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영화제를 지키기 위하여!

<문성룡 광주영화인협회장>
 

봄은 왔건만 아직 꽁꽁 얼어붙어 좌초위기에 처해있는 광주국제영화제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광주국제영화제는 출발 초기부터 흥행 부진에 정체성 부재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광주문화수도조성사업의 한 분야인 영상산업을 견인할 이벤트로서 그 개최의 의미를 찾아왔다.

서울에서 활동한 필자는 광주국제영화제가 영화인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한 말로 말만 국제영화제이지 국내유수의 국제영화제들인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DMZ국제다큐멘타리영화제 등과 비교하면 너무나 수준도 흥행도 낮아 창피할 정도였다.

그러나 광주광역시는 영상의 불모지인 이곳에 애정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영화제에 장기간 지원을 계속함으로써 이제 명실상부하게 광주는 어떤 식으로든 영상분야에 대해 성장하고 있고 지속적인 발전까지는 아니지만 황소걸음처럼 뚜벅뚜벅 해왔다.

이런 시기에 광주국제영화제가 제살 깎아먹기식의 조직위원회의 내부갈등이 장기법정싸움으로 접어들면서 오는 6월 30일 개막을 목표로 예정된 제16회 광주국제영화제 개최 여부 자체가 불투명하게 되었다.

영화제 개최지원을 위한 보조금의 경우 전년도사업 정산서류를 바탕으로 올해 예산지원의 적합성을 평가하는데 이를 판단할 근거 자료인 정산서류가 광주시에 제출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6월 개막이라면 2∼3월중으로 영화제의 주요 프로그램안을 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조직위원회는 프로그램은 커녕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하다.

그렇지 않아도 정체성 문제로 그동안 질타를 받아왔던 광주국제영화제가 기껏 내부조직원 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좌초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 한심할 뿐이다. 영화제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공재이다.

현 내부갈등의 당사자들은 당연히 배제가 되고 새 시대의 새로운 조직위의 집행부체제가 새로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 되든 새로운 조직위를 맡을 시민들의 비상대책위원회든 영화단체든 간에 조심스럽게 주문을 하고 싶어 전문영화인으로서 필자의 의견을 피력해본다.

첫째, 광주국제영화제 운영에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이 있는 인력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프로그램 선정과정과 영화제운영에 독립성을 주어야한다. 영화제는 국내외 관객과 서로 교감하고 이를 토대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한다.

규모가 큰 영화제일수록 조직 역시 복잡하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언급하자면 영화제는 비즈니스로서의 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 사이에서 영화산업의 이해관계와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가진 문화적 특수성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둘째, 이해와 존경심을 가지고 영화산업 관계자(프로듀서, 투자자, 배급업자)와 창작자(감독, 작가, 배우) 양쪽과 모두 소통하고 그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말로는 간단해보이지만 실상 이 과정은 그렇게 쉽지 않다. 영화미학에 대한 이해와 영화에 대한 투자와 상영이라는 산업적 맥락과의 균형이 항상 맞춰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쪽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모두 가능한 역량을 갖춘 영화제위원장이나 프로그래머 집단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셋째, 영화제는 국내와 해외영화 사이에서, 그리고 관객이 선호할만한 대중성과 전문가 집단의 흥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한다.

오늘날 영화란 관객에게 각자 다른 의미로 다가가고 있다. 어떤 관객은 영화를 감성적이고 경험적 쾌감을 선사하는 화려한 오락물 정도로 보기도 하고 또 다른 관객은 높은 완성도와 깊은 사고를 지닌 섬세한 예술영화를 선호하기도 한다. 또 다른 관객은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또는 타 예술장르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광주국제영화제는 초창기부터 관객의 이런 다양한 욕구를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했고 헌신과 열정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분야의 영화들 소개 또한 미비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인 영역에 대한 이해 역시 영화전문가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다. 성장을 거듭해온 거대한 부산국제영화제도 상영하기로 결정한 300여편의 작품 중 하나에 불과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철회 요구가 정치적 견해로 가면서 흔들리고 있다. 부산영화제측이 이 특정한 작품을 홍보하려거나 해당 작품의 지지를 호소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가능한 모든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는 것은 영화제의 본분이자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잘잘못을 탓하기보다 겁쟁이처럼 비판으로부터 도망치려하지 않고 오히려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쿨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비온 후에 땅이 더욱 굳어지고 무지개를 보려면 소나기를 먼저 맞아야 하는 것처럼 필자는 서울에서 시나리오작가로서 영화인의 생활을 20여년 동안 해오면서 광주국제영화제가 지금처럼 황소걸음으로 걸어간다면 미래는 무척 밝다는 것을 밝혀둔다. /moon86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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