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주 미드웨이에서의 메모리얼 데이와 광주

유타주 미드웨이에서의 메모리얼 데이와 광주

<최혁 남도일보 주필>
 

기자는 10여일 전 미국에 와서 머무르고 있는 중이다. 지난 주말에는 유타주 미드웨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미드웨이는 미 서부 와사치(Wasatch)산맥에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인구는 3천여 명에 불과하나 만년설이 자리하고 있는, 스위스풍의 경치가 그대로 펼쳐져 있는 곳이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미드웨이는 해발 3천m정도 높이에 자리하고 있다. 2천744m의 백두산보다 더 높은 곳이다. 고지대인 탓에 한 여름에도 눈 쌓인 봉우리들이 쭉 이어져 있다. 알프스 산과 같은 느낌을 준다. 미드웨이 주민 대다수는 스위스 이민자 후손이다. 1840년 대 신대륙으로 건너온 유럽이민자들 중 스위스계 서부개척자들이 고향과 비슷한 곳인 미드웨이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미드웨이에는 유명 휴양시설인 홈스테드리조트(Homestead Resort)가 자리하고 있다. 콘도인 홈스테드리조트는 2층 건물로 이뤄졌는데 시설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리조트에서 5분만 차를 타고 가면 와사치 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해 만들어진 히버벨리(Heber Valley)골프장과 홈스테드 골프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또 다른 명물 중의 하나는 산 암반 속에 있는 홈스테드 칼데라온천이다. 온천은 50m 높이의 커다란 바위 안에 있다. 바위 내부는 벌집 모양의 석회암인데 밑에서 솟아오른 온천수가 텅 빈 바위 속을 반쯤 채우고 있다. 수심은 30m 정도이다. 서부개척시대 일에 지친 광부들이 밧줄에 몸을 묶고 바위정상의 구멍을 통해 내려와 온천욕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이 칼데라 온천수는 항상 32℃에서 35℃의 온도를 유지한다. 수심도 깊기에 미국에서 유일하게 온천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위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야 했지만 1996년 바위 옆을 뚫고 통로를 냈기에 관광객들이 출입하기에 편리하다. 구명조끼를 입고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 곁에서는 스쿠버들이 온천다이빙을 즐기고 있다.

기자가 미드웨이에서 머무른 날은 마침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였다. 매년 5월의 마지막 월요일로 정해져 기념되는 메모리얼 데이는 우리의 현충일과 비슷한 날이다. 원래는 남북 전쟁 당시 전사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제정되었으나 지금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모든 전사자들을 기리고 있다. 일부지역에서는 서부개척자들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기자를 데리고 메모리얼 데이 전날 미드웨이를 찾은 아들은 “내일 아침은 미드웨이 주민들이 메모리얼 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청 홀에 모여 팬케익 파티를 하는 날이니, 거기서 식사를 하자”고 말했다. 팬케익 브렉퍼스트 파티는 수수하면서도 정겨웠다. 식사비는 5달러였는데 팬 케익과 불루베리, 딸기, 시럽 등이 무제한 제공됐다. 간단한 공연도 펼쳐졌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드웨이 주민들이 메모리얼데이 팬케익 파티를 통해 인디언과 싸워가며 척박한 땅을 풍요로운 땅으로 바꾼 조상들의 헌신과 노력을 기억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853년 당시 지금의 유타주에 도착한 서부개척민(대부분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인:몰몬)들은 인디언 유트(Ute)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데 미드웨이가 그 현장이다.

스위스계 서부개척민들은 와사치 산맥 정상 쪽과 아래쪽 두 곳에 정착촌을 건설했다. 그런데 개척민과 인디언 사이에 벌어진 유타 블랙호크전쟁(Black Hawk War)이 심해지면서 두 마을이 힘을 합칠 필요성이 커졌다. 그래서 중간지점에 새로 정착촌을 건설하고 인디언들과 싸워나갔다.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인 ‘미드웨이 타운’이 생겨난 역사적 배경이다.

미드웨이에는 시가지 한복판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당시 미군 기병대가 주둔했던 요새가 그대로 남아있다. 1850년대 미 서부 개척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미드웨이의 또 다른 유명관광 상품은 미드웨이에서 와사치 산맥 일대를 1시간 정도 오가는 기차여행이다. 이 역시 미드웨이의 서부개척역사와 관련이 있다.

미드웨이 주민들은 메모리얼 데이를 단순한 공휴일로 여기지 않고 있다. 어떤 이유로 이 도시가 생겨났는지, 누가 이 도시를 위해 희생했는지를 메모리얼 데이 아침식사를 통해, 그리고 관광상품 개발을 통해 스스로 재확인하면서 널리 알리고 있다.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 나와 팬 케익을 굽고, 음료수를 서빙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몸으로 익혀가고 있다.

6일은 현충일이었다. 우리 광주사람들은 어떨까? 오늘의 광주가 있기까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숨져갔는지를 헤아리고 있을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광주의 역사를 어떻게 알려주고 가르치고 있을까? 학교에서는 5·18만큼 임진의병과 구한말 호남의병, 그리고 산동교 학도의용군을 가르치고 있을까? 미드웨이 메모리얼 데이에 광주를 떠올리며 느낀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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