멘트가 끝날 무렵 때마침 국도 1호선 광주-목포간 도로 나주 금천에 접어들자 능선을 굽이쳐 붉디 붉은 땅이 온통 하얀세상이다. 야트막한 구릉마다 하얗게 뒤덮여 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눈꽃에 덮인듯-.
이쯤 되면 눈꽃이 아니라 ‘대설주의보’ 감이다.
굽이굽이 이어진 구릉마다 목화송이 같은 배꽃으로 뒤덮여 가고있다.
바야흐로 배꽃으로 열린 ‘배고을’나주에 봄이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영산강이 가로지르는 ‘목사골’ 나주의 배꽃단지는 금천, 영산포~영암으로 넘어가는 세지, 왕곡면 일대에 몰려 있다. 광~목간 국도, 영산포~세지간 도로를 가다보면 그저 차를 세우고 싶을 따름.
눈길 주는 이 없이 온통 벚꽃에게 눈길을 쏠려 있을 때 배꽃은 살포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벚꽃이나 매화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굵은 가지마다 송이송이 맺힌 꽃송이란 은은한 멋을 더한다.
과수원 사이로 언뜻 보이는 진분홍 복사꽃도 색깔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번 주말이면 만개해 절정을 이루리라.

나주에서 배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일제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른 평야와 얕은 구릉이 펼쳐진 나주는 배를 재배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일조량이 풍부한 데다 호남의 젖줄인 영산강이 가로질러 물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
현재 900여만평의 과수원에서 자그마치 5만여톤이 넘는 배를 생산한다. 전국의 16%를 웃도는 양으로 황금배, 신고배 등 종류도 가지가지. 최근엔 해외 수출길도 열렸다.
금천면과 영산포에서 영암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세지면, 봉황면에 과수원이 많다.
나주에서 영산포로 가는 길에 빼놓을 수 없는 두가지가 있다.
나주시청앞 완사천과 영산강 둔치의 유채꽃밭.
와사천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태조 왕건’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곳.
나주에 입성한 왕건에게 오씨부인(오다련의 딸로 왕건의 둘째 부인이자 2대 혜종을 낳은 장화왕후)이 이 우물에서 버드나무 잎을 띄워 물을 줬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벚꽃잎에 덮인 우물은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 한숨을 돌리기에 적합하다.
또 한가지는 영산강 둔치. 그곳엔 유채꽃이 흐드러졌다.
7만여평의 둔치에는 온통 노오란 꽃물결로 출렁인다. 꽃밭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속이 출출할 경우, 떠오르는 것은 나주곰탕.
시의회 앞의 하얀집, 시장통의 나주곰탕 등 무쇠솥에 푹 고아 낸 사골국물이 맑은 게 특징이다.
영산포~세지에서 다도댐(나주호)으로 향한 후 나주호 주변에는 민물고기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도 많다. 인삼, 대추, 밤 등을 넣고 푹 고아낸 가물치찜은 나른해진 기운을 붇돋우는데 제격일 듯.
풍요로운 봄나들이는 그리 먼곳이 아니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