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의 노적봉 아래 박화성문학관 은 가족들과 꼭 한번 들러볼 만한 장소다.
여류 소설가 박화성(1904~1988).
일본 여대 영문학과에 입학한 최초의 한국여성이자 한국문단에 정식 등단한 최초의 여성작가, 한국여성문학인회 초대회장 등등…. 수식어마다 ‘최초’라는 말이 항상 붙어 다닌다.
붉은 벽돌과 흰색 벽돌을 사용한 러시아식 건물로 지어진 목포문화원 2층에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관이기도 한 ‘박화성 문학관’에는 그녀의 생애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유품과 기록들을 볼 수 있다. 문인들의 열띤 토론장으로 이용됐던 그의 서재 ‘세한루’를 재현해 놓은 것을 비롯해 친필원고, 단행본, 손때 묻은 메모수첩, 50여년동안 쓴 일기, 생활용품 등이 전시돼 있다.
박화성 선생은 15세에 소학교 선생으로 교단에 선 것을 시작으로 평생 선구적인 삶을 살아왔다. 1925년 춘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등단, ‘백화’ ‘하수도공사’ 등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활동하던 박씨는 일제의 우리말 말살정책이 강행되자 절필하고 고향 목포로 내려와 후배양성에 힘썼다.
해방 후 활동을 재개하며 ‘고개를 넘으면’ ‘사랑’ ‘내일의 태양’ 등 수많은 장편을 잇따라 발표, 왕성한 활동을 하다 1988년 생을 마감했다.
그는 근대문학의 태동기인 1925년에 등단한 이후 60여년의 작가생활을 통해 역작을 내며 목포를 한국문학사에 예향의 도시로 이름을 높이는데 공헌한 인물이다.

이런 그녀를 기리고자 이 곳 목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목포시 대의동 2가 노적봉 아래에 박화성 문학기념관이 건립되었는데, 국가 사적 제289호이기도 한 목포문화원 안에 아담하게 자리한 기념관에는1991년 향토문화관에 전시하였다가 1995년 3월에 이곳으로 옮겨온 고인의 육필원고, 저서, 고본과 생활유품 등을 전시해 문학의 산실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국문단 최초의 여류작가인 그녀의 문학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이 문학기념관은 우리나라에서 개인 문예관으로는 최초이며 유일한 것으로 후세대에게는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민족애에 찬 선구자의 생애를 되새겨보게 만드는 뜻깊은 장소이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