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상징성을 가진 것처럼 오월도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세기의 불멸의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엘리어트의 장시 ‘황무지’의 첫구절에 나온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것에서 연유된 사월은 본래 아주 역설적 의미를 담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는 가장 생명적이고 활기에 찬 4월을 ‘잔인한 달’로 얘기한 근저에는 현대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담겨져 있다. 엘리어트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물질과 정신이 황폐화된 현대의 공황을 황무지란 공간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이 황무지에서는 오히려 망각상태의 겨울잠이 달콤할 것이다. 그러나 4월은 긴 동면에서 깨어나는 달이니 묻어두었던 상처와 아픔이 얼마나 클 것인가. 잔인한 달이라 할만하다.
오월은 어떤가. ‘계절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꽃이란 꽃들이 화들짝 피어났다가 꽃비로 날리더니 어느새 초록기운이 천지간을 뒤덮어 우리 일상을 푸르게 바꾸어 놓는다. 햇살은 그 위에 은실을 골고루 펼친다. 삼천리가 온통 꽃향기, 풀향기에 둥둥 떠나갈 듯하다. 남도에서는 일제히 이에 맞춰 축제가 벌어진다. 담양의 죽향축제, 함평의 나비축제, 장성의 홍길동축제, 보성의 다향제 등등 이곳 저곳에서 흥겨운 노래가락과 볼거리 먹을거리로 북새통을 이룬다. 우리나라 지역축제는 412개나 된다고 한다. 그중 전남이 51개 광주가 7개 란다. 5월에는 서울의 아리랑축제, 관악산 철쭉제 등 총 62개의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가히 5월은 축제의 달이라 할 만하다.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남도의 오월은 암울한 달이었다. 아니 황무지의 그것처럼 잔인한 달이었다. 잊을만하면 다시 살아오는 악몽같은 핏자국이 붉게 하늘을 뒤덮는 달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이곳 저곳의 축제 물결에 뒤덮혀 오월 항쟁의 아픈 상처도 결코 도드라져 보이지가 않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그 상처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정말 이제는 감쪽같이 그 아픈 상처가 다 깡그리 잊혀진 것일까.
오월단체에서는 ‘5·18 민주화유공자예우법’ 제정 무산에 따른 항의 표시로 국회 의사당 앞에서 이번 기념식을 하겠다고 결의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풀리지 않는 앙금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정말 대자연이 꽃을 떨구는 아픔을 견디고 연초록으로 생생하게 거듭나는 이 계절에 대자연이 그런 것처럼 과연 우리는 축제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가. 묵은 등걸의 미움과 반목을 밀어내고 새 믿음의 싹을 키울 준비를 조금이라도 해왔던가. 여전히 우리는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쪼개져 있다. 우리의 조그만 가정들도 학교로 일터로 거리로 뿔뿔이 흩어져 나무 그늘 아래서의 정담 하나 나눌 시간 없는 삭막함에 둘러 쌓여져 있다. 밖에 보이는 우리의 주변 여건도 여건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흥성스러운 축제를 불러들일 변변한 공간 하나 없다는 것이다.
축제가 무엇인가. 축제는 하나됨이다. 너와 내가, 가족이, 이웃이, 지역 공동체가 하나되는 자리이다. 원래 축제가 갖고 있던 주술성이나 제의성은 그 의미가 퇴색됐다 할지라도, 그리고 거기서 더 양보해 전통문화의 보존 등을 포기한다하더라도 변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너와 나의 막힌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는 대동의 정신이다. 그것이 없다면 ‘축제’라고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적, 관광적 필요성을 자꾸 들먹거리지만 본 바탕이 어그러지면 그것은 축제라고 부를 수 없다. 축제는 그러므로 화해와 자유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살맛나는, 흥겨운 굿판이어야 한다.
축제와 광주의 5월에는 메울 수 없는 강물이 아직도 흐르고 있다. 누가 이 강을 쉽게 건너 상대편의 가슴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하나 되어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그 아픔을, 그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북한 백두산에도 오월에는 눈이 녹아 내린다. 장백폭포의 뜨거운 물줄기에 훈김이 오르며 산은 제 맨가슴을 드러내며 길고 긴 동면에서 깨어나 제 모습을 드러낸다.
백두산 흘러내린 물이 한반도의 겨울을 몰아 가듯이 이 오월에는, 이제는 다가가야 하고 이제는 불러와 앉혀야겠다. 내가 아이와 이웃에게 다가가야 하고 여유 없고 빠듯한 생활이지만 풀꽃 하나 우리 마음속에 키워야겠다. 밖에서 날카로운 소리로 오는 축제가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융융하게 넉넉한 물살로 오는 축제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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