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와 ‘유토피아’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
 

6월 22일, 기억하고 싶은 날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님, 엄혹한 시기에 인권 변호에 진력하셨고 조선대학교 제8대 총장을 역임하신 고 이돈명 변호사님과 인연이 깊은 날이다. 두루 아는 바대로, 두 분의 종교는 천주교이고 세례명은 ‘토마스 모어’이다. 토마스 모어는 가톨릭교회에서 1935년에 성인(聖人) 품에 올린 분이다. 영명 축일은 6월 22일이다. 세례명이 ‘토마스 모어’인 가톨릭 신자는 영명축일 축하 글과 격려를 많이 받는 날이다.

책 <유토피아>를 지은 사람이 누구지? ‘토마스 모어’(Thomas More)라고 외운 기억이 새롭다. 수업 중에 자본주의 초기 발달과정을 설명할 대목이 나오면 빠뜨리지 않고 질문한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지? 말 자체가 상당히 거북해서인지, 자본주의 속성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응답이 없다. 토마스 모어가 자신의 책 <유토피아>에서 한 말씀이다.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상상하여 묘사한 섬의 이름이고, 그리스어를 조합한 말로써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이다.

2016년은 <유토피아> 출간 500주년이었다. <유토피아>는 라틴어로 쓰였고 1516년 출간됐다. 한편 올해 2017년은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이라는 신학운동의 500주년이다. 두 가지는 1500년대 당시의 경제상과 사회상을 통찰케 하는 일로 생각된다.

필자는 한동안 무지했다.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마스 모어가 가톨릭의 ‘토마스 모어’ 성인과 같은 인물임을 안 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서두에 제시한 두 분 선생님의 세례명이 ‘토마스 모어’이기에 <유토피아>를 일람하면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고 알려진 말이 원문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욕구가 발동했다.

토마스 모어는 당시 도둑질(stealing)의 필연성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면서 잉글랜드(England) 지방에 작용하는 조금 더 독특한 원인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목초지의 증가이다. 그에 따라 천성이 온순하여 기르기 쉬웠던 양들이 이제는 사람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워서’(devour) 작은 마을뿐만 아니라 큰 마을에서도 ‘사람들이 없어졌다’(unpeople)고 말할 만하다. 보통보다 더 부드럽고 질이 좋은 양모를 생산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그러한 일이 벌어지기에, 그곳에서는 귀족과 중간계급, 심지어 성직자인 수도원장도 농장으로부터 예전에 받아온 지대에 만족하지 않았고, 또한 그들은 편하게 생활하면서도 공공에 유익하지 않은 일을 하고 좋은 일은커녕 공공에 해를 끼치려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들은 농사짓기를 그만두고, 주택과 마을을 파괴하는 반면에 교회만은 그대로 둔 채 그 땅에 양을 기르는 울타리를 친다.” 몇 글자만 바꾸면, 500년 전 잉글랜드의 현실은 2017년 현재 한국의 현실과 닮은꼴이다.

도둑질의 필연성을 촉진하는 사회구조를 놔둔 채 도둑을 탓하고 교화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 도둑질이 어린 시절에 교육을 잘못 받은 탓이라면,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저지르는 도둑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해서이다. 구인난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에 취업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청년들을 탓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탓하는 자가 자기 자식한테 중소기업에 취업하라고 권하기라도 해봤을까? 정규학교 졸업 후 수년을 투자해서라도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공무원 고시에 합격하면, 생애소득이 훨씬 더 많을 뿐만 아니라 고용의 안정성이 높은 구조에서 청년들의 행위는 경제원리에 맞다. 우리의 장래를 끌어갈 청년이 희망을 노래하려면, 구조개혁은 지상명령에 가깝다.

토마스 모어의 말씀은 ‘양들이 사람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로 압축된다. 모방해보자. 주택이 사람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가계부채가 사람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일부 재벌의 사내유보 거대 금액이 사람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그런 구조를 남녀노소가 모를 리 없다.

토마스 모어의 묘비명은 ‘고결한 양심, 불멸의 영혼’이라고 한다. 고결한 양심의 실천은 구조개혁에 대한 응원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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