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감정과 염치 부재가 부른 낭패(狼狽)

사사로운 감정과 염치 부재가 부른 낭패(狼狽)

<최혁 남도일보 주필>
 

성은(聖恩)에 힘입어 출사(出師)했다가 낙마한 안경환씨를 보면서 새삼 수신(修身)의 어려움을 깨닫는다. 예전에도 대신(大臣)의 자리에 오르려다 낭패를 본 사람이 안경환 법무부 후보자 외에도 수두룩했다. 많은 이들이 한때의 실수로, 혹은 관행에 젖어 저지른 일들로 사퇴를 했다. 그들의 경우에는 차라리 ‘국무총리 혹은 장관후보자 지명’이라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더 나을 뻔했다. ‘가문의 영광’은 커녕 ‘개인의 치욕’이 됐으니 말이다.

온갖 부끄러운 일들이 세상에 다 알려지고, 장관자리도 놓치니 그런 오욕이 없다. 안 후보자만 하더라도 ‘몰래 결혼’,‘어설픈 법학박사학위’같은 사실이 다 드러났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그 대표적인 가르침이 명심보감(明心寶鑑) 안분편(安分篇) 경행록(景行錄)에 나오는 ‘욕심이 근심’(務貪則憂)이라는 말이다. 원문은 ‘知足可藥 務貪可憂’(지족가락 무탐가우;만족함을 알면 즐거울 것이요, 탐하기를 힘쓰면 곧 근심이 된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각(組閣)을 시작하자 대선 때 그를 도왔던 많은 이들이 내심 한 자리씩을 기대하고 연락을 기다렸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자리를 부탁하는 측근에게 “그러려고 선거를 도왔어요?”라고 매몰차게 쏘아댄 뒤 안면몰수했다. 하지만 그건 ‘상거래’에 어긋나는 일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다 한 자리씩을 기대하고 곁에서 눈도장도 찍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바닥에서 손 흔들어가며 “박근혜”를 외쳤던 것 아닌가?

그러고 보면 문 대통령은 의리가 있는 분이다. 안경환씨나 조대엽 고용부장관 후보자 등 폴리페서(Polifessor:정치참여교수)들을 잊지 않고 장관자리를 안겼으니 말이다. 조 후보자 역시 장관자리를 욕심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장관자리에 앉을 사람이 아니다”며 차라리 낚싯대를 매고 어디 먼 곳 강으로나 가버렸다면 교수로서의 명예는 남아있을 텐데, 지금은 만신창이다.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유수)의 친구 엄광(嚴光)이 광무제가 불러도 낚시질을 하며 평생 촌부(村夫)로 살다 죽은 것과 대조된다. 황제와 절친이었던 엄광은 황제 앞에 얼굴만 보이면 높은 벼슬이 주어질 그런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황제가 부르자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살았다. 그래서 ‘엄광’이란 이름은 ‘권력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으로 통한다. 많은 중국과 조선의 문인들은 그의 높은 절개를 시와 그림으로 칭송했다.

남송(南宋)시인 대복고(戴復古)는 ‘釣臺’ (조대:낚시터)라는 시를 통해서, 김홍도 역시 ‘동강조어’(桐江釣魚)라는 그림으로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 그의 삶을 높였다. 대복고는 삼정승을 마다한 그의 욕심 없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일은 마음에 두지 않고 낚시만 드리우네(萬事無心一釣竿)

삼공벼슬 준다 하더라도 이 강산과 안 바꾸네(三公不換此江山).

그렇지만 범부에게는 이게 가능한 일인가? 감읍해서 두 손으로 전화기를 쥐고 북악산을 향해 수십 번 절을 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렇지만 그 욕심을 스스로 멈추게 할 브레이크는 과거 자신의 삶이다. 네티즌들의 신상털이와 청와대의 검증, 그리고 국회 청문회를 통과할 자신(自信)이 없으면 언감생심, 욕심을 낼 일이 아니다.

출사표(出師表)는 제갈량이 227년 위(魏)를 정벌하려고 출병하면서 주군 유선(劉禪)에게 올린 글이다. 우리가 청문회 정국에서 진지하게 참조해야 할 대목은 다음이다.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이 모두 동일하니 상벌(賞罰)과 포폄(褒貶)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만일 간사한 짓을 하고 법을 어기는 자와 충성스럽고 착한 일을 하는 자가 있거든 마땅히 그 상벌을 논의해 공평하고 분명하게 다스림을 밝게 해야 합니다. 정에 치우치고 사사로이 하여 안과 밖으로 법을 다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군주가 분명하게 나라를 다스리기 원한다면 사람을 뽑는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의 법 감정과 국민의 법 감정이 달라서는 안 된다고 의역할 수 있다. 또 제갈량은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법을 어긴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법을 어긴 자들에게 느닷없이 장관자리가 주어지고 있다. 군주는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있고 장관후보자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 염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낭’(狼)과 ‘패’(狽)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낭은 앞다리 두 개만 있다. 뒷다리가 있어도 아주 짧다. 패는 그 반대다. 뒷다리만 있다. 앞다리는 있어도 아주 짧다. 그래서 두 동물이 움직이려면 패가 낭의 등에 앞다리를 걸쳐야 한다. 지금 ‘사사로운 감정’과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것이 합쳐지면서, 잘 나가던 문재인정권이 터덕거리고 있다. 낭과 패의 걸음모양새다. ‘낭패를 보지 않으려면’ 사람도 잘 골라야 하고, 나서는 것도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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