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말아먹은 구렁이들

대한민국을 말아먹은 구렁이들

<최혁 남도일보 주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라는 말이 있다. 문제가 된 일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남이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얼버무려 버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어물쩍 넘긴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요즘 세상에 구렁이가 담 넘어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을 리 만무다. 목격하지 않고 사용하는 말이니, 체감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이런 말을 대신 사용하면 어쩔까 싶다. ‘비선실세들 담 넘어가듯 한다’.

옛 사람들은 구렁이를 영물(靈物)이라 했다. 그래서 해치기를 꺼려했다. 어렸을 적 어른들은 초가지붕이나 대들보에 똬리를 틀고 있던 구렁이를 해친 사람이 받았던 횡액 이야기를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또 매우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하곤 했다. 구렁이는 원체 소리 없이 움직이는 동물이기도 하지만 그리 영물로 대접받았으니 담 넘어가는 모습을 보더라도 누가 해코지를 할 리가 없다.

나라가 수선스럽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똬리를 틀고 있으면서 돈과 자리를 널름대던 이들의 실체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어서이다. 사람을 구렁이로 표현해서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이들은 최순실과 차은택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 권력의 실세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최순실과 차은택은 담을 넘어가고 있다. 그러함에도 그들을 숨겨주기 위해 “쉿~!”하며 입 다물라고 말하는 권력주변 사람들이 지천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은 ‘창조경제’의 귀재인 듯싶다. 대기업들로부터 8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모금했으니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싸부’(師父)다. ‘대한민국 국가브랜드를 높이겠다’는 말로 그만한 돈을 벌어들였으니 투자유치의 달인들이기도 하다. 재단 직원들은 모은 돈으로 억대연봉을 즐기며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기야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높이려면 자신들의 생활의 질부터 올려야 하니까, 그럴 만하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국가브랜드를 제고하는 데 그렇게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는지를 미처 몰랐다. 미르 관계자들의 말 한마디에 수십억 원 씩을 선뜻 내놓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곧이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권력을 등에 업은 사람들의 반 협박을 당해낼 수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금고문을 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권력형 우려내기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은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모두들 시치미를 떼고 있다.

최순실과 차은택은 전 현직 청와대 고위관계자들과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권력자의 총애와 권력기관을 등에 업은 최순실의 입지는 실로 막강했던 듯싶다. 이화여대가 학칙을 바꿔가며 그녀의 딸을 받아주었니 말이다. 일부교수는 수업에 나오지도 않은 학생에게 학점을 주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사단은 일어났다. 총장과 일부 보직교수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희한하다. ‘관리는 부실했지만 특혜는 아니다’. 소가 웃고 갈 일이다.

나라꼴이 엉망이다. 나라를 건강하게 이끌어가야 할 권력자들은 주변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비선(秘線)조직이 국정을 농단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법과 원칙을 내세우고 있으니 나라의 영(令)이 제대로 설 리가 없다. 청와대는 자신들을 겨냥한 온갖 성토와 의혹제기가 난무하는데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 새누리당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정치공세’라며 이를 틀어막는 데만 급급해하고 있다.

‘비선실세들의 담 넘어가기’를 막으려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각종 의문이 해소돼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받고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이 명쾌하게 이뤄져야 한다. 최순실과 차은택씨의 국정개입과 농단에 대한 부분도 파헤쳐져야 한다. 최순실씨 딸에 대한 이화여대 특혜입학과 학점관리도 진실규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쉽지 않다. 모두들 입을 닫고 또 어물쩍 넘기려하고 있다.

구렁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하기에 사람들은 구렁이가 제 갈 길을 가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과거사를 감추려 하고 있는 비선들은 국민들에게 해를 끼친 구렁이들이나 다름없다. 자신들의 위세를 올리고 배를 불리기 위해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든 사람들이다. 슬그머니 담 넘어가는 그들, 그들을 비호하는 세력들, 이번에는 혼내야 한다.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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