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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7·혁명속 인연>

잠시 김 비서가 들어와 케익 한 조각과 커피를 탁자 위에 다소곳이 올려놓았다.
이내 정길에게 퇴근을 고하고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정길이 탁자를 바라보니 메모와 담요가 놓여 있었다. 정길은 메모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장님 이럴 때일수록 건강 유념하세요!”란 글귀였다.

갑자기 정길은 허기가 밀려와 탁자 위 케익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삶의 근본은 의식주의 기본적인 해결이란 걸…. 난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누구를 위해 사는 걸까. 돈에 대한 욕망일까? 괴물로 변해버린 나의 모습이 커피잔 속 피어오르는 향기처럼 정길을 괴롭히고 있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사무실 전등 스위치를 끄고 이내 책상 뒤에 있는 회전의자를 창가 쪽으로 돌리며 유리창 밖 남산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피곤이 물밀 듯 밀려와 정길의 육신을 괴롭혔으나 다시 담뱃불을 댕기며 저편 기억 속 윤희를 그려 나갔다.
정길 일행은 수원에서 기다리던 길문과 만나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길문은 혼자였다.
“최형! 사모님과 아이는요?”
“이 상황이 안 좋아서 어제 부산으로 먼저 보냈네.”
그랬다. 그는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상황이란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처와 아이를 하루 전 후퇴하는 경찰 트럭에 실려 보냈다.

길문이 이렇게 우리를 기다릴 위인이 아니었는데 무엇 때문에 우리를 반갑게 맞이 한 것일까! 정길은 내심 의아해 하면서도 끝내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피난길에 오른 지 3일째 되는 날 우리 일행은 대전을 지나 충청도 옥천 땅, 금강이 흐르는 인근 하천에서 하루를 유숙했다. 그날따라 날씨는 무덥고 한여름 칠월로 접어들고 있는 터라, 임신한 아내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사장님 기름이 거의 바닥입니다.”

정길은 피난길을 너무 정신없이 나서면서 차량의 연료를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
아니 윤희를 기다리는 바람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트럭으로 삼십여 분 거리의 미군 주둔지로 가서 기름을 보충하기로 하고 길문에게 윤희를 부탁하고 운전기사와 함께 길을 나섰다.
당시 정길은 미 군정청에 납품을 하면서 미군들과의 교류가 활발한 터라, 쉽게 연료를 보충하고 돌아왔다.
제법 해는 넘어가고 어둠이 강바람을 따고 상륙하고 있었다.

정길은 더위에 지친 임신한 윤희를 위해 미군에게 초코릿을 얻어 윤희에게 줄 심산이었다. 정길이 주위를 둘러보다 아내가 보이지 않자 내심 걱정되기 시작했다.
숙소 주위는 살피기를 수차례, 그녀가 보이지 않아 인근 나무가 울창한 산속 입구를 둘러보고 있었다.
실바람을 타고 누군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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