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복(法服) 입었던 그대들, 어디서 무엇하다 오셨나요?

법복(法服) 입었던 그대들, 무엇하다 오셨나요?

<최혁 주필>

4·13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 중 상당수가 법조계 출신이다. 각 당의 공천경쟁에 뛰어든 1천340명의 예비후보 가운데 변호사는 124명이다. 4년 전에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는 104명의 법조인이 출마해 42명이 금배지를 달았다. 총선에 나서는 법조인이 많은 것은 항상 최고를 지향하는 인물 군(群)이기에 명예·권력욕이 크기 때문일 게다. 직업 군(群)으로 보면 ‘정치인’ 다음으로 두 번째이다. 이 정도면 판·검사·변호사직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중간 역(驛)이랄 수 있다.

광주지역에서도 많은 법조계 인사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피 말리는 경선, 혹은 전략공천을 거쳐 그중 상당수가 공천을 따냈다. 국민의당에서는 천정배 의원(서구을)과 김경진 후보(북구갑), 송기석 후보(서구갑)가 본선에 진출했다.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장 출신인 김하중 예비후보와 전주지방법원 판사 출신 이상경 예비후보,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출신 임내현 의원, 서울지검 부장검사를 지낸 이건태 예비후보는 공천장을 받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들의 경우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정준호 변호사가 광주 북갑에 단수 공천됐다. 전남지역에서도 많은 법조계 출신 인사들이 이미 공천을 받았거나 경선 중에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사법부를 비롯한 법조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밑바닥인데 개인별로는 모두 ‘신망 받았던 법조인’으로 선거판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분법적 인식이다.

우리 국민들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아주 낮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물어본 결과 27%만이 “사법제도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OECD 회원국의 사법제도 신뢰도는 평균 54%였다. 우리 국민들의 사법부 신뢰도는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39위였다. 이처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은데도 정작 그쪽에서 일하던 분들이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이게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법(法)과, 그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이들의 효용과 효율성에 대해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사법부의 ‘짬짜미’를 이야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유전무죄(有錢無罪)와 전관예우(前官禮遇)는 모두 부정적인 의미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법을 만든다는, 입법부인 국회 역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파행과 공전을 거듭하기 일쑤다. 점잖게 말해서 ‘식물국회’ ‘막장국회’이지 육두문자 욕바가지를 뒤집어쓸 때가 많다.

법의 엄중함과 법조인의 공정함이 희화화되고 있는데도 법조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법조계 경력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또 국민들은 사법부에 대한 비난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법조계 출신 인사를 국민의 대표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엘리트 의식에 따른 자부심과 법조인에 대한 선망이 ‘인식과 선거’에 있어서 이중적 행태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생각하는 것과 실제 여기는 것이 서로 다른 ‘따로국밥’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법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회일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법조인들 역시 ‘사법부, 혹은 사법제도의 망가짐’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선거에 나선 사법부 출신 인사들에 대해 어떤 책임도 묻지 않는다. 오로지 경력만 보고 있다. 그들이 과거 어떤 자리에서 어떤 판결을 했고, 누구를 위해 변론했는지를 따지지 않고 있다. 강자의 편에서 법을 왜곡한 사실이 있는지도 묻지 않고 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행복은 ‘법’에 달려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식이 지켜지는 사회라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법을 잘 아는 사람보다는 상식을 잘 지키는 사람이 더 절실하다. 상식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고, 양보하고 나누면서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거에 나선 이들이 공동체를 위해 어떤 나눔과 기부를 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과거에 자신만을 위해서, 자신의 출세만을 위해서 살아왔던 이가 지역사회와 이웃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권력과 자리를 이용해 누릴 만큼 누린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나라와 민족을 거들먹거리며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가당치 않다. 성인(聖人)들은 ‘선한 일은 누가 모르게 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선거에 나선 법조계 출신 인사들에게는 “행했던 선한 일을 자랑 좀 해보라”고 채근하고 싶다. 그리고 지역과 이웃을 위해 무슨 봉사를 했는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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