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이 피땀으로 세운 대한민국, 우리가 잘 지켜야 한다 21. 선인들의 나라사랑과 건강한 대한민국(完)

自强정신, 열강 극복 위한 원동력 삼아야
나라사랑 정신으로 건강한 나라 세워야

 

▲ 박용만선생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다바쳤다.미국 네브라스카와 하와이주에 군사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했다.중국과 러시아등지에도 군사학교를 마련하려 애를 썼다.선생은 시대를 각종 저술과 신문사설을 통해 민족계몽활동을 펼쳤으며 시대를 꿰뚫는 탁월한 안목으로 국제 정세를 내다보고 이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했다.

20회 동안 계속된 ‘한인 미국초기 이민자들의 항일독립운동과 나라사랑’ 기획물은 박용만 선생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들의 한 많은 인생역정과 나라사랑 정신을 소개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의 비참함과 어떻게든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한인들의 노력을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일제가 조선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기 시작한 1902년, 조선을 떠나 하와이로 이민 간 한인들은 악착같이 일하면서 살아남았다. 피땀을 흘려 벌어들인 돈이었지만 조선독립을 위한 일이라면 아낌없이 내놓았다. 고된 농장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른 아침과 저녁에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박용만 선생은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덴버와 네브라스카, 하와이 등지에서 민족혼을 고취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네브라스카에서는 한인소년병학교를, 하와이에서는 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해 독립전쟁을 수행할 군사를 양성했다. 또 각종 사설과 저술을 통해 민족혼을 깨우치고 조선민족을 개화하는데 앞장섰다.

박용만 선생은 해외 무장독립투쟁의 선구자였다. 네브라스카 주립대학에서 예비역무관후보생과정(ROTC)을 밟으면서 체득한 군사지식과 경험을 소년병학교 학생과 대조선국민군단 단원들에게 가르쳐 실전투입이 가능한 전투 병력으로 키웠다. 또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투쟁의 기지로 삼으려 했다.

선생의 무장투쟁 독립노선은 이승만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외교적 노력에 의해 조선독립을 이끌어 내려 했으나 박용만 선생의 초기노선은 군사력 배양을 통한 자주적 독립 쟁취였다. 1915년 이후 선생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 공산당 등을 이용해 조선독립을 달성하려는 시도를 벌이기는 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기본사상은 자주적 독립 쟁취였다.

선생의 사상은 깊었고 시대를 꿰뚫어보는 시선은 냉철했다. 선생은 교육과 문명화만이 조선을 선진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을 중시했다. 미국과 일본이 동맹관계였던 1910년 대에 이미 먼 훗날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치를 것을 예상하고 이에 대해 준비했다. 선생은 미국을 도와 일본과 전쟁을 치르면 조선독립을 주체적으로 성사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박용만 선생의 사상과 예지는 오늘날 우리들이 국가의 주권을 지키고 세계 열강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나라를 지키는 힘을 키우는데 게을리 해 결국 왜로부터 침략을 당했다. 6·25전쟁 때도 북의 남침에 철저히 대비하지 않아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국민들은 무력 적화통일을 이루려는 북한정권의 실체와 호전성을 망각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위험스러운 정당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통진당 해산결정은 우리사회의 종북 인사들을 퇴출시키는 계기가 돼야한다. 종북 인사들의 최종목표는 우리사회를 북한식의 사회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은 ‘내부의 적’을 제거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황선, 신은미씨처럼 트로이 목마 안에 ‘불온한 사상과 왜곡된 정보’를 싣고 와 우리 사회를 붕괴시키려는 시도들에 대해 잘 대처해야 한다. 박용만 선생이 주장했던 자강(自彊) 은 ‘6·25 전쟁의 참혹함과 공산주의의 정체를 망각하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는 경계로 삼아야 한다.

자강은 또한 군사력을 키워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에 맞서 대한민국의 국민과 국익을 지킬 수 있다는 국가안보측면에서 이해돼야 한다. 선생을 중심으로 한 조선인들의 뜨거웠던 나라사랑 정신은 이 나라를 멍들게 하고 있는 개인주의와 한탕주의를 척결하는 쇄신수단으로 거듭나야할 필요가 크다.

지난 6개월 동안 연재된 이 시리즈는 많은 분들의 도움과 협조 덕분에 가능했다. 박용만선생기념사업회의 한애라 선생과 미국 L.A의 민병용 관장,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박토마스선생과 김인자선생 부부, 네브라스카 링컨한인교회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자료수집을 위해 애써준 최찬송 양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네브라스카 소재 커니시에 있었던 소년병학교 학생들의 사격훈련 모습.커니시 농장에서 일하면 군사훈련을 받던 소년병학교 학생들은 후에 모두 한국과 미국한인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 네브라스카 헤이스팅스 대학 구내에서 운영되던 소년병학교 교관과 학생들.박용만 선생을 비롯 동학농민군과 구한말 군인 출신들이 교관을 맡아 과목별로 군사훈련을 시켰다.
▲ 박용만 선생은 1914년 하와이 아후이마누 농장에서 대조선국민군단을 설치하고 300여명의 한인 노동자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며 조국광복전투에 참여할 그날을 준비했다.
▲ 아후이마누농장에 있었던 대조선국민군단은 일본의 방해로 1915년 카훌루로 옮겨 명맥을 유지하다가 그해 마침내 문을 닫게 된다.대조선국민군단 단원들이 열병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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