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시범마을 농업인과 마지막 만남

<김종국 코피아 필리핀센터 전문위원>
 

최근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필리핀 일로일로 딩네시 시니바안 시범마을 회관에 코피아멤버 70명 모두를 한자리에 초대했습니 다. 그리고 조촐한 다과잔치도 마련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정들었던 이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코피아멤버 만 초대하고 싶었는데 부시장, 시의회 농산위원장·건설위원장, 시청 농산과장을 비롯한 전 직원들도 자리를 함께 해 주셨습니다.

나는 참 세월은 빠르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우려 속에 마닐라 공항에 내려 다시 비행기로 1시간거리의 일로일로로, 또 다시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곳 딩네시에 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며칠 후면 여러분 곁을 떠나게 됐습니다. 막상 떠나면서도 내가 시작해 놓고 마무리하지 못한 사업들, 내가 간 뒤에도 영농현장에서 반드시 실천해 주어야 할 문제점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먼저 비가 내리지 않은 건기만 되면 천수답으로 변해서 심어 놓은 벼들이 모두 말라 죽어 작년 건기에는 10a당 평균 쌀 수량이 10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마을 앞 50㏊의 수리불안전답을 수리안전답으로 개선하는 양수기 설치 사업입니다. 이 사업은 마을민 모두가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 10여일 동안 총 길이 2.7㎞의 수로개설 작업을 마친 피와 땀의 결정체입니다. 이 작업이 진행 동안은 작업장마다 펄럭이는 새마을 깃발과 함께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얼굴과 가슴에서 자신감이라는 새로움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물 흡입구와 양수기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펌프하우스, 그리고 농업용수를 논으로 내보내는 배출구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회원 모두가 내 일같이 협조해서 코피아에서 지원한 양수시설이 시니바안 쌀 수확량을 높이는데 오래오래 활용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그리고 마을 곳곳에 거의 휴경지로 방치되고 있는 물 빠짐이 좋은 밭들을 활용해서 추진하는 채소재배 단지화 사업은 시니바안 시범마을의 농가소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중요한 사업입니다. 작목선정부터 소비자가 원하고 돈이 되는 작목을 선택해서 우수한 품질의 채소를 생산하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 코피아에서는 종자와 비료, 농약을 지원하고 한국의 채소전문가를 초청해서 기술지원을 하겠습니다. 이 채소재배 단지화 사업은 개인이 아니라 3개 그룹 총 70명이 추진하는 마을 공동체 사업이므로 각 팀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서 좋은 방향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사업추진이 끝나면 코피아에서는 품질 좋은 채소를 생산해서 가장 판매실적이 우수한 팀에게 푸짐한 시상금을 지원하겠습니다.

시범농가의 주 수입원인 벼농사도 단위수량 증대를 위해서는 현재 영농현장에서 발생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개선했을 때 가능합니다. 논에서 생산된 볏짚은 절대 태우지 말고 다시 논으로 환원해서 땅심을 높이고 어렵지만 3~4년마다 순도가 높은 우량볍씨로 교환해야 하며, 선택한 볍씨는 반드시 소금물가리기, 종자소독을 실시해서 파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볍씨를 너무 베게 뿌리면 새끼치기를 많이 해서 바람과 햇볕의 통과가 원활하지 않아 병해충이 많아지고 또 수확기에는 쓰러지기 쉬우니 지금의 씨뿌리는 양을 8㎏에서 5㎏으로 줄여 주셔야 합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영농현장에서 개선되고 실천되지 않으면 한 사람이 연간 130㎏의 쌀을 먹는 지독히도 쌀을 사랑하는 필리핀은 다른 나라로부터 쌀을 계속 수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목표가 없고 꿈이 없는 농가는 미래가 없습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시면 각 농가마다 실천 가능한 금년 영농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면서 남보다 열심히 일해야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잠자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매일 한 줄이라도 반드시 영농일기를 꼭 써야합니다. 특히 영농에 들어간 돈은 반드시 기록하여 이를 연말에 분석해서 다음해에 하나하나 개선해 나갈 때 지금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고 협조해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오랫동안 시니바안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라며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메모하는 시범마을 농업인들을 한사람 한사람 감싸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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