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시민론

2015년 메르스 확산은 한국사회의 안전 불감증 현상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질병확산이지만 한국사회에 처절한 반성의 기회를 주고 있다. 과거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 조정을 중심으로 한 조선사회는 무사안일주의, 무사태평, 무책임감 등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역사적 교훈에서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바, 평상시 시민들의 분명하지 않은 태도와 소신 없는 행동은 위기 시 결단력 있는 행동을 가져오지 않는다. 이번 메르스 확산 과정에서도 초기 대응실패와 한국인들의 온정주의적 병실문화가 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체계이론(system theory)에서 볼 때, ‘나’와 주변을 경계 짓는 사고와 행동은 자기조직화를 갖게 한다. 평상시 ‘나’와 다른 환경과를 구별 짓지 않으려는 태도는 위기시 무책임감을 낳게 한다. 이런 태도는 사회적으로는 무사안일주의와 무사태평 기조를 이루게 한다. 흐리멍덩한 생각을 평상시 키우다 보면, 그런 인물들이 책임지는 자리에서 막상 책임을 지지 못하는 깨어있지 못한 정부로 비판을 받게 된다. 깨어있는 시민들은 자신들과 주변을 경계 지으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자신을 조직해 나간다. 그만큼 책임을 갖는 생활태도를 낳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나타나고 있는 우리사회의 갈등 및 부패와 부정은 과거 일직선적인 인과관계로 풀 수 없는 현상들이 많다. 즉, 복합적인 원인을 갖고 있는 문제들인 것이다. 전 지구의 생명체들은 전체로서는 하나의 부분으로서 또 다른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모든 생명체들은 유기적으로 가깝게 또는 멀게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도 다른 것들과는 경계를 갖고 있다. 다른 존재하는 것과 경계를 분명하게 짓고 자신의 특성을 분석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하고 유지하기 위한 부단한 활동을 ‘비판체계사고(critical systems thinking)’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메르스 확산과 같은 문제들은 ‘깨어있는 시민’들을 만들기 위한 비판 체계적 사고활동이 저조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임진왜란시 정부가 무능하였지만 깨어있는 전국의 의병들이 정부를 각성하게 하였고 결국 국난극복의 큰 힘이 되었다. 이번 메르스 확산에서도 ‘깨어있는 시민’, 의사와 간호사들은 마치 의병처럼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사회가 ‘깨어있는 시민’들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하도록 비판체계사고능력을 향상시켜 나간다면, 한국사회는 보다 성숙하게 될 것이다.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진통 과정에서도 ‘깨어있는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판단을 했다면 그런 진통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금법 갈등은 과거 정부에서 비롯되어온 문제였는데 왜 당시 정확한 연금과 경제상황에 대한 분석을 하지 못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당시 관련된 사람들이 복잡한 변수들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놓고 격론을 벌인 다음 연금관련 법안을 만들었다면 어떠했을까? 물론 당시에도 열심히 노력을 했었다고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이 비판체계적 사고로서 정확한 정보판단을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연금관련 갈등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부정확한 정보판단은 정책실패를 갖게 오고 궁극적으로는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를 낳을 수도 있다.

선진사회는 비교적 좋은 법제도로서 사회를 잘 통제한다. 평상시는 잘 몰랐지만 위기가 닥쳐올 때, 후진사회에서는 혼란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관련된 법이 없거나 있더라고 잘 작동되지 않는다. 인간사회에 필수적인 법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현상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으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대충 만들어지게 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되돌아간다.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 인문학 붐이 일어나고 있다. 실정법에 대한 인문학적 정신은 결국 자연법사상에 이르게 한다. 그런데 그런 자연법은 평상시 비판체계적 사고를 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볼 수 있고 다룰 수 있는 영역이 될 것이다.
<호남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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