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피해사례 속출

"사람들은 '을'의 땡깡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겐 생계가 달린 문제입니다"

상가 건물주인 가수 '리쌍'이 해당 건물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던 임차인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피해사례 보고대회'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렸다.

이날 보고대회에 참석한 임차인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피해사례를 발표하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이거나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이들은 "최근 논란이 된 '리쌍' 관련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유명무실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곱창집을 운영하고 있는 서윤수씨는 "언론 보도 후 일부 사람들은 '을'이 땡깡을 부리고 있다고 하는데 너무 억울하다"며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지난 2010년 11월 곱창집을 창업했다. 그간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돈에 대출까지 받아 권리금 2억7500만원, 시설투자비 1억여원이란 큰 돈을 들여 시작한 장사였다.

그는 큰 비용을 투자해 시작한 장사인 만큼 임대인에게 5년간 계약을 맺을 것을 요구했다.

임대인은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실제 임대차 내용은 보증금 4000만원, 월세 300만원 이었지만 월세를 100만원 줄인 200만원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했다.

임대인은 "이렇게 계약서를 작성하면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보호 범위 안에 들기 때문에 최소한 5년은 장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자 건물주는 세금계산서 상 임대료를 월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조정할 것을 요구했다.

서씨는 "사업 초기라 바빠 별 생각 없이 임대인의 요구대로 해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원활한 매매 계약을 위해 임대차 계약 내용을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보호 범위 밖으로 만들려 한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 후 해당 건물은 '리쌍'에게 팔렸다. 리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씨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서씨는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때문이라면 공사에 적극 협조하고 공사가 끝난 뒤 다시 들어와 그에 상응하는 임대료를 내고 장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저 나가라는 말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법적 조치까지 고민하던 서씨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보장된 5년간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결국 환산보증금(3억4000만원)이 3억원을 초과해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서씨는 "단 5년이라도 열심히 장사해서 그 이후에는 권리금도 받지 않고 나가겠다는 마음도 있다"며 "법에 나와 있는 것처럼 최소한 5년은 장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이선민씨는 법적 투쟁까지 벌이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09년부터 인테리어 비용 2000여만원, 설비 비용 6000여만원을 투자해 친구와 함께 카페를 열었다.

카페를 시작하고 8개월이 지났을 즈음 이씨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카페 건물주는 "내가 거주하는 상가 옆 단독주택이 장마를 못 버티고 무너지게 생겨 주택과 주변 상가를 모두 허물고 63억 짜리 빌딩을 지어야 하니 2개월 안에 가게를 비워 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건물주의 부탁에 '오죽하면 우리에게 나가라고 할까'란 생각이 들어 대신 인근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1500만원을 받고 나가라는 말 뿐이었다.

이씨는 억울했다. 생계의 터전을 잃고 하루아침에 거리에 내몰리게 돼 막막하기만 했다.

이씨는 "건물주는 현실적인 이주보상을 보장해야 한다"며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예외조항은 위헌인 만큼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고 밝혔다.

제주도에서 8개 영세 상인을 대표해 서울로 올라온 박성준씨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제주시 연동 일명 '바오젠거리'에서 조그마한 꼬치집을 운영하던 박씨는 장사를 시작한지 1년만에 가게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상가를 매입한 새로운 임대인이 상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점포를 반납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박씨는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상인들은 결혼 자금을 투자하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돈으로 장사를 시작한 영세상인"이라며 "새로운 임대인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이용해 우리를 내쫓으려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체 이 법이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인지 모르겠다"며 "5년을 보장하는 조항 조차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수많은 예외조항을 가진 해당 법안은 즉각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2조(적용범위)'다.

법에 따르면 환산보증금 3억원이하(서울기준) 임대차계약에 대해서만 5년까지 계약갱신청구권과 임차료 상승률 9%가 적용된다.

그러나 서울지역 상가의 75%가 환산보증금이 3억원 이상이라 보호 대상에 포함되는 상가는 4분의 1에 불과하다.

시민단체들은 "일방적 계약해지 및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방치하는 제2조를 폐지하고 재개발, 리모델링으로 인한 계약갱신 거절 사유를 축소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날 보고대회에 참석한 진보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법 자체가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돼 있어 소송까지 가면 임차인에게 매우 불리하다"며 "보고대회를 통해 들은 다양한 피해사례를 반영해 내달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보고대회를 마친 후 같은 장소에서 민주통합당 의원들과 만나 긴급간담회를 가졌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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