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현장에서
<문성룡 광주전남영화인협회장>
 

충무로 영화현장을 지켜보면 좋은 영화는 시나리오, 감독, 배우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성공한 영화가 태어난다.

감독들 가운데 자신이 의도한 연출방향에서 한 치도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대개 좋은 평을 듣는 작품을 보면 현장에서 그때그때 수용된 창의적인 발상이 더해진 경우였다.

얼마 전 필자는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장편영화의 배우를 선발하는 오디션의 심사를 보았다. 심사위원은 하루 전날 작품의 특성을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평가기준을 세워놓고 심사에 임한다.

필자의 평가기준은 100점 만점에 준비성 30점, 리액션 20점, 캐릭터에 대한 배역소화 20점, 순간대처능력 20점, 배우자질 10점이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첫 번째, 준비성에 30점을 주는 것은 배우로서의 마음자세였다. 예를 들어 오디션에 임하는 단역배우들이랄지라도 당신의 배역은 살인자입니다. 당신이 받게 될 오디션은 중년남입니다. 순경1입니다. 양아치 1입니다 등등으로 영화사에서 주는 대본을 하루 전에 받게 된다.

살인자역일 때의 오디션을 준비하는 상황으로 장난감 권총을 가져와 연기하고 괴팍한 장난감 살인무기를 가져와 연기하는 치밀함을 보인 단역배우들을 보면 참으로 자세가 된 언젠가는 꼭 대성할 자질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런 열정과 정성의 자세가 없는 배우들을 누구의 청탁으로 누구의 체면으로라는 이런저런 이유로 뽑아 쓰고 보면 그 영화는 미안하지만 날 샌 것이다.

두 번째, 리액션이란 작가의 대본이나 감독의 연출을 넘어 배우의 자질만이 이끌어 내는 것이고 계산된 연기가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는 연기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우란 반응이다. 그렇담 반응이란 무엇인가? 리액션이다. 배우가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즉발적으로 보이는 감정이나 몸짓으로, 리액션은 극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세 번째로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캐릭터에 관한 배역소화다.

“아! 이 역은 단순하지만 카리스마가 있어야겠구나.”, “이 역은 복합적인 캐릭터니까 변태적으로 연기해야 겠구나” 등등으로 같은 배역이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독특하게 소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순간 대처능력이란 손가락 하나, 표정 연기 하나의 연기력. 똑같은 대본으로 연기를 하여도 손가락 하나를 빠는 등 가래침을 뱉는 등 자연스런 표현으로 작품의 질을 높이고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기에 또한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배우의 자질이란 감정선을 말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겸손이라 생각한다. 감독이 배역연기와 자유연기를 마치고 나면 대개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어떤 배역이 자신에게 딱 맞은 것 같습니까?” , “어떤 배역을 하고 싶습니까?” 그때, 거의 배우들의 자질이 나타난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자는 정말 좋은 러브신을 맡아 폭넓은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할 것이고 겸손한 자는 영화에 필요한 역이라면 어떤 역이라도 기여해 보고 싶다고 답변할 것이다.

그런 판단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니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영화에서 조연의 힘은 엄청 크다. 그들이 없으면 주연도 없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이나 삶의 현장에는 비중이 크고 화려한 주연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판소리에서도 소리꾼보다 추임새로 맛을 살리는 고수의 역할은 가볍지 않은 것이며 야구에서 투수의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 뒤엔 조연인 포수가 숨어 있다. 포수가 사인을 잘못 내어 안타를 맞으면 그 기록은 끝이기 때문이다.

배우라면 크린티스트우드나 모건 프리먼 같이 배우로서 삶의 지혜와 철학을 터득해 가는, 늙어서 쭈글탱이가 된 주름진 얼굴을 한 배우들에게서 한껏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오래도록 관객의 기억 속에 남은 배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의 배우들은 전체적으로 그러한 노력들이 안 보인다.

대사 몇 줄 외었다고, 어느 영화에 출연한 경력이 있다고 농축된 연기가 아닌 즉흥적인 연기로 으시대는 배우들만이 판을 친다.

몇 년 전 대학로의 연극배우가 처음으로 영화에 웨이터 배역에 캐스팅 되어 다음날 한 씬 촬영을 나가는데 거울 앞에서 200번 이상 “어서 오십시오. 뭘루 드시겠습니까?”를 연습했다는 말은 필자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비단 배우뿐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다.

도전도 안 해보고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물론 개인적으로 싫지만 자신의 직업이나 역할을 실험성 있게 여러 각도로 노력도 해보지 않고 과신하여 대충 살아가는 사람 또한 많은걸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moon86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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