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


남도일보가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에 있는 운천(雲泉)저수지 옆의 건물로 사옥을 옮겼다. 내려다보이는 저수지의 풍경이 아름답다.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탓에 철따라 피어나는 꽃들이 보기에 좋다. 봄이면 벚꽃이, 여름이면 홍련이, 가을에는 홍엽(紅葉)이, 겨울이면 설화(雪花)가 가득하니 정취가 제법이다.
물가를 감싸 안고 있는 1천여m의 산책로는 마음을 달래주는 길이기도 하다. 연꽃 모양의 전망 테크에서는 물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저수지 가운데로 갸웃 고개를 내밀고 있는 정자는 절로 한시(漢詩)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여름밤이면 음악에 맞춰 분수에서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물을 뿜어내니 이 또한 장관이다.
물과 숲과 꽃, 음악, 그리고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웃음이 가득하니 가히 신명승지(新名勝地)라 할 만 하다. 조금 과장하면 예전에 들렀던 중국 항주(杭州)의 서호(西湖)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다. 크기야 비견할 수 없지만 아기자기한 맛은 운천이 서호보다 좋은 듯싶다. 서호가 서시(西施)를 기리는 호수라면 운천은 광주에 사는 가인(佳人)들의 호수다.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상무대 육군보병학교에서 교육을 받던 청년시절, 운천저수지를 참 많이도 지나쳤다. 지금의 금호지구에는 백일사격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주로 사격훈련을 했다. 화순에서 유격훈련을 마치고 상무대로 행군해올 때, 마중 나온 군악대가 서있던 곳도 저수지 앞길이었다.
30여 년전, 아내와 데이트를 즐겼던 곳도 운천저수지 뒤쪽의 논두렁이었다. 화정동에서 넘어오는 잿등 야산 뒤쪽으로는 논과 밭뿐이었는데 그 곳에는 물레방아가 있었다. 꿈 많던 소녀였던 아내는 물레방아 옆에 머물며 들꽃으로 반지 만들기를 즐겨했다. 꽃반지 낀 손을 잡고 논두렁과 밭두렁을 걷다보면 도착한 곳이 운천저수지 주변이었다.
예전의 운천저수지 주변은 다소 황량했다. 손님을 기다리던 보트 몇 척만 놓여 있었을 뿐 이렇다 할 시설이 없었다. 건너편 상무대 위병소 앞쪽으로 식당과 상점, 군복맞춤 가게, 허름한 여인숙 몇 곳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곳이 지금은 광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됐고 저수지 또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로 바뀌었으니 세월의 힘이 크다.
바뀐 저수지 풍경 중의 하나는 범선카페가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 카페는 몇 년 전부터 주 메뉴를 전복요리로 바꿨는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출입한다. 휘영청 보름달 뜬 밤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먼발치에 있는 상무지구의 네온불빛이 이화(梨花)를 대신할 터이니 월백(月白)아래 삼경(三更)의 낙락(樂樂)을 즐기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듯싶다.
남도일보의 사옥 형태 역시 배(舟) 모양이다. 듣기로는 이 건물을 지었던 이가 풍수지리에 맞췄다고 한다. 수세(水勢)에 응해 배 형상으로 건물을 지었다. 네모반듯하게 건물을 짓지 않고 한껏 모양새를 내 선수(船首)라 할 만한 베란다를 각 층마다 내 놓았다. 한 눈에 보아도 출항을 앞둔 배 모습이다.
오는 10일이면 창사 14주년을 맞는 남도일보가 제 자리를 찾아 온 것 같다고 말하면 지나친 아전인수(我田引水)일까? 13년 동안 격랑의 바다를 항해하다 잠시 닻을 내리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다시 출항준비를 하고 있다고 여기고 싶다. 선원격인 기자들이나 선장격인 경영진들이나 모두 호흡을 다시 가다듬고 저 거친 세상으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항해여건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거대자본을 앞세운 중앙언론의 시장지배와 실시간 소통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의 발달로 지역 언론의 입지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광고시장의 한계로 경영난 역시 여전하다. 이러다보니 항해를 앞두고 있지만 배에 실은 물과 식량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러나 돛을 올리고 있는 우리 선원들의 팔뚝에는 힘이 넘쳐나고, 서로를 아끼고 돕는 마음은 깊다. 노도(怒濤)와 강풍(强風)을 함께 이겨낸 동료애, 그리고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은 소중한 자산이다. 운천저수지 곁에 새로 둥지를 튼 남도일보가 세상이라는 바다로 성공적으로 출항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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