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지배하는 사회, 최선인가?

법이 지배하는 사회, 최선인가?

<문정현 법무법인 바른길 대표 변호사>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 대회’라는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매년 열리는 변호사대회의 개회식에 내건 현수막에 굵은 글씨로 새겨진 글귀이다. 아마도 진정한 법치사회, 법치국가를 확립하겠다는 꿈이 담긴 글귀로 보인다. 그런데 그 글귀를 바라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이상야릇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대한변호사협회의 부협회장을 맡고 있는 나로서는 마땅히 법의 지배를 꿈꾸어야 하고, 그와 같은 취지가 담긴 글귀에 공감하여야 할 것인데도 말이다. 내가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법의 ‘지배’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고압적 표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법은 우리 사회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법은 오로지 인간의 삶, 우리 사회와 국가의 정의구현을 위한 도구여야 하는 것이지 법이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와 국가를 지배하는 괴물이어서는 안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법가를 최초로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삼은 상앙도 원래부터 법치국가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손앙(나중에 상앙이라고 불리워진다)은 진효공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경감을 통해 진효공을 알현하여 처음에는 요순의 도, 즉 덕치를 실현할 방법을 설파하였으나, 진효공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고, 쓸모없는 사람을 천거하였다며 경감을 나무라기까지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공손앙은 경감에게 다시 기회를 달라며 간청하여 진효공을 알현할 기회를 얻게 되자 이번에는 탕왕과 무왕의 도, 즉 왕도를 설파하였으나, 이 또한 진효공의 공감을 얻지 못하여 중용되지 못하였다. 이에 공손앙은 경감을 통하여 마지막 기회를 얻어 패도와 부국책, 즉 법가사상을 설파하여 비로소 중용되었고,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고 신법을 제정하여 엄격히 집행하였다. 옳은 일을 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부정한 일을 저지른 자에게 반드시 벌을 준다면 강국을 이룰 것이라는 공손앙의 법가사상이 비로소 꽃을 피운 것이다. 이와 같이 법가사상의 창시자인 상앙마저도 법가사상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상앙도 법치가 아닌 덕치를, 왕도를 이상적인 것으로 꿈꾸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상앙도 법가사상보다는 덕치에 의한 통치, 왕도에 의한 통치를 꿈꾸었으나, 자신의 원래 바람과 이상과는 달리 엄격한 상벌을 적용한 법치만을 내세우다가 백성과 선비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았다. 상앙이 진나라의 유명한 학자 조량을 만나 높은 벼슬을 제안하였으나, 조량은 ‘법으로 천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으나 한 사람의 올곧은 선비는 복종시킬 수 없다’며 상앙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왕은 백성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하고 백성을 상전으로 대해야 함에도 상앙은 가혹한 형벌로 많은 백성을 죽이고 있다고 힐난하였다.

엄격한 법에 의한 지배는 결코 최선일 수가 없다. 법이 곧 정의일 수는 없다는 것은 역사를 통하여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법은 기존의 질서, 특히 기득권을 보호하는 데 그 힘을 발휘하여 온 측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악법도 법이라는 대명제를 부정하거나 법치사회의 당위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법이 사람과 사회를 지배하는 도구가 아닌, 사람과 사회에 봉사하는 제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라고 싶을 따름이다.

결국 상앙 자신도 그가 만든 법제도인 거열형에 처하여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최근 우리사회는 법조인들의 파렴치하고도 낮뜨거운 행각에 넋을 잃고 있다. 법의 이념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여야 할 법조인들이 왜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행여 법조인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우월감과 특권의식에 젖어 법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법이라는 형식과 그 형식에 얽매인 형식논리만을 앞세워 법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와 인간의 삶을 위한 따뜻하고도 정의로운 사회를 애써 외면하고 있어 그런 것은 아닌지 되새겨 볼 일이다. 이제 법조인들은 법을 통한 지배를 꿈꿀 것이 아니라, 법은 덕치와 인간의 삶에 봉사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보다 낮은 겸양의 미덕을 함양해야 할 일이다.

법조인의 현주소는 우리 모두에게 뼈아픈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법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암세포와 같은 구조적 병폐, 사람을 중시하지 않은 사회현상을 더 이상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어디 법조인뿐이랴. 정치인도, 교육자도, 관료도, 사업가도 마찬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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