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문창극씨가 총리후보로 지명된 사실을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 있으면서 들었다. 덴버 취재를 마친 다음 날,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살고 있는 박토마스 형이 기자를 데리러 먼 길을 달려왔다. 5년 만에 대한 형이었다. 기자가 덴버에서 발행되는 한인신문사의 기자로 일할 때는 어렵기만 한 사장님이었는데 기자가 귀국한 뒤로는 그리움 때문이었는지 그냥 형·동생 사이가 돼버렸다. 형은 흰머리가 더 많아졌지만 대나무 같던 선비의 기개는 여전했다.
서로 궁금한 것을 다 주고받은 뒤에 형은 문창극씨 이야기를 꺼냈다.
“L씨 알지?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는데 그 친구가 오늘 아침 메일을 보내왔다. 그 친구, 문씨와 같은 신문사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한 탓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너무도 잘 알더라. 결론은 총리로는 천부당만부당한 그릇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인간이 총리로 지명되는 나라, 이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고 하더라. 각설하고, ‘일제 식민지배는 신의 뜻이다’라는 식의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총리로 지명된 것은 나라의 수치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형은 비통해했다. 어디 형뿐인가? 많은 이들이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 역사관을 지닌 인사를 총리후보로 지명하는 정권의 천박함에 대한 환멸감도 크다. 여당은 문씨의 과거발언들에 대해 해명기회를 줘야한다고 딴죽을 걸고 있지만, 그 자체도 속 뒤집는 소리다. 해명이 아니라 사죄여야 한다. 사죄와 함께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 광복 후 70년 동안 우리가 지켜오던 항일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사람이 총리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기자는 지금 미국에서 120여 년 전, 일본으로부터 조선의 국권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미국 내 애국지사와 한인노동자들의 삶을 취재하고 있다. 특히 네브라스카와 하와이 등지에서 한인군사학교를 세우고 항일독립전쟁을 준비하던 박용만 선생의 발자취를 쫓는데 주력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국가개혁의 방안을 그의 실천적 나라사랑과 사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며 1개월 정도의 취재활동을 벌이고 있다.
박용만 선생은 ‘무형국가론’을 제창했다. 국가는 백성·정치기관·토지(국민·주권·영토)등 3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일본에 빼앗기고 말았으니 재미한인들이 자치정부를 수립해 무형국가의 틀을 갖추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문화·경제혁명을 통해 무형국가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인들이 정치적으로는 평등해야 하며, 경제적으로는 부를 축적하되 공정하게 분배해야 하고, 문화적으로는 한글과 우리문화를 잘 보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자는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위기를 극복하기위해서는, 다시 말해 국가개혁의 방안을 박용만 선생의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국가개혁의 진정성에 심각한 의구심이 든다. 이 정부가 말하는 국가개혁은 친일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역사관과 경제관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국가개혁과 이 정권이 의미하는 국가개혁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기자는 미국취재를 시작하기 전 동학혁명과 관련된 책 한권을 집필했다. 원고를 탈고한 다음 날 미국으로 건너왔다. 최근 기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일본의 조선 침략사와 항일 애국지사들의 삶이다. 일본군의 기관총 앞에 죽창을 들고 맞서 싸웠던 동학혁명군과 무등산·어등산 항일의병들의 처참한 죽음 앞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다. 미국과 멕시코, 만주와 블라디보스톡 등지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피땀을 쏟던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삶 앞에 저절로 무릎이 꿇어지는 날이 많다.
그런데 이 정권은 조선의 국권을 늑탈하고 민족혼을 말살한, 그 잔인하고 잔인했던 일제의 침략을 ‘신의 뜻’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국무총리로 삼으려 하고 있다. 그의 발언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권력은 문창극을 감싸고 있다. 그가 총리가 되면 우리가 지켜왔던 애국과 항일의 가치는 쓰레기가 돼버린다. 박용만 선생에게 물으면 어떤 대답을 줄까? 선생은 “일제지배를 찬양하는 이들에게 절대로 나라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혀를 깨물며 답할 것이다. 이제 국가개혁은 국민들이 시작해야 한다. 뒤늦었지만 그 첫 발 걸음은 친일파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이다. 정권의 몰 역사성에 대한 심판도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최혁<주필>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