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이르는 길은…

정상에 이르는 길은…

<문상화 광주대학교 외국어학부 교수>
 

주말을 이용해 아내와 함께 산에 오른다. 장흥에 있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정상에 올라보지 못한 산이다. 경사도 완만하고 정상에 오르는 길도 포장이 잘 되어 있지만 아내는 자꾸만 내게 제동을 건다. 내가 지금 이렇게 무리를 하면 당신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지 않느냐고, 이 정도에서 그만두는 것이 어떠냐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정상을 아내와 함께 보고 싶은 마음에서 고집을 부린다. 감언으로 설득도 하고, 남들이 안보는 곳에서 몇 발자국 업어주기도 하고, 또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자주 쉬면서 한발 한발 정상을 향한다. 남들에게는 쉬운 산행이지만 우리에게는 어려운 이 산행을 중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좀 늦기는 해도 정상에 올라 시원한 눈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은 얼마 전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촛불시위를 노벨평화상으로 추천하자고 제안하면서 몹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촛불민심은 자신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기회가 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문재인이 정말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이다. 고대 그리스처럼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토론을 하고 그 자리에서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채택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의기관인 국회를 통해서 국정을 운영하게 되어 있지, 국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지향하는 나라가 아니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면 대의민주주의가 작동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촛불시위를 노벨평화상으로 추천하겠다는 발상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문재인이 할 일은 촛불시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촛불시위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부를 향해 언제든 촛불을 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궤변과 선동에 의한 것이든, 진정한 애국심이든, 정부에 반감이 생기면 언제는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가 국민을 따라 다니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정치인이 촛불광장에 기웃거리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굳이 대한민국호를 맡기고 싶지 않다. 철학도 용기도 없이 단지 권력만을 탐하는 사람이 대한민국호를 맡게 된다면 해도도 없이 항해하는 배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세월호의 처리와 촛불시위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정상궤도에서 이탈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하루빨리 이 비정상의 정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든 우리의 현재가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어떻게 이 상황을 바로 잡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내 놓아야 한다.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국민들이 옳다고 믿는 현재의 잘못과 부조리를 지적하고 그 것들을 바꾸겠다는 큰 그림을 제시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비난과 조롱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 것이 나라를 짊어질 정치인의 숙명이다.

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남들보다 늦었지만 결국 정상에 도착했다.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그 곳에서 맞는 바람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고통을 핑계로 산행을 중도에 포기했더라면 이 시원한 느낌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를 정상으로 이끌었던 것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과 정상에서의 시원한 눈맛에 대한 기대였다.

한 달 후의 대통령도 오늘 우리가 산행에서 가졌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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